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일하고 싶은 밀레니얼 세대 = 나
'무슨 일을 하느냐.' 능력주의 사회에서 중요시하는 요건일 것이다. 특히 '얼마를 버느냐'는 21세기를 살아가며 대두되는 논점이다. 돈과 직업이 주는 가치가 상대방을 판단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밀레니얼 세대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얼마를 버느냐' 보다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을 추구하기에 최근 '공무원 열풍'이 불어온 것이다.
나는 사립학교에서 근무하는 '교무행정지원사'이다. 어떻게 준비했냐고? 한 마디로 시기가 너무 잘 맞았다. 내가 광고디자인 회사에서 직속 선배에게 시달리고 있을 때였을 거다. 그 때, 원서를 넣게 되었고 직무를 바꾸며 환승 이직하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행정실에 원서를 넣었다. 이게 그래도 면접 볼 때 한 몫을 했던 것 같다.
광고디자인 회사는 '비딩'이라는 프로젝트를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한 마디로 '밥줄싸움'이다. 광고를 진행하고 싶어 하는 외주 업체에 타 광고디자인 회사들과 광고기획 제안서를 경쟁하는 것이다. 나는 입사 2주 만에 '비딩'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2주내내 밤 11시에 퇴근했던 것 같다. 광고디자인이 야근이 많다고는 하다만 실제로 겪어보지 않았기에 코웃음 쳤는데, 괜한 말이 아니었다.
밀레니얼 세대인 나에게 '적당히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가져보자' 라는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게 다 내 뜻대로 된 것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는 정기적으로 야근을 해야 하는 직업에서 탈출했다. 오후 4시 20분이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근한다. 그런 나에게 무슨 이유인지 업무 3년차에 또 한 번의 권태로움이 찾아왔다.
N차 노잼 시기
일상에 재미가 없다면 누구를 탓해야하는가? 내가 속한 사회인가, 나 자신인가? 대부분의 문제는 나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그러나 인생노잼시기에는 마음가짐이고 뭐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귀찮고, 하기 싫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나에게 인생노잼시기가 찾아온 것은 2번 정도가 있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교무행정지원사 업무 1년 차 때 한번, 3년 차 때 한번 있었던 것 같다. 이 시기가 찾아오는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다. 뭐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막연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바라보며 살고 있기 때문일까.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 또한 하지 않았다. 그냥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기다보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은, 업무의 권태로움이 찾아왔을 때마다 친한 행정실 선생님에게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다. 그 때마다 현명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회사에서 무언가로부터 힘들 때 의지할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에 참 감사했다.
그럼에도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또 한 번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권태로움 앞에 흔들릴 때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3차 인생노잼시기를 대비해서 열심히 머리를 굴려본다.
읽고, 쓰고, 듣고, 말하기
읽기
업무 메신저로 여러 쪽지가 올 때 읽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오늘은 그다지 많은 정보를 입력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쪽지에는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함이 틀림없다. 쪽지를 보낸 사람의 입장에서는 꽤나 중요한 내용을 전달했을 테니까. 이 쪽지를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냐, 그저 흘러가는 이벤트로 여길 것이냐. 판단은 나의 몫이다.
메신저의 쪽지뿐 아니라 공문도 포함되는 내용이다. 본인의 업무포털 공람함에는 50여건의 읽지 않은 공문들이 쌓여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열심히 읽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교육청으로부터 전달되는 내용을 열심히 읽어보자. 어떤 세상의 지혜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쓰기
그 동안 꼭 하고 싶었던 '데일리 업무리스트'를 2021년 3월~4월부터 작성하는 중이다. 일반 회사 같았으면 일간/주간/월간 업무보고를 지겹도록 했을 거다. 그러나 딱히 뭐라 할 사람 없는 학교기관에서는 나 자신만이 경쟁상대이기에, 3년 차가 되어서야 시작했다. 사실 1년 차 때도 부장님께서 작성해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만들어 생각날 때마다 작성하긴 했었다. 그런데 노트북으로 작성하니 일처럼 느껴지고, 까먹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최근에 수기로 작성하고 체크해보았는데 훨씬 부담이 덜하여 기록하는 중이다. 기회가 된다면 월별 업무리스트를 정리해서 올려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
듣기
나는 종종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경향이 있었다. 좋은 듣기를 위해서는 먼저 정신적, 육체적으로 회복이 되어 있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선생님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정신을 가다듬고 들어보자.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오신 분에게서 어떤 현명함을 듣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말하기
말하기는 최종 단계이다. 업무에서 만 렙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쪽지를 열심히 읽고, 공문을 부지런히 확인하고, 일간 업무리스트를 빠짐없이 작성하고, 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을 잘 들은 후에 말할 단계가 주어지는 것이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단어는 정해져있다. 한 단어로 말하자면 "네!" 정도랄까? 그래도 업무를 하며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넋 놓고 있기 보다는 그동안 읽고, 쓰고, 들었던 내용을 토대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