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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an 05. 2024

내 배봐라

AB형 여자의 태도




내 주변에서 임종을 맞이한 반려견 두 마리가 있었다. 한 마리는 내가 어렸을 때 키웠던 개이고, 한 마리는 와이프 집에서 키웠던 개다. 두 마리는 모두 작은 개였는데, 16~17년가량을 살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제법 오래 산 편인데, 햇빛을 적게 보고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확실히 과학적으로도 자외선과 산소는 세포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오래 산 반려견을 보면서 오히려 적게 운동하는 게 좋은 것일까 생각하기도 했다. 허용범위에서의 자외선과 활성산소 농도는 그리 큰 위협은 아니지만, 어디 적정량만 채우는 게 쉬운가. 나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근육이 땅기고 할 때 행복감마저 드는 편이다. 하지만 우리 와이프는 이 세상에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행위 중 하나가 운동이라고 한다. 


"힘쓸 때 근육이 아픈데, 아픈 것을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면서, 

"나는 유리몸이니까, 힘든 건 다 오빠가 해야 된데이~"

라고 말한다.


딱 한번, 와이프가 헬스장을 다닌 적이 있다. 결혼을 앞두고 살 좀 빼볼까 하는 심산으로 한 달간 헬스를 끊었다. 하지만 한 달은 무슨. 일주일 정도 다니고는 일상으로 급하게 돌아왔고, 가만히 누워서 받는 마사지의 힘을 빌리기 시작했다.


뭐. 그래도 가끔 운동을 싫어하는 와이프를 보면 예전에 키웠던 강아지가 떠오른다. '햇빛도 안 보고 운동도 안 했었는데, 병도 없었고 오랫동안 살다가 가지 않았는가. 햇빛의 자외선과 운동할 때 나오는 활성산소가 더 해로울 수도 있겠지. 이로써 우리 와이프는 나보다 오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속으로 합리화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힘이 드는 일을 왜 사서 하느냐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 소소하게 하는 운동 말고 헬스장에서 열심히 근력운동을 하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근육 모양이 뚜렷하고 거대한 남자보다는 근육 외에도 적당히 지방이 둘러져 있는 체형을 더 선호한다.


"우와~ 내 배 봐라."

"오빠, 그래도 사랑하지? 안 도망갈 거제?"


같이 술을 거하게 먹고 부른 배를 까 보이며 나에게 물어본다. 본인은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아온지라, 나잇살이며 술로 인한 뱃살, 출산으로 인한 처짐 등이 진행 중이다.(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운동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자신이 배가 나왔지만, 그것을 사랑해라는 강요 아닌 강요를 한다. 거짓을 싫어하는 그녀는 "뱃살 안 나왔네, 내 눈에는 이뻐 보여."라는 것보다 "처진 뱃살도 괜찮아, 좋아."라고 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누가 봐도 나온 걸 안 나왔다고 하거나, 이뻐 보인다는 것은 오버스러운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만약 거짓말이 아니라면, 콩깍지가 씐 것으로 벗겨질 때가 두려워지니 또 문제다. 차라리 그냥 괜찮다고 하는 편이 적당한 거짓과 동시에 적당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뉘앙스가 있기 때문에 덜 부담스러운 모양새다. 


오빠는 못생겼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와이프도 스스로 거울을 보며,

"아따, 못생겼네. 이런 내하고 살아줘서 고맙데이~."

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빠는 못생겼지만, 나는 사랑한데이."라고 그녀가 늘 말하는 것처럼, "자기는 뱃살이 나왔지만, 나는 사랑한데이."라고 나도 말해준다.(어찌 보면 에둘러 서로 디스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못생겼던 뱃살이 나왔던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 것이 원초적 욕망의 조건이 될 수는 있어도, 사랑의 조건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AB형 여자는 솔직하고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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