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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Oct 09. 2024

부미남 23. 책임질 사람이 죽어나간다.

부동산에 미친 남자. 장편소설. 돈




  오늘까지 살았다는 것은 기적이다. 내일 죽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사람 목숨이 그런 것이다. 영원히 살 거 같지만, 지금 죽는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에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산다. 그것이 인생이다. 아무 생각 없이 오늘 밤에 잠들고, 내일 아침 일어날 수 있다면, 운이 좋은 사람이다. 태어났기 때문에 죽는 것이므로, 억울한 죽음은 없다. 

  다른 생이 있을 거라는 희망은 부질없는 의미였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은 죽어가는 찰나의 시간이다.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는 내일 안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사는 것이다. 영원하다는 생각이 집착을 만드는 것이다.          


  “오 시장님, 급성 백혈병입니다. 징후가 좋지 않습니다. 정밀 검사 통해서 어떤 백혈병인지 확인하고 바로 항암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침대에 누워있는 오진명은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숨 가쁘게 인생을 살아왔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손에 잡아보고자 악착같이 살아온 인생이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밑바닥 인생이라 마누라에게 남편 대접 못 받고, 자식이 무시하는 아버지로 살면서 그 한을 삭히고 삭혔다. 드디어 한 손에는 권력, 한 손에는 돈을 쥐었다 생각했다. 이제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왔다고···, 오늘 아침까지 그랬는데, 지금 벼랑 끝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이다. 죽음의 신이 장난치듯 손짓하고 있다. 잇몸출혈은 백혈병의 전조 증상이었다. 이거는 아니다 싶은 마음에 울화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황소의 뒷걸음에 쥐가 죽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신의 더럽고 치사한 뒷발에 잔인하게 걷어차였다는 것을 알았다. 죽음의 발작 소리를 지르던 오진명은 중환자실에서 급성 폐렴으로 죽었다.           



  금강 신도시 개발사업은 오진명이 직접 진두지휘한 것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임 박사는 오진명이 지시한 것을 따르기만 했다는 논리로 발뺌하였고, 자세한 것은 모른다고, 모르쇠로 버티었다. 기자들이 밀착 취재하면서, 움직이는 것이 불편했다. 전화가 왔다. 조심스럽게 전화 받는다. ‘요즘 기자들 상대하느라 힘드실 터인데, 잠시 서울 떠났다가 오시지요. 제주도 같은 곳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주일 정도면 여론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오 시장의 죽음이 임 본부장 살린 겁니다. 다음 시장 선거를 위해 휴식도 할 겸···’ 임 박사 얼굴에 번들거리는 웃음이 나타난다. ‘J하고 같이 다녀오세요, 앞으로 두 분이 호흡을 잘 맞추어야 합니다. 전화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3일 뒤에 해안 길을 따라 올레길 걷는다. 호텔 한곳에 묵고 있으면 기자들이 알아낼 것 같아서, 그날 묵을 곳을 그날 아침에 전화 예약하고 스케줄 짠다. 하루 늦게 제주도에 도착한 J를 중문관광단지에 있는 켄싱턴 리조트 1층에서 만났다. 프랑제리 제과점의 시그니처 사과빵 먹고는 함께 길을 걷는다. 서울에 올라가면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바다 위에 하늘이 붉게 변한다. 선홍색을 파도에 숨긴 바닷물결과 검붉은색 구름이 저물녘 하늘을 장악해 가는 것을 본다. 두 사람은 자연이 주는 황홀경에 빠져 태초의 자연인이 된 듯한 착각을 한다. 발갛게 달아오른 해는 여의주가 되어 용머리 해안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바다에 일렁이는 거품처럼 두 남자의 가슴에는 장밋빛 욕망이 가득 차올랐다. 

  길을 다시 걷는다. 어두운 밤하늘이 두 사람의 발걸음에 쏜살같이 밀려온다. 두 사람의 뒤를 어둠이 따라간다. 올레길에 있는 나 홀로 벤치에 누군가가 앉아있는 것이, 희미하게 보인다. 잠시 발걸음 멈추고 말을 주고받는다. 뒤따르던 어두운 그림자들이 겹쳐진다. 움직이는 실루엣이 해안가로 사라진다. 벤치에 희미하게 사람이 나타난다. 검은 슈트 입은 남자가 담배 꺼내어 입에 물고, 한 모금의 연기를 뿜어낸다. 

  다음날 이른 아침, 대평포구 해안가에 산책 나온 관광객이 파도에 떠밀려온 시체를 발견하였다.       


    

  여론은 또 시끄러워졌다. 금강 신도시의 책임자 두 사람이 죽은 것이다. 한 사람은 급성 백혈병으로 병원에서 죽었고, 또 한 사람은 실족사로 제주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이다. 사건의 전모를 밝혀줄 사람, 두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           



  J의 가족들이 실종신고 하였다. 어느 날, 여행 갔다 온다고, 집 나간 사람이 소식이 끊어진 것이다. 행방불명 된 것이다. 여행지가 어딘지는 가족들도 모르고 있었다. 경찰 수사 결과 제주행 비행기 탑승한 것은 알았지만, 제주에서 나온 기록이 없는 것이다. 실종신고 현수막이 제주 곳곳에 붙었다. 50여 일이 지나서 350km 떨어진 일본 나가사키현 히도츠구 해안에 사람으로 추정되는 사체가 발견되었고, DNA 검사 통해서 J임을 알았다. 숙명인지 운명인지 모를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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