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아지면 우울도 깊어진다. 우울함을 생각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우물에 이른다. ‘우울하다. 우물하다.’ 우울할 수는 있지만 우물할 수는 없다. 우울은 마음속에서 생동하는 것이고 우물은 그 자리에 놓여 있는 사물이기 때문이다. 우울하다는 감각이랄까 감정이랄까, 실체를 알 수 없는 이것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수 없음이 갑갑해서인지 우울함을 곱씹다 보면 우물이 보이고 우물이 보이면 어둠과 물소리와 이끼와 퀴퀴한 냄새가 차례차례 나에게 닿는다. 그러면 우물에 들어가 그 속에서 몸을 웅크려 끌어안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내가 보인다. 머리 위에는 하늘이 있고 몸은 물에 둘러싸여 있으며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초침 소리가 되어 귀에 닿는다.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물방울 소리가 우물 안 정적을 깬다.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깜빡이고 있는 눈에 들어오는 게 하늘밖에 없는 것은 내가 잠들어 있기 때문일까 세상이 멎어 있기 때문일까 하고. 똑, 똑, 똑. 쉬지 않고 규칙적으로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이 어깨를 매만진다. 차갑고 아프다. 그 속에서 아린 따뜻함을 느끼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눈물을 쏟아내듯 머금고 있던 숨을 토해낸다. 그제야 알아챈다. 내가 이 시기를 버텨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숨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이 바람을 불어온다. 구름이 움직이고 우물 속 물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하늘에서부터 이른 바람이 어둠과 우물과 가슴속 구멍을 천천히 매만지며 말한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고. 우물이 깊어지고 있다고. 우물에 잠기기 전에 의식의 눈을 떠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