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광장에서 혼돈을 정리하다
사람인 줄 알고 말을 건네려고 다가가면, 깎아 놓은 장승이었다. 진짜 사람을 만나야 했다.
작가는 말한다. 역사는 소걸음으로 움직인다. 슬기는 슬픔과 기쁨을 고루 나누는 것이다. 사람이 이루어 놓은 것에 눈을 두지 않고 이루어야 할 것에만 눈을 돌리면 그 자리에서 그는 삶의 힘을 잃는다. 은혜의 죽음은 명준에게 마지막 돛대가 부러진 것이다. 결국 세상에서 난파된 명준은 항구를 잊고 물결에 흘러 다니며 환상 없는 섬을 찾아 지친 몸이 수명을 다하다가 떠나기 위해 중립국을 선택한다. 거기에서 가장 작은 시민으로 조용히 살기를 희망했다.
타고르호를 타고 떠나는 명준에게 환영이 따라다닌다. 얼굴이 없는 눈. 누군가 그를 감시하는가? 정신적 부채가 혼을 끌고 다니는 것일까? 제 나라를 버리고 쫓기는 수난자를 인도인 선장은 환대한다. 그러면서 따라오는 갈매기는 죽은 사람의 넋일 거라고 또는 뱃사람을 잊지 못하는 여자의 마음일 거라고 농담을 한다. 하지만 그때부터 명준에게 갈매기는 환영일 뿐이고 떠나온 곳의 여인으로 자리 잡는다. 배 마스트에 걸린 흰 댕기는 그녀들을 기억하게 하고 댕기의 대리품인 새는 못다 펼친 인생과 사랑에 대한 광장을 떠다니는 환영의 표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