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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국현 Oct 29. 2024

004. 꼬마 귀신

<귀신편>



  야릇한 기분이다. 

  살면서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감정이다. 

  여기가 어딘지 기억이 없다. 



  앞에 앉아있는 남자의 눈이 슬퍼 보인다. 

  손을 들어 손수건으로 나의 콧물을 닦아내고,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코의 양 볼을 잡았다가 놓는다. 순간적으로 기억이 났다. 나는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맑은 정신이 하루 이틀에 한 번쯤 돌아온다. 

 


  찰나의 시간에 나는 내 앞에 앉아있는 남자와 눈을 맞춘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뒤죽박죽된 마음이 부들부들 떨린다. 눈물이 지랄같이 나온다. 입이 헐어서 음식을 못 먹는다. 뼈와 가죽만 남아 누워있는 나의 몸은 죽어가는 몸이다. 앞에 앉아 나를 보는 남자가 슬픈 목소리로 ‘엄마’라고 말한다. 내가 엄마였구나! 암에 걸려 죽어가는 몸뚱어리에 이제 기억도 오락가락한다.     



  아들이라는 남자 뒤에 어떤 꼬마 애가 서 있는 것이, 내 눈에 보인다. 요즘 들어 자주 보인다. 빙긋이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눈에 검은 눈동자가 없어 휜 자위만 보인다.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구분이 안 된다. 허공에 던진 시선이 나를 보고 있지만, 무섭다는 느낌은 없다. 절간에 있는 어린 동자승처럼 보였다. 배가 고픈지, 입맛을 다시며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될 뿐이다.      



아들이라는 남자가 말을 하려 하는지 몸을 숙여 내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댄다.

‘빨리 죽어라, 이 할망구’ 하는 소리가 들린다. 몸을 일으키는 아들의 시선이 차갑다.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찰나의 시간에 생각이 났다. 내가 아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아들이 나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오감이 작동하여 한순간에 느껴졌다. 숨이 막혔다. 소름이 돋고, 공포가 엄습했다. 아들 뒤에 서 있는 꼬마와 눈이 마주쳤다. 하얀 휜 자위에 점이 하나 생기더니, 뱀의 눈동자처럼 형상을 만들면서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내가, 또 다른 내가, 나의 몸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 누에고치가 실을 뿜어내듯 내가 내 몸에서 빠져나온다. 연기처럼 허공에 있는 나는 동자승의 입으로 빨려간다. 짓이겨지는 고통이 왔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아픔에 소리 지르지만, 소리는 어둠에 막혀있다. 


  빨간 입술에 혀를 내밀어 입맛을 다시는 꼬마가 보인다. 

  어미 노릇 못한 나의 업(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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