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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May 16. 2020

[독서 기록] 괜찮지 않은데요

안미영의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를 읽고



퇴사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보니, 남들의 퇴사에도 관심이 많아졌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정말 이런 회사가 존재한다고?'라고 놀라고, 한편으론 나의 직장생활 이야기도 이렇게 읽히려나 싶은 궁금증도 든다. 108번의 번뇌가 있듯 108개의 지옥이 있다면 그건 108명 개개인의 직장생활이 아닐까 싶다. 개개인 인생의 어려움이 있듯 개개인의 회사생활에는 고난이 필수로 따라오는 것 같다.


그렇다고 퇴사하면 편할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이번에는 정말 다닐 수 있으면 오래, 진득하게 회사를 다니고 싶었다. 퇴사를 두어 번 해보니, 퇴사한 후의 공백, 다른 직장인들과 다른 공백이 생긴 것을 내가 지독히도 못 견디는 성격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극히 힘들다. 생각을 밤새도록 하는 성격이라, 면접에서 마음에 꽂히는 말이라도 한 소리 듣고 나면 잠을 못 자고 계속 곱씹는다. 그러면 불안해진다. 어떻게 살지?


퇴사 후 '나만 이렇게 살고 있나?', 조금 더 길게 말하면 '나만 이렇게 형편없이 살고 있나?'싶은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이번 주가 그랬다. 내가 나를 만족시키기엔 부족한 그런 날이었다. 그래서 더 궁금했던 것 같다. 퇴사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도서관에서 원래 읽으려던 책을 찾지 못해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맬 때,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가 눈에 들어온 것은 그 이유 때문인 듯하다. 수다로 듣는 것보다 자세하게 다른 사람들의 휴직기를 듣고 싶었다. 






'옴니버스 퇴사 에세이'라는 설명처럼 10명의 평범한 여성들의 회사생활과 퇴직이 적혀 있었다. 이야기 중에는 회사를 다닐 때 선배 언니들에게 들었던 퇴사 이야기와 유사한 것들이 좀 많았다. 나보다 먼저 회사생활을 시작한 이들이 어떻게 퇴사와 만나게 되는지 조금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다들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게 있었다거나 배우고 싶은 게 있었다거나 하는 계기가 있었다. 무언가를 해야 결과가 생긴다는 불변의 진리를 실현하고 있는 사람들로 보였다. 다시 옛길로만 돌아가려고 하는 내가 변변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나를 진득이 오래 하는 사람이 대단해 보인다.'는 TV 속 명사의 말은 왠지 명사가 된 이후에나 그럴듯하게 보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자괴감과 부끄러움 때문에 몇몇 에피소드는 읽으면서 힘들었다. 이 사람들만 대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나쁜 마음을 버린 건 초반부에 있던 내용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오래 다닌 회사를 그만뒀다면, 혹은 아주 조금이라도 원치 않는 방식으로 그만뒀다면 퇴사 후에 마음을 치유하고 극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괜찮을 것 같지만 정신적 충격은 남게 마련이고, 그 충격은 첫 직장이거나 일했던 기간이 길수록 더 심하다. 마음의 상처가 잘 아물 수 있도록 쉬는 시간 동안 스스로를 잘 돌봐야 한다.


얼마 전 자가 정서 심리테스트에서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 일단 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게 먼저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이력서를 썼지만 아직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그걸 인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도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지랄 맞음이 아직 퇴사 후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지랄 맞은 상태가 유지될 것 같다.  이 책은 나에게 좀 더 지랄 맞게 살아도 된다고 해주었다.





단편들도 도움이 되었지만, 각 에피소드 종료 후 나오는 Think의 글들이 좋았다. 퇴사를 해보았다면 공감할 이야기들이 많았다. 에피소드보다 이곳에서 공감 포인트를 많이 찾은 것 같다. 몇 가지 사례에 대해 적어보자면,


일을 사랑하고 그래서 열심히 해보려는 사람이 곧 약자가 되는 셈이다. 봉사 활동이 아닌 이상,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돈을 받지 않아도 되는 합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열정페이는 곧 노동착취와 연결된다.
열정페이는 주로 겉보기에 화려하거나 멋있고,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는 직종에 많이 존재한다. (Think 열정)


회사가 잘되어야 직원이 잘된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회사와 직원은 한 몸이 아니다. 그 사실을 잊는 건 위험하다. 주인의식을 강조하며 '가족 같은 회사'를 표방하던 회사가 결정적인 순간에 직원을 버림으로써 가족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을 심심찮게 듣고 본다. (Think 사랑)


흥미로운 점 한 가지. 통장 잔고가 매우 넉넉한데도 월급이 끊겼다는 사실만으로 사람은 위축될 수 있다. 잔고 상황과 그에 대한 인식이 전혀 다를 때다. 중요한 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인지하느냐다. (Think 돈)


몇 번이고 생각한 이야기들이 아닌가. 

어렵지만 다시 한 번, 이 과정이 흘러가는 중에 있다는 것을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이 불안함이 지나가고 회사를 다니면서 '아, 회사 다니니까 그만두고 싶네.'라고 생각할 날이 올 것임을 나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래서 조금은 괜찮아도 되는 일상을 살아가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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