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양요, 신미양요, 갑신정변, 을미사변, 아관파천, 동학농민전쟁, 갑오개혁, 대한제국수립, 을사늑약으로 이어지는 되돌아보기에도 숨가쁜 19세기말과 20세기 초의 조선의 역사를 독일인의 눈으로 살펴본 책이다. 대학에서 사학을 공부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난 저자가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발견한 세 건의 구한말 조선 관련자료를 번역하고, 그 중간에 설명을 덧붙여 쓴 책인데, 한 번 쯤 들어본 듯한 역사이야기지만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을 외국인의 눈에 비춰진 당대의 풍경과 이야기는 묘한 흡인력이 있어 끝까지 긴장하며 읽었다. 세 건의 자료는 각각 독일 산림청 간부 크노헨하우어의 강연문(1901), 예술사 연구자 예쎈의 답사기(1913), 지리학과 교수 라우텐자흐의 백두산 여행기(1933)이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야욕이 나날이 노골화되는 망국의 상황에서 고종은 중립국 선언, 대한제국선포, 해외에 밀사파견을 하기도 하고 러시아, 미국, 영국, 독일의 외교적 도움을 기대하기도 하지만 국력이 약한 나라가 외교적으로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얼마나 무망한 것인가를 책은 정직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조선을 방문한 푸른 눈의 이방인들의 방문도 실제로는 서유럽 제국주의국가들의 식민지개척이라는 실리적 목적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과, 어쩔 수 없는 그들의 '오리엔탈리즘'의 시선도 분명히 드러나 있다. 평화롭고 조용한 삶을 즐기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우아한 루저의 전형'이라 느끼며 호감을 갖고, 왕실 공예품의 높은 수준에 감탄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관심을 가진 분야는 무역이고, 금광이며, 천연자원이다. 게다가 일본을 통해 얻은 조선과 중국에 대한 그들의 정보는 부정확하고 자주 왜곡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 시절에 백두산, 한라산, 울릉도를 답사하고 인문지리적으로 조사한 내역이나, '조선의 제물포는 위도상 리스본과 메시나와 같은 위도상에 위치하고, 부산은 키프로스와 크레타와 같다'라는 문장에서 읽히는 근대적이고 지구적인 관점은 놀라웠다. 아울러 백두산 여행 중 목격한 '강도떼'가 당시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부대의 일부일 것이라는 분석도 흥미로웠다.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과의 외교전이 백년 전을 연상시킨다는 비유를 미디어에서 자주 듣는다. 물론 지금 우리는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국력을 가진 나라가 되었지만, 결국 그 역사의 연장선에 서 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100년 전 조선의 모습을 통해 한번 쯤 되돌아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