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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Dec 30. 2023

눈에는 눈, 이에는 이

AB형 여자의 정의




"오빠, 내가 감옥 가거든 오빠가 우리 유하 키울 수 있제?"


그날도 어김없이 아기를 재우고 와이프와 육퇴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TV 화면 속에는 늘 그렇듯 사건사고의 현장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날 나왔던 사건은 온 국민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정인이 사건'이었다.(우리 와이프는 이후 일주일간을 슬퍼했다.) 아기를 키우면서 이러한 아동 관련 사건을 보면 분노와 슬픔을 주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아동과 우리 아들을 동일시하여 상상하기 때문이다. 와이프는 슬픔과 분노에 휩싸여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우리 아들에게 어떤 피해 사건이 발생한다면, 그 가해자를 절대 용서할 수 없고 찾아가서 죽여버리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복수를 할 테니, 나 보고는 남은 가족을 챙기라고 말한다. 물론, 우리 와이프의 이러한 발언은 처음이 아니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똑같이 해줄 거다."


살인과 같은 나쁜 뉴스들을 접할 때면,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처벌할 거라고 말한다. 그녀는 언제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은혜를 잊지 않는 것과 동시에, 복수도 결코 잊지 않는다. 정해진 규율과 약속은 지켜야 하며, 부당한 피해를 입었을 때 참지 않는다. 그러한 과정 속에 지나치게 아랫사람에게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와이프는 직장에서 그녀의 강 씨 성을 딴 '강틀러'라고 불렸다.)




우리는 사건사고 뉴스나 다큐를 즐겨보는데,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부부 이야기이다. 부부의 불화, 가정폭력과 같은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보며 "우리는 그렇지 않은데?" 하며 위안하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다. 그날도 남편의 불륜 등이 나오는 이야기를 보고 있었다. 한참 보고 있던 와이프가 운을 뗐다.


"오빠 바람피우면, 다음날 뉴스 1면에 나오게 해 줄게."


연애 때부터 즐겨하던 멘트였다. 그때는 "뉴스 1면에 나오고 싶나?" 정도였다. 와이프의 이 말은 어떤 뜻일까? 다음날 뉴스에 나올 정도로 소란 법석을 떤다는 말일까? 아니면, 나를 죽이겠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다. 평소 복수를 결코 잊지 않고, 반드시 찾아가 죽이겠다고 하는 그녀이기에 나를 죽이겠다는 뜻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에 하는 그녀의 말은 내 예상을 벗어났다.



"오빠 묶어다 놓고, 그 앞에서 내가 목을 매달 거다."



내가 바람을 피우면, 나를 죽이는 정도로 끝내는 것이 아니었다. 내 앞에서 자신이 자살하여 그 장면을 보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겠다는 것이다. 섬뜩한 복수 방법이다.(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순간 떠올랐다.)  이러한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녀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작은 개가 더욱 사납듯이 불안이 큰 사람일수록 공격적인 면모를 지닌다. 과격한 반응 이면에는 상처받고 싶지 않은 어린아이가 있다. 우리 와이프 역시 어린 시절의 아픔과 인간관계에서 많은 시련을 겪어 왔다. 상처는 제대로 치유받지 못해 흉터가 되었고, 그 흉터를 볼 때마다 상처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렇게 과격한 복수의 다짐은 그만큼 그 상처가 깊다는 것을 대변한다. 유독 배신에 대한 상처가 깊은 아내는 오늘도 배신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다짐한다.


ps) 덕분에 나는 바람 같은 것은 꿈도 못 꾼다. 아니 꾸고 싶어도 꿀 수 없다.(바람도 잘생기거나, 돈이 많아야 가능하니까.)




복수에 있어서는 과격한 표현을 하는 그녀. 하지만 과격한 표현 이면에는 지독하리만큼 나약하여 배신과 인내를 감내해 온 역사를 가졌다. 원래 속이 부드러운 과일이 겉이 딱딱한 것처럼 말이다.(우리 모두 이러한 부분이 조금씩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애정을 부족하게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겉이 딱딱해 보인다.(우리 시절 아버지들의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그 속은 부서지기 쉬운 푸딩으로 가득 차 있다. 그 푸딩을 볼 수 있을 때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AB형 여자의 겉은 냉혹하지만, 내면은 말랑말랑하다.(겉바속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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