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리를 ~~~~
어제는 오아시스 마트에서 시금치 한 단, 무 한 개, 두부 한 모를 고르고 있었다. 그때 벌교에서 막 올라온 꼬막이 유난히 싱싱해 보여, 나도 모르게 한 봉지를 들었다. 야채는 베란다에 내려놓고 꼬막은 소금물에 담가 해감을 했다. 점심을 제대로 못 먹어 누룽지를 끓였다. 따뜻한 누룽지 한 그릇이 텅 빈 속을 천천히 채워주었다.
유튜브에서 꼬막 삶는 법을 찾아 그대로 따라 했더니, 꼬막이 쫄깃하게 잘 익어 맛있다.
저녁을 먹고 온 남편이 아침에 드실 수 있도록 조심스레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예전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게 되다니.
지난 3분기에는 양식조리기본과정을 지금은 외식보다 맛있는 집밥요리를 배운다. 매주 화요일 오후 7시, 북부여성발전센터로 향한다. 은퇴 후에서야 비로소 ‘요리’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였다. 타르타르소스, 돈가스, 샐러드 등 30여 가지 양식 메뉴를 배웠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행주, 계량컵, 계량스푼, 가끔은 프라이팬까지 챙겨 집을 나선다. 지금은 밥반찬으로 유용한 요리를 배우고 있다. 요리가 있는 날은 하루가 가장 긴 날이지만 그 발걸음이 요즘 내 삶에서 가장 가벼운 순간이다.
요리수업은 나에게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새우 손질부터 튀기기, 스테이크 굽기, 스튜 끓이기, 샐러드드레싱 만들기까지 재료가 내 손끝에서 변해가는 과정이 신기하고 즐거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들이 퇴근 후 집에 왔을 때였다. 처음으로 만든 토마토해산물 스파게티를 건네주자
“엄마가 만든 거야? 진짜 맛있다!”
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 감동은 오래 가슴에 남았다.
타르타르소스는 여러 번 만들어보았고 서로인 스테이크도 집에서 복습해 보았다. 내가 제일 맛있게 먹은 사우전아일랜드 드레싱까지 직접 만들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보람되고 힐링의 시간이었다.
요리의 기본을 배우고 재료를 다루는 법을 익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미처 몰랐다.
그 생각만 하면 마음 한쪽이 아릿해진다. 어릴 적 바쁘다는 핑계로 잘 해먹이지 못했다. 이제 요리를 배워 할 수 있는 요리는 많아졌지만 아이들은 모두 내 곁을 떠났고 남편도 일하느라 하루에 한 끼만 나와 같이 밥을 먹는다.
그래도 요리하는 날이 다가오면 나는 다시 설렌다. 요리 시간은 인생 후반부에서야 만난 뜻밖의 선물이고 아티스트데이트이다.
지난주에는 골뱅이 사과무침을 배웠다. 골뱅이, 치커리, 깻잎, 오이, 풋고추, 사과, 양파를 준비하고
설탕, 소금, 고춧가루, 간장, 매실청, 식초, 물엿, 마늘, 생강즙, 깨, 참기름으로 양념장을 만들었다.
골뱅이를 먼저 양념에 버무리고 야채는 먹기 직전에 넣어야 아삭함이 살아있다.
그렇게 완성된 골뱅이 사과무침은 새콤달콤하고 상큼했다. 늘 안주로만 비싸게 사 먹던 음식을 내가 직접 만들어 밥상에 올리니 뿌듯함이 쑥 올라왔다.
외식보다 맛있는 집밥요리로 충분했다.
이번에는 오징어순대 요리이다. 오징어를 손질하고, 숙주와 야채를 다져 속을 만들고 벽면에 밀가루를 살짝 바른 뒤 70%만 속을 채워 꼬지로 고정한다. 찜기에 올려 김이 오르기 시작하면 내 마음마저 들썩인다.
찜기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걸 해내고 있구나’ 하는 감동이 밀려왔다.
완성된 오징어순대를 자를 때 작은 몸통 안에 내 정성과 배움이 고스란히 담긴 듯했다.
내가 만든 요리, 어때요? 맛있겠쥬?
요즘은 하루하루가 버라이어티 하고 순간순간이 작은 설렘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칼과 도마 앞에 서는 시간은 내 인생의 두 번째 계단을 풍요롭게 비춘다. 먹는 것이 건강의 기본인 것을 차츰 실감한다. 어제 아들이 원해서 외식을 했다. 그러나 다이어트 중인 내게는 먹을 것이 별로 없었다. 내가 만들어서 먹는 집밥이 이제 외식을 멀리하고 있다. 또 하나는 요리수업은 나를 가슴 뛰게 하고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또, 다음 요리 시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