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이때를 예견하지 못했고, 천애고아와 같은 버림받은 자가 바로 자기가 될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백색 실명.
인간은 평소 절대 하지 않았을 의존과 절박한 생존 욕구에 그제야
손끝으로 세상을 만지며 귀로 들리는 미지의 음성에 희망을 걸었다.
점차 오염된 주변과 거리에서 발생되는
불결하고 질척되는 그것들이 시각을 제외한 오감으로 다가오며
거부할 수 없이 후각으로 확인된다.
그 감각이 살아있음이 형벌처럼 끔찍한 오염과 더러움을 상상케 하는 불결한 고통에 개인의 자존은 땅속까지 처박혀야 했다.
팬데믹의 상황.
원인을 찾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미,
파스카(구약의 이집트를 탈출시키기 위한 야훼의 심판;문설주에 양의 피를 묻혀 표식을 하지 않은 애굽의 가정은 모두 재앙을 피할 수 없었다. 오직 당신을 믿는 이스라엘 가정은 죽음의 천사를 피할 수 있었다.)를 피할 수 없이 누구나 실명의 전염은 이유도 없이 찾아왔고
일상의 나와 너는 구별 없이 죄인이 되어 그 지옥 같은 일들을 겪어야 했다.
수용된 곳.
격리와 봉쇄로 불행을 더 이상 번져가지 못하게 막아야 할 곳에서 당신은 그 끔찍한 영혼의 살육마저 겪어야 했다.
약육강식의 인간 질서의 끝판에는 그곳에서 마저 축소판이 되어, 더러운 욕망의 악마를 드러낸 육욕과 약탈이
타인의 자존을 짓밟고 생존을 이유로 양식을 구걸해야 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러운 성욕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던 야만의 순간,
유일하게 깨어있어야 하는 형벌 같은 사명을 얻은 그녀는
이러한 이유로 왜 자신의 손에 금속성의 날카로운 물건이 쥐어져 있는지
그 이유를 발견해 간다.
약자들을 대신해서, 억압받고 약탈받은 권리를 되찾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영혼의 실명으로 평소에도 눈이 멀었을 개자식들을 응징한다.
그들이 눈멀지 않았으면 보이지 않았을 것을,
혼자만 눈뜰 수 있음에 감사보다도 혹독한 멍에를 이고
내비게이터의 사명을 그렇게 이어갔다.
약탈자가 된 이들은 스스로도 약탈당하며
자신을 버린 듯한 도시에서
더러운 생명력을 발휘하다가 그렇게 죽어간다.
운명의 순리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규칙과 존중을 기반으로 서로 연대한다.
교회를 이어오던 과거 성인들의 영화로운 동상들도 눈이 가려졌고
예수마저도 백색의 눈가리개를 했던 백색 암흑의 시기,
살아남은 이들의 원죄는 심판받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순간
이 생존게임은
처음 눈이 먼 자부터 하나 둘 눈이 보이며, 악몽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2. 우리들의 나눔
■두려운 건 보이지 않는다는 것보다, 눈이 멀었을 때 인간이 어떻게 표출하느냐가 두려운 것이다. 내 안의 본성을 보이기가 두렵다.
모임을 준비하기 위해 한참 전부터 미리 읽어 놓은 것이 후회될 정도로 힘들었다.
역겹고 고통스러워 회피하고픈 인간의 본성을 보고 스스로도 눈먼 시연을 해보았다. 집을 더듬어 보았을 때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답답한 나를 깨닫는다. 평소 그야말로 눈감고도 볼 수 있던 내 생활 반경이 아니었던가!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기본 욕구인 먹기, 성과 같은 태초의 인간의 모습이 까발려지는 데 적응하기 힘들었다.
문명 이후 생겨난 본성을 감추는 인간의 모습에 부끄럽고 화가 난다.
어쩌면 내 안에 그것!-포장이 드러나서일까?
오물 덩어리를 생각하며 힘들었던 나. 이 책은 너무 힘든 책이었다.-서희님-
■볼 수 있는 게 당연한 것인데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전에도 읽고 좋았던 기억이 있다. 재미있었다.
원래 눈먼 것이 아니라 보고 싶지 않아서 안 본 것들이 많았을 것이다.
눈먼 자들의 범죄도 폭도들도 그들뿐만이 아니라 모두 범죄자이지 않을까.
위기 상황의 평등한 무질서, 무정부속 범죄를 벗어나는 1병동의 사례를 보며, 남편의 정사를 용서하지 못할 텐데 혹시 그녀는 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일을 겪고 다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듯. 의사 아내는 양극의 모습을 표출하는 사람들 속 현실성은 좀 떨어진다. 그게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역할이란 말인가!-은하님-
■긴 악몽, 가위에 눌린 시간이다.
2년 간의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이 책을 보니 사회적 재난을 생각하게 된다.
전체를 보지만 본질을 못 보고 가치를 등한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왜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지 못한다.
눈 없이 손과 목소리로 놓친 것에 대한 소중함은 더듬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두목은 악의 축, 의사부인은 선의 축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드러나는 현실의 난장이었다.
그 상황이 된다면 평소 자유로운 권리 속 몰랐던 것을 보게 되지 않을까.-서영님-
■그녀의 사명이 혹시 내가 짊어지는 게 아니길. 니느웨로 보내진 요나처럼 나는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아직도 부족하기에. 이젠 몸도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니...
최근 회자되는 오징어 게임은 스스로를 탐욕의 제물로 바쳐 인간이 어떻게 쓰러져 가는지를 보여준다.
쾌락에 깊게 빠져 그들의 죽음으로 나락에 빠진 원죄를 희석시킨다. 씁쓸하다.
눈멀지 않은 이들은 보는 내내 찝찝해하며 그 흥행에 대해, 세상의 탐욕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단지 드라마니까, 단지 소설일 뿐이니까
끝장을 덮고 나면 끝나는 게임이 아니란 걸 아셨으면 한다.-노작가님-
3. 모임을 마치며~~
▷서희님
-두통으로 힘들었는데 이렇게 의견을 듣고 편해졌다. 무사히 빠져나와 감사할 지경이다.^^
하나에서 열 까지, 옷장의 문을 열어도 무슨 소용이 있는가. 눈이 먼다면!
지구의 정화가 필요하다. 바닥까지 내려간 책이다.
△서영
-이전에 책 속 불편한 진실에 시달렸는데 인간의 바닥까지 쳐내려 간 내면 속 내 모습도 보이고 정화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이름이 없을까. 뭐 중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눈이 안 보이는 것처럼 보다 본성 위 무엇을 찾아야 할 자기 모습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개체성이라 할까.
정신병원의 소요사태를 세상의 단면으로 여긴다. 차라리 수용된 상태가 나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되새겨본다.
△은하님
-볼 수 있는데 보지 않는 눈먼 자들, 그들과 똑같은 나이다.
△노작가님
-눈멀었었다는 것을 알고도 여전히 희생이 따르는 조직 내 규칙보다 나와 내 무엇이 우선이어야 하는가. 무엇이 강한 멘탈인가.
태초의 인간 본성은 사라지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부끄럽지 않게 진화했으면 좋겠다.
내게 상황이 닥칠 때 내 손에 가위가 있다면 난 그놈, 그년의 목을 그어버릴 것이다. 그러고 나서 여전히 내 모습을 감당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안 보이는 것은 몰라도 적어도 내 눈에 보인다면 '저기요!'하고 외치기라도 할 것이니까. 무모하다. 무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