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짝사랑,

손 끝으로 여는 작은 세상

by 임그린


지금보다 가진 상처가 더 적고, 더 작았을 때 나는 짝사랑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누군가를 그저 바라보며 혼자 좋아한다는 건 함께 바라보며 사랑하는 것보다 쉬운 일일 수 있다. 서로 의견을 조율하지 않아도 되고, 얼굴을 붉히며 싸우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내 마음만 들키지 않게 잘 간수한다면.

문제는 내 마음을 잘 간수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처음엔 스쳐가며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겠지. 어쩌다 한 번씩 연락을 주고받으며, 아무 감정 없이 웃어주는 말 한마디에 며칠을 버틸 수도 있게 되겠지.

그러다 결국 욕심이라는 게 커지면 그때부터 괴로움이 시작되는 거다.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게 되고, 의미 없이 내뱉는 말들에 상처받게 되고. 내가 아니더라도 그가 웃거나 울게 되는 일에 가슴이 저리게 될 거다.
그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인내심을 소모하게 되고, 결국 인내심이 바닥 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두려워 화를 내게 된다.

한 두 번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짝사랑이 매번 같은 패턴을 갖게 되면서 두려워졌다. 그 일로 내가 망가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상처로 남는다는 걸 알았기에.
짝사랑엔 참 소질이 없구나, 결론에 이른다. 하고 싶지 않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잘 하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지만, 시작하기 전엔 갈등이 생긴다. 감기 열을 심하게 한 번 앓고 내일부턴 없던 일처럼 살아갈 것인가, 야금야금 행복도 주고 아픔도 주는 짝사랑을 천천히 견뎌 볼 것인가.

내 마음이 온전히 내 편이 아니고, 내 것이 아니기에 이런 소모전이 생긴다. 어떤 길을 가든 내 정신과 마음은, 이번에도 무엇인가 배우게 되고, 어떤 식으로든 성장하겠지만 이번에는 좀 덜 아프길.

그래서 밤새 혼자 베갯잇을 적시는 날의 수가 좀 더 적어지기를, 희망한다.



keyword
이전 01화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