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여름 2020>을 읽고
문학과지성사 인스타그램에서 '여름휴가 맞이 도서 증정 이벤트'를 진행했고, 그때 <소설보다 여름 2020>을 받았다. 바쁜 일정이 끝난 오늘에야 이 얇은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여름판은 사지 않으려고 했는데 손에 들어오고 말아서, 인연이 사람과 사람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물 사이에서도 생기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휴가 맞이 도서 치고는 무거운 이야기들이어서,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졌다. 가볍게 읽고 넘길 이야기들이 아니었던 탓이다. 나의 현실과, 나의 과거와 붙어 있는 부분들이 작품마다 있어서 쉬이 넘기기 어려웠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느낀 무게로는 <0%를 향하여>가 가장 가벼웠고, <가원>과 <희고 둥근 부분>은 비등비등하게 무거웠다. 둘 중 먼지만큼이라도 더 무게를 준다면 <가원>에게 무게 추를 달아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가원> 속 한마디가 가슴속에 콱 박혔기 때문이다.
"얘는 밥값을 아주 제대로 하네.
그렇지?"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내가 있을 자리를 다시 찾으면서, '나는 지금 내 밥값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것도, 밥이 잘 먹히지 않는 것도 밥값만큼 열심히 살지 않아서라고 나를 채근했다. 그러면 내가 다시 밥값을 할 날이 조금 더 빨리 오지 않을까 상상했다. 기대처럼 밥값을 벌 날이 찾아오지 않은 상태이며, 내 나름 열심히 뛴 상태였다. 실망과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서 그로기 상태가 되기 직전, <가원>을 읽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사회의 펀치 한 방을 더 맞았다. 그때 "밥값을 못하는구나." 하는 소설 속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손녀가 자신과 자신의 딸보다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공부를 열심히 시키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게 했던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다행히 연정은 할머니의 꿈대로 컸고 성공했다. 밥값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이다. 내가 그녀의 손녀였다면, 지금 밥값을 못하고 있어 혼났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할머니의 기준에서 보면 혼나도 싼 손녀겠지만, '밥값'이라는 말이 너무 슬프게 꽂혀서 '나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요!'라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의 상황이 이해되면서, 그런 말을 하는 할머니가 미우면서, 내게 한 말도 아닌데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
여전히 근로 계약을 맺지 못한 채
일하는 영화인들이 있었고,
나는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이하여,
영화를 그만두고 싶었다.
<0%를 향하여>는 한 달쯤 전에 읽었던 <GV빌런 고태경>을 생각나게 했다. 영화인이 주인공이라는 점도 그렇고, 말투에서 느껴지는 특성도 그러했다. 영화인들이 책을 쓰면 이런 말투가 나오는 건가 싶은, 어쩌면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는 지점을 두 소설 모두에서 느꼈다. 웃음이 나는데 뒤에 눈물이 따라오는 느낌이다.
'영화를 그만두고 싶었다'는 문장이 두 소설의 다른 공통점이기도 했다. 자의든 타의든 영화를 그만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나는 포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아했던 걸 포기하는 건 더더욱 그렇다. 좋아했던 일을 그만두기로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고 그것을 견디며 지내왔을까 싶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리고 견디자는 마음이 사라지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은 생각이 연이어 들었다. 포기는 마음을 다해 좋아해 보았기에 고를 수 있는 선택지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내겐 꿈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마라톤 한 코스를 마친 사람으로 보인다.
<0%를 향하여>는 꿈을 꾸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아련하고 슬프고 대단하게 기억될 작품이다.
진료확인서를 행정실장에게 제출했을 때,
실장은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리며 진영에게 말했다.
건강을 돌보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수업이 가능하시겠느냐고.
<희고 둥근 부분>의 중심 내용은 진영과 민채와 이모, 인숙에게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이겠지만,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것이었다. 진영이 미주신경성 실신으로 쓰러졌을 때, 행정실장은 처음에는 병원에 가보라고 하지만 나중에는 그녀를 아니꼬운 눈으로 본다. 건강 이상은 진영의 약점이 된다.
직장인이 아프면 약점 하나가 생기는 것과 같다. 입원 전날까지 병원에서 일하다 가는 경우는 부지기수고, 병가를 내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한다. 적어도 내가 보았던 곳들에선 그랬다. 그 현실이 <희고 둥근 부분>에서도 잘 드러나 있는 것 같아서, 이게 소설인가 현실 르포인가 싶은 마음으로 읽었다. 아픈 것을 자유롭게 동료들에게 밝힐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내가 아픈 게 누군가에게 미안한 사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에, <소설 보다 여름 2020>을 '휴가'에 읽기에는 무거운 책이라고 소개했다. 그 이유는 이처럼 나의 삶과 맞닿아 있는, 더 정확히는 삶의 상처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아서였다. 이 책은 오히려 내게 일상과 가까웠다.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가로수처럼 당연한 일상들. 그래서 여름 볕처럼 따갑고 신경 쓰이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