부동산에 미친 남자. 장편소설. 돈
제주도 중문 관광단지, 엉덩물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와인 전문 레스토랑이다.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이다. 사람들 동선에서 떨어진 야자수 나무 아래 통유리로 만들어진 별채 같은 단독 룸을 예약했다. 혈관 속에 알코올이 돌기 시작하면서 얼굴이 붉어진다. 태현이는 자기가 마신 잔을 호영에게 건네주고 술 따라준다. 그 잔을 손에 쥐고 말없이 고개 숙여 심각한 표정으로 술잔을 노려본다. 천천히 고개 들어 친구들의 얼굴을 빙긋이 웃으면서 본다. 굳게 다문 입 사이로 술을 신중하게 마신다. 비워진 술잔을 형기에게 건네고 술 따라준다. 그 모습을 보면서 태현이가 말한다.
“호영아, 내가 먼저 이야기하마. 네가 우리를 이곳에 모이게 한 것도 이상하였고···”
테이블에 있는 술병을 손 뻗어 잡으면서 계속 말한다.
“네가 준비한 술, 티냐넬로, 이 이름의 뜻이···, 도전과 반항이라고? 이 술의 의미가 네 말대로 그렇다면, 너의 도전은 더 높은 곳으로 가겠다는 거고, 반항은 우리와 헤어지겠다는 것처럼 보이는데, 맞냐?”
“너 머리 좋은 것은 내가 알지, 그래 네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려. 네가 먼저 멍석 깔아주었으니···”
호영이가 숨 한번 크게 내쉬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야기할게, 문 대통령 쪽에서 검찰총장 제의가 왔어.”
“축하한다. 무조건 받아야지, 박 검사, 축하해”
“그렇지 않다는 거 알면서 왜 그래, 축하는 무슨”
호영이가 씁쓸한 표정으로 웃는다.
“네가 너무 심각해서 그래, 편하게 해.”
“그래, 고맙다.”
“그런 제의가 있었으면 그에 따른 뭔가 요구사항도 있었을 것 같은데”
미희와 형기는 늘 그랬듯이 중요하다 싶은 두 사람의 대화에는 말 섞지 않고 주로 듣는다. 하지만 이들은, 넷이서 서로 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지켜온 이들만의 자연스러운 대화법이다.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이제야 안거야. 부동산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될지 몰랐던 거지. 수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을 알고 당황한 거야, 예상에 없던 코로나 사태는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격이고, 살기 위해서 나에게 제의한 거지. 내 손에 총장이란 권력을 주고, 자기들을 보호해 달라는 거야”
“누구로부터?”
“윤 의원”
“두 사람은 같은 편 아닌가?”
“같은 당에서 정치를 하지, 그런데 정치에 뛰어든 동기가 달라. 80년대 학생 운동을 하였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이념이 달라서 지금껏 살아온 삶의 색깔이 다르잖아.”
“그러면 완전히 판이 꼬인 건가?”
“지금 서로 살자고 잔머리 쓰는 거 아냐? 주거니 받거니, 그것은 우리에게 힘이 있고, 그 힘을 저들도 무서워한다는 것 아니겠어?”
형기가 순간적으로 불쑥 말을 꺼낸다.
“그래 형기 말이 맞는 것 같아. 호영아 네가 판단해서 해, 무엇이 되었든, 선택한 결과는 우리 몫이고,”
어둠 속에 달빛이 엉덩물 계곡 야자수 나무를 흑백으로 바꾸어 놓는 것을 보면서, 태현이가 말을 이어서 한다.
“그럼 이제 너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윤 의원 치겠다는 것은, 청와대 주인을 네가 하겠다는 것 아니야? 때가 되었다는 것, 기회가 왔다는 것, 그것이 네 마음이잖아”
태현이 말 듣고 형기가 헛기침한다. 호영이는 권력의 끝에 서보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 것이고, 그 욕망을 태현이가 읽은 것이다. 오래전에 불확실한 현실에 살았던 친구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했을 때, 밤새도록 이야기 나누었던 확실한 미래였다.
“술 먹자”
“그래, 술 먹자”
“저쪽에서 제안이 왔다는 것은 우리 약점을 다 알고 있는 것이고, 만에 하나 손 안 잡으면 우리가 죽는다는 거잖아. 그들은 설계를 끝냈을 것이고. 너도 그것을 알고 우리에게 이야기 한 것이고’
그렇다면 내 궁금증 하나? 우리를 배신한 사람이 누구인가? 난, 그게 궁금해. 만에 하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이 그랬다면, 거기까지가 내 인생의 종점으로 보고 받아들일 수 있어. 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야.”
“나도 그 생각을 했었지. 저들은 우리 네 사람의 관계, 다 알고 있더라. 그리고 놀란 것은 네가 이번에 만든 총알 규모까지, 우리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을 가지고···, 나에게 Deal 한 거지.”
“우리는 그들처럼 모든 권력기관에 자기 사람을 심어 놓지 못했다. 패싸움하면 우리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야.”
까마귀 울음소리 같은 단말의 숨소리를 내면서 형기가 벌떡 일어난다. 배신이란 사실에 화가 울컥하고 목젖을 넘어 올라온 것이다.
“우리도 그 사람들과 같은 부류이니, 남 탓할 필요 없어”
일어나는 형기를 보고, 하던 말을 태현이는 잠시 멈춘다. 한 호흡 끊고는 호영에게 묻는다.
“너는 알고 있지? 우리 식구 중에 누구냐?”
“지금 네 머릿속에 있는 그 사람 들이다. 두 사람”
서 있던 형기가 다시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술잔 들어 태현에게 내민다. 형기 손등에 돌출된 혈관의 꿀렁거림을 보면서 태현이가 술을 따라준다. 술을 마신 형기는 묻는다.
“누구냐?”
화천 시장실을 방문하였다. 차명으로 정리한 돈을 어떻게 건네줄 것인지 방법 찾기 위한 자리였다.
“생각해 본 방법이 있나요, 원하는 것이 있으면 거기에 맞추어 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임 박사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머뭇거리듯 말한다.
“일이라는 것이·····, 이번에····· 금강 신도시 작품은····· 여기 오 시장님하고 저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컸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에 대한····· 합당한 배분이·····”
“무슨 말 하는 거야,”
오진명이 깜짝 놀라면서 태현이 얼굴을 보고 말을 끊는다.
“오해가 있으면 안 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 하시죠”
“서 박사와 김 박사를····· 여기 오 시장님하고·····, 저하고····· 같은 급으로····· 비교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뭔가 불공평한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임박사가 뜸 들이듯 말한다.
“제가 이야기하겠습니다. 말 돌리지 않고 묻겠습니다. 2,500만 원 투자해서 320억 원 벌었는데 부족합니까? 지금 제 결정이 불만스럽다고 하신 것 맞지요? 잘못된 분배이니 공정한 분배를 해달라 이거죠?”
“불만이 있을 리 없지요? 똑같이 나누었는데···”
오진명이 허겁지겁 대답한다.
임 박사가 오진명을 한번 쳐다본다. 임 박사는 두려움이 혀와 손바닥에 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호흡을 가다듬고, 태현의 눈빛을 보지 않으려 세웠던 허리를 숙이면서 천천히 말한다.
“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른 것은····· 불만 없지만·····, 배분은····· 좀····· 불··만··스럽습니다.”
“알겠습니다. 어떻게 배분하면 될까요?”
“저하고····· 오 시장이····· 6을····· 가지고·····, 서 박사와 김 박사가····· 4로····· 하는 것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사이를 두면서 말하는 임 박사를 보는 태현의 눈이 날카롭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 드리지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죠,”
태현의 눈에 독사처럼 차가운 눈빛이 형형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배웅하려 일어나려는 오진명을 쳐다보고는 따라오지 말라는 듯 고개를 두어 번 좌우로 흔들고, 뒤돌아 걸어 나간다.
오진명의 불안한 시선이 쫓아간다. 태현의 뒷모습에 어두운 그늘, 스산한 그림자가 한 꿰미로 어른거리듯 보였다. 섬뜩했다. 오진명이 오래전 꿈에서 보았던 화천시장의 뒷모습이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꿈이었다. 예상하지 않았던 허상이 눈앞에 나타나 어질어질했다. 다리가 부들부들 힘이 빠져 우두커니 서 있다가, 소파에 쓰러지듯이 털썩 주저앉는다.
“그런 말, 왜 했어?”
“아닙니다. 저는 할 말, 했다고 생각합니다. 막상 말하고 나니 후련합니다. 정 대표도 망설이지 않고 6:4로 인정한 것은···, 제 요구가 합리적이라고 보는 것 아닌가요?”
정태현이 나갈 때까지 고개 숙이고 있던 임 박사는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듯이 목소리가 편하게 나왔고, 손수건을 꺼내 손바닥에 베인 땀을 닦는다. 그리고 손을 들어 머릿결이 별로 없는 넓은 이마를 한번 훔치고 쓰다듬는다.
“아니, 자네는 저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뭐, 요즘 세상에 죽기야 하겠어요, 말 한마디에 84억 원 벌었네요”
오진명은 임 박사를 쳐다보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세상을 편하게만 살아왔구나, 쓸데없는 허세야’. 오진명은 입맛을 다신다. 잇몸에서 피 냄새가 났다. 최근 들어 잇몸 출혈이 드문드문 있다. 정강이에는 멍이 있는데, 언제 부딪혔는지 전혀 기억이 없더. 좀 전에 헛것이 보이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과로라고 생각한다.
“내 머릿속에는 두 사람이 있어. 임 박사하고 J이야. 임 박사에게는 차기 시장 자리를 미끼로 던졌을 것이고, J 에게는 나를 흉내 내서 일해볼 수 있다는 욕심을 심어주었을 것이고···. 처음에는 불철주야 고민하였을 것이야. 두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배신할 사람은 아니지, 하지만 어느 순간에 악마의 유혹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무릎을 꿇었을 거야”
“그래, 저쪽에서 아주 패를 다 까더라. 두 사람을 작업했다고, 너무 솔직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해서 사실 당황했다.”
“우리에게 보낸 메시지야. 믿음을 보여달라는 거지, 그 정도 선에서 서로 손잡자고 하는 거야, 저쪽에서 던진 미끼인 거 너도 알잖아. 물면 천국이고, 안 물면 지옥이지,”
미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초췌한 얼굴로 세 사람의 빈 술잔에 술을 차례차례 따라주고는, 이리로 불다 저리로 부는 돌풍 바람이 창밖에 있는 것을 물끄러미 본다. 거센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쓸쓸한 눈빛이다. 방금 태현이 말을 듣고는, 신을 믿으면 천국이고 안 믿으면 지옥이라고 오래전에 태현이가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태현은 생각에 잠겨있는 미희의 손을 한번 잡아주고, 미희는 그런 태현을 보면서 빙긋이 웃는다.
형기가 미희를 한번 보고 술을 마신다. 그리고 술잔을 내려놓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팔짱을 낀다. 형기는 소철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J가 태현을 부러워하고 태현이란 사람처럼 살고 싶어 흉내 내지만,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배신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착각은 내가 저 사람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안된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태현이가 생각에 잠겨있는 형기 빈 술잔에 술 따르다가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는 듯 입맛을 한번 다시더니 말한다.
“우리가 이제 헤어질 때가 된 거 같다. ··· 박 검사야···, 지옥이 부른다고 지옥에 따라갈 것은 아니지···. 하나의 지옥을 건너면 또 다른 지옥에서 염라대왕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지옥이 지옥을 데리고 오는 거지”
“그래, 고맙다. 이해해줘서”
“고맙기는, 개뿔···.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그 길을 그냥 갈 뿐이야. 천국인지 지옥인지 끝까지 가 봐야 아는 거고,‘
윤 의원의 비선 조직은 우리가 아닌 것은 알고 있지?”
“알지, 총알은 그들에게 넘어갔다.”
“그래, 고생했어”
“윤 의원의 진짜 비선 조직은 학생 운동할 때 인연 맺은 운동권 조직이야. 그들은 우리와 다른 동지애로 엮여있고, 우리는 그들에게 이방인일 뿐이야.”
“호영아, 다른 방법은 없는 거니?”
조용히 앉아있는 미희가 지친 숨소리 내면서 한마디 내뱉는다.
“미희야, 호영이 그림이 맞아. 그래야 우리가 살아. 호영이에게 날개 달아주고 우리는 빠질 때야. 수습은 호영이 몫이다.”
호영이는 미희와 눈이 마주치자, 술을 연달아 마신다. 술잔을 내려놓는다. 미희가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보인다. 이별을 준비하여야 한다는 마음에 가슴이 쪼개지는 듯한 슬픔이 밀려온다. 호영이는 술잔 들고 미희에게 술 따라달라는 듯이 내민다.
“너, 내일 아침 일찍 올라갈 거지? 나하고 형기, 그리고 미희는 더 있다 올라가마,”
신라 호텔과 파르나스 호텔 옆으로 산책길이 있다. 산책길은 올레길 8코스로 색달해수욕장으로 연결된다. 해수욕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절벽 위 벤치에 미희가 앉아있다. 파란 하늘 배경으로 한라산에 구름 조각이 몽실몽실 걸쳐져 있다. 해안가로 밀려드는 파도 물결이 백사장에 부딪혀 하얀 거품 뿜어내며 흘러내린다. 미희 눈에 보이는 바다는 하나인데, 밀려오는 파도나 부딪히는 거품은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아침 햇살을 등에 진 태현이와 형기는 말없이 모래사장을 걷는다.
“두 사람 어떻게 할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