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이광수의 꿈, 그리고 꽃

by Kyuwan Kim

식민지 조선에서 근대를 꿈꾸었던 한 지식인의 삶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동경 유학을 거쳐 많은 소설을 집필한 한국 근대 문학의 아버지이자, 언론인, 2.8 독립선언에서도 주도적으로 활동했으며, 상해 임시정부에도 관여한 이 민족주의자는 일제 말기 대동아 공영권 건설에 적극 협력, 젊은이들을 전선으로 내모는 연설을 하여 결국 친일파, 변절자라는 오명을 쓰고 해방을 맞이하는데... 연극은 반민족주의자 특별법이 추친되는 상황에서 그의 집에 분노한 민중들의 돌팔매가 날아드는 1947년의 경성에서 시작된다. 살벌한 현실로부터의 문학적 도피였을까? 그는 낙산사에 머물며 삼국유사 중 조신지몽을 소재로 ‘꿈’이라는 소설을 집필하는데, 이후 연극은 이광수의 삶과 소설 속 조신의 이야기라는 두 개의 축으로 전개된다. 현실의 욕망을 따라 절을 버리고 월례와 도망을 쳐 삶을 살다가, 이를 추적해 온 친구 평목을 죽이고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된 소설 속 조신의 삶은, 민족반역자로 지목되어 시대에 쫓기던 당시 이광수의 삶과 교차하면서 풍부한 울림을 만들어 낸다. 단, 조신의 삶은 그가 꾼 한바탕 백일몽에 불과했지만, 이광수의 잘못 꾼 근대의 꿈은 역사가 되어 현실에서 그를 옥죄고 있다는 데 문제의 비극성이 있다. 쫓기던 조신이 갑자기 이광수가 되어 대중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환상 속의 장면과, 이광수 자신이 과거에 쓴 문자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괴로워하는 장면은 오래 기억될 강렬한 명장면! 김순남의 음악과 가야금 소리 등을 배경음으로 이용하여 시대 분위기를 잘 살린 점이나, 한 폭의 정갈한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무대, 다양한 배역을 소화한 배우들의 안정적인 앙상블 등 섬세하고 완성도 높은 무대였다. 10/31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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