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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Nov 28. 2019

젊어진 엄마를 키우는 남자

엄마를 닮은 딸을 보는 아빠에게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음에도 브런치를 개설한 것은 브런치에 연재하고 싶은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는 주제별로 글을 적어 올린다. 나의 생각을 주제화한 게시판은 없다.


아빠에 대해서이다.


아빠와 나의 관계는 미묘하다.

아빠와 어색하다고 하기에는 다정한 사이고, 그렇다고 다정한 사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부분이 있다. 어떤 부녀이든, 어떤 가족이든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듯 우리의 관계도 그러하다.


아빠는 늘 나에게 든든하고자 노력했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가르쳐줄 때 뿌듯해했고, 아직 내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에 즐거워하셨다. 그런 아빠를 귀여워하면서도 아빠는 지금의 여유로운 모습으로 계속 머물렀을  것이라고 단정했었다.

사회생활 3~4년 차가 되고 나서야 아빠 엄마와 술을 마시며 부모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하나하나 쌓여가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나는 은근 그 시간을 즐기곤 했다. 올해 내 생일, 부모님과 함께 술자리를 하게 되었을 때 아빠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 아빠가 왜 서울에서 일하다가 때려치운 줄 알아?

- 모르지

- 한 달 잘 일하고 월급날이 됐어. 그런데 아무 이야기도 없이 사람들이 일만 하는 거야. 그래서 옆 사람한테 물었지.

"우리 오늘 월급날 아닙니까?"

"이거 신참이라 모르는구만? 월급 나오는지는 제일 선임이 총무과 다녀오는지 보면 알아. 아님, 다음 달에나 받겠지."

이게 무슨 소린가 했어. 회사가 돈이 없어서 이달 월급을 못 준다는 거야. 월급을 받고 싶으면 더 다니면서 기다리라고 하더라구. 몇 달을 그렇게 다녔어. 그런데도 월급이 안 나왔어. 돈 받으려고 내려갔어.


이게 무슨 소린가! 회사 문제를 상담해주는 아빠가, 회사에서 사장님 다음으로 근속한 직원인 아빠가 이렇게도 어설픈 시절이 있었다니. 월급을 떼이는 아빠라니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다음 말이 더 웃겼다. 몇 번이고 월급을 떼였고, 나중에 받으러 가면 회사가 망해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저 서울 회사에서 나와 창원으로 갔을 때 하나의 에피소드가 더 생겼다고 했다.

누런 월급봉투에 월급을 현금으로 받던 시기였는데, 돈을 받아 가려는데 총무부에서 아빠를 부르더란다. 무슨 일이냐고 하니 예전 회사 월급을 신청하지 않아서 세금을 떼어야 한다고 한다며 월급 뭉텅이에서 한 움큼 돈을 집어갔다고 한다. 제때 돈도 못 받았는데, 거기서 떼어갈 세금이 있다니 야속할 노릇이라고 했지만 아빠는 별수 없이 돈을 뺏겼던 모양이었다.

청년인 내게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듯 청년의 아빠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벌어졌던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였던 아빠의 과거에서 현재의 나를 보았다.


그 시간들을 거름으로 성장한 아빠는 한 가정을 이루었고,  20대에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어머니를 닮은 딸을 얻었다.

나는 할머니를 닮았다고 한다. 입술 아래로 뻗은 턱선이 닮았다는 가족도 있고, 눈이 닮았다는 친척도 있다. 어찌 되었든 모든 친가 가족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나는 할머니를 닮은 모양이었다.


어른이 되고, 젊을 때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일이 적은 아빠에게 젊어진 엄마의 모습을 한 딸이 서 있는 것이다. 젊은 엄마이자 자신의 한 분신인 딸은 매번 엎어졌고 상처가 아프다고 울었다. 그런 나에게 아빠는 어김없이  손을 내밀었고,  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빠가 살아왔던 길은 이러했다 말해주었다.


그날 전까지 나는 아빠의 딸인 나에게 아빠가 손을 내밀어준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아빠는 딸이자 작아진 엄마에게 손을 내민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던 엄마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기분으로 자신의 작은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준 것이 아닐까.


그리고 생각했다.

젊어진 엄마를 키우는 아빠의 마음을 나는 한동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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