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

by writernoh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다시 읽어 보았다. 세익스피어를 읽고 난 후의 멋진 신세계는 새로운 문으로 열리는 신세계이다. 세익스피어를 자주 인용하기는 했어도 헉슬리의 창조물 '존'만큼 몰입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안정'이라는 삶의 기반 위에 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생부터 이방인이었던 존처럼 고독과 타성의 충격에서 갈구하는 유토피아를 흠모하고 났을 때

떠나온 그곳이 자꾸 되세겨진다면 끝도 없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처럼 인생은 또 새로운 국면으로 본의아니게 흘러가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는 것.

그러나 과거의 그곳도 현재의 이곳도 내가 설 곳이 아님을 느낄 때 스스로에게 가해지는 채찍질은 그저 자책일뿐, 존재하는 그곳이 너의 땅이라는 것을 눈뜨고 더 늦기 전에 데스데모나를 잃지 않도록!



1. 탄생

런던 중앙 인공부화장 조건반사 양육소에서는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간다. 유령 같은 조명아래 그와는 반대로 생동감을 발하는 매끈한 원통이 컨베이어 시렁에 매달려 간격마다의 의미를 부여하며 돌아간다, 이곳은 공유, 균등, 안정이라는 세계 국가 표어의 이념대로 척척 돌아가는 인류 생산의 현장이다.

이 세계에서 행복한 성원이 되려면 삶의 전반적인 지식과 이해는 최소한 억제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계급대로 주어진 소명을 다하면 만족스러운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맡은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은 덕과 행복을 증진시킬 수는 있겠으나 전반적인 지식은 필요악이다. 다른 분야의 것은 더 알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참고로 이 세계에서 철학자는 사회 근간을 이룰 수 없다.

때는 포드 기원 632년. 알파와 베타 계급만이 다공질 용기 액체가 든 병 속에서 1대 1 난자 결합을 통해 온전히 36시간 이상 성장할 수 있다. 그 이하 계급으로 태어날 생명체는 보카노프스키법에 의하여 다수 발아 형식으로 중간 개입을 진행한다. 이것은 사회 안전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대량의 일란성 쌍생아들을 탄생시킨다. 한 개의 난소가 1만 6천 20개의 최다 쌍생아를 탄생기키기도 했다. 이 다수는 사회 기초 구성원이 된다.

계급 예정계에서는 병 속에 담긴 태아의 사회 계급을 분류하여 각 계급에 따라 조건반사적 양육과정을 거쳐 성장하게 한다. 이들은 아기 때부터 사회화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태아가 든 병의 컨베이어 회전수를 줄이면 대용 혈액의 순환 속도가 느려져 산소의 양이 감소한다. 계급을 분류하기 위해 아래 계급의 태아에게는 인위적 산소 결핍을 주는 것이다. 인간적 지능과 발육을 억압하면 어떤 태아는 엡실론 계급이 된다. 또 어떤 태아는 열조건반사 습성 훈련을 거쳐 열에 강한 아이로 성장해 더위를 사랑하게 된다. 이들은 광부나 인조견 직조공이 된다. 자신들이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타고난 천성을 부여하며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숙명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이 태아 컨베이어 벨트 생산의 핵심기술이다. 신세계 인간은 이렇게 탄생한다.



2. 돌연변이

이곳에는 가족과 부모 혈연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젊고 건강하며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된다. 화를 내며 싸울 이유도 없고 굳이 남의 것에 탐낼 필요도 없다. 물론, 하위계급은 모습마저 똑같은 쌍생아이지만 알파, 베타 계급은 아이들이 성장하며 외모가 차이가 난다. 그렇다 하더라도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 본능적인 욕구가 해결되기 때문에 언제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의식주는 물론 성욕마저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원하는 이와 거리낌 없이 약속하고 밤을 보낸다. 데이트하며 사귀는 것은 일종의 미덕이다. 이들에게 출산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는 그 누구와도 잠시의 사랑을 나눌 수 있다. 결혼이라는 개념자체가 없기 때문에 성은 그저 쾌락의 하나일 뿐이다.

간혹 특정변수로 생기는 스트레스나 피곤은 ‘소마’라는 알약만 먹으면 훌훌 털고 새롭게 리셋되기 때문에 걱정거리도 없다.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전락할 필요도 없고 건강한 삶을 살면 그뿐이다.

레니나라는 젊고 매력적인 여성은 특히 인기가 많다. 멜서스의 허리띠를 선물 받아 차고 다니는데 한쪽에 피임약 통이 달려있다. 오늘도 퇴근 후 데이트를 하며 즐길 예정이다. 요즘은 헨리 포스터와 교재 했으니 상대를 바꿀 생각이다. 여름 휴가로 야만인 구역에 가보고 싶은 생각에 그 코스를 추진 중인 인기 없는 버나드 마르크스를 선택할 생각이다.

버나드는 알파계급이기는 하나 좀 다른 데가 있다. 보통의 알파들과는 달리 외모에 매력이 없고 남다른 행동을 한다. 그러나 레니나는 개의치 않는다. 버나드는 컨베이어 벨트 시절 누군가 병속에 알콜을 잘못 주입해서 순수 알파가 아닌 하위 계급 성향이 들어갔을 것이라는 소문이 돈다. 육체적 결함의 결과 그는 동료들로부터 고립되기도 했고, 이 고립은 세상에 통용되는 일반적 표준치로 볼 때 정신적 과잉을 가져왔다. 남들 안 하는 생각을 하는 버나드는 소마를 먹어도 해결 되지 않는 깊은 고립감으로 돌연변이처럼 만족과 쾌락을 향유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세계의 돌연변이는 그만이 아니다. 유일한 그의 친구 헬름홀츠는 지나친 ‘지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사회에서 그는 너무 깊이 지식세계에 몰두한다. 심지어 그는 무언가 훨씬 중요한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욕망을 느끼기 까지 한다. 이 자체가 허용되지 않은 욕망하지 않는 사회에서 헬름홀츠나 버나드는 숨겨진 욕망을 갈구한다.

그러나 남과 다름은 그에게 더욱 고립을 증가시켜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당장 버나드는 모임에 참가한다. 찬가 성당 단결 서클이란 곳은 함께 소마를 공유하고 단체 만족감을 얻어 타인처럼 행복해지려는 모임이다. 한마디로 개인의 정체성을 포기하기 위한 모임이다.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서. 그러나 아무리 찬가를 부르고 효과가 오는 척을 해도 그의 눈에서는 빛이 나지 않고 양 볼에 홍조도 없다. 보편적 자비와 빛으로 행복하고 다정한 미소는 오지 않고 나른한 기분마저도 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태아시절 그의 병에 다른 성분이 들어간 게 맞는 것 같다.

그런 그에게도 드디어 레니나로부터 데이트 신청을 받고 단둘이 있게 된다. 버나드는 단 둘이 있고 싶었고 해협 위 100미터 상공에서 배회하며 기분을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철저히 알파인 레니나는 육체적 결합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왜 그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나대로 있고 싶습니다. 아무리 즐거울지라도 타인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이런 말은 금기와도 같은 것이었으므로 암시 교육된 레니나는 불쾌함 부터 생겨난다. 버나드에게 있어 그녀는 영혼 있는 생명체라기보다 단지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3. 야만인

두 사람은 드디어 야만 세계 관광지에 도착했다. 레니나는 불결한 주변에도 불만이었지만 인디언처럼 보이는 그 곳 사람들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학습된 불쾌함이 솟았다. 심지어 그들의 삶은 원시적으로 가족을 유지하고 출산을 한다는 것에 더 구역질이 났다. 레니나는 소마로 잠을 청하며 감정을 리셋 했다. 하지만 버나드는 그곳에서 ‘존’이라는 금발머리 청년을 만나 더 깊숙이 탐색하게 된다.

존의 어머니 린다는 원래 문명세계의 베타 계급 여성이었다. 그러나 오래 전 알파 남자친구와 이곳으로 여행을 왔다가 사고로 혼자만 남게 되어 더 이상 문명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더군다나 문명 세계의 피임약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이곳에서 출산을 해야 했다. 그가 낳은 아기의 아버지는 출산을 혐오하는 같이 왔던 알파남 토마킨이었다. 그는 현재 문명세계 인공부화소 최고 권위자인 소장이었다. 버나드는 모자의 이야기를 듣고 존이 미흡한 알파라고 자신을 무시하는 소장 토마킨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소장을 누룰 수 있는 기회였다. 확실히, 컴플랙스에 시달리는 버나드는 순수 알파는 아닌 것이다.

어쨌든 버나드는 린다와 존을 문명 세계로 데리고 간다. 가서 존이 소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밝히자 수치스러워진 소장은 그 즉시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버나드 자신은 일약 야만스타의 매니저가 된다. 문명인들은 존이라는 젊고 싱싱한, 그들의 알파 플러스보다도 남다른 매력에 자석처럼 끌린다. 단조로운 세상에 얼마나 짜릿한 충격인가!그가 야만 세계에서 출산을 통해 성장했다는 것이 혐오스러웠지만 놀라운 일이고 문명세계에 이런 이슈가 발생됐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간 버나드에게 관심주지 않은 많은 여성들이 존의 후광으로 드디어 버나드에게 미소를 던졌고 버나드는 드디어 존의 이미지 뒤에서 쾌락의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그의 유일한 친구 헬름홀츠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멀어져 간다.



하지만 존은 고독한 경계인이었다. 야만세계에서 그는 이방인이었기에 아이들의 따돌림을 당하며 성장했다. 게다가 어머니 린다는 문명세계의 습성으로 아무 남자와 관계했고 야만세계에서는 몹쓸 여자로 인식되었다. 그러니 존도 야만의 사람들에게는 몹쓸여자의 아이일 뿐 그들의 통과의례에서 제외 대상이었다. 존은 그곳에서 고독을 느끼며 홀로 성인식을 치르고 다행히 그곳 미지마라는 노인에게 도움을 받아 정신적 성숙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이겨내지 못한 정식적 트라우마는 어머니의 혼란스런 사생활이었다.


어느 날 포페라는 원주민과 잠자리에 든 어머니를 보고 포페의 검은 피부와 성에 에 저항을 한다. 그를 죽이려 했으나 오히려 포페는 그를 제압하고 그가 성장했음을 인정한다. 린다는 야만세계에서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아들의 찢어진 옷조차 꿰맬 줄 모르는 컨베이어로 단일 학습된 무능이 존재한다. 베타계급의 의무 외에 삶의 방식이 학습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린다는 자신의 무능과 아들의 거부감 때문이었을까 포페와 존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 쾌락의 추구와 문명세계에 대한 향수만으로 삶은 피폐해지고 소마대신 포페가 가져다 주는 술에 의지하여 늙어간다. 이러한 존이 어느 날 문명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4. 수도사와 군중

사람들의 그에 대한 관심은 집착 이상이었다. 이미 야만 세계에서 살 때 포페가 구해다 준 세익스피어 전집을 통해 사상을 구축한 존은 자신을 배척했던 야만세계를 떠나 문명세계에서 세익스피어적인 삶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발달된 문명 목록에는 그러한 지성은 없었으므로 하나같이 단순하고 기계적이었으며 삶을 쾌락적 즐거움으로만 채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존은 현재 세상의 분리 이전 모든 것이 사라져갔지만 야만 세계에 골동품으로 남아 있는 세익스피어에 깊이 심취했고 인간의 삶이란 깊이 성찰하고 고뇌하며 진정한 사랑을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자각했다. 하지만 린다로부터 영향받은 성에 대한 트라우마는 이성간의 사랑에 대해 거부감을 심어놓았고 문명세계의 알파 여성인 레니나의 적극적인 사랑조차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존은 레니나가 야만세계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그녀를 고귀하게 여겼고 조심스럽게 관찰하며 사랑의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랑은 근세 세익스피어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망이었고 레니나는 포드 기원 후 몇 세기의 사람인지라 수 백년의 정신적 간극은 좁혀지기가 어려웠다.

존은 문명세계의 소마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독이라 여겼다. 그러나 어머니 린다는 자신의 고향에 들어와 엄청난 소마를 흡입하고 결국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문명세계의 죽음은 유아 때부터 학습되어 길들여진 당연한 결과였으나 이방인 존은 어머니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끼며 깊은 슬픔에 빠진다. 그런 존에게 레니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끼며 적극적으로 다가선다. 하지만 존의 마음에서는 레니나가 접근할수록 그녀를 창녀로 매도하게 되고 자신만의 사랑의 법칙을 깨려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삶의 반대급부로 순결주의에 집착한 존은 레니나에게 분노를 터트리고 마치 세익스피어 비극 오셀로에서 사랑하는 데스데모나를 간신배 이아고의 말만 듣고 간통을 했다고 여겨 죽인 오셀로처럼, 레니나를 정신적으로 살해하며 내치게 된다. 다른 세상의 사랑에 대해서는 백치일 수밖에 없도록 학습된 레니나는 상처받으나 이전과는 달리 소마로 리셋하지 않고 그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쯤 존이 버나드가 벌여놓은 쇼를 즐기기 위한 대중 앞에 나서지 않을 것을 주장하자 군중들은 버나드를 탓하고 무시하며 상대하지 않았고 다시 하찮은 인물로 전락하고 만다. 그제서야 버나드는 다시 헬름홀츠를 찾아간다. 헬름홀츠는 버나드를 받아주고 다시 교제한다. 이후 존과 헬름홀츠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버나드와 존이 가질 수 없던 관계를 헬름홀츠는 쉽게 이루어낸다.

총통 무스타파는 헬름홀츠와 버나드를 섬으로 추방하고 그들을 따라가겠다는 존은 가지 못하도록 떨어뜨려 놓는다. 존은 교외로 나가 고독한 등대에서 가능한 물질을 배격하고 원시적 삶으로 홀로 생활한다. 고뇌를 느낄 때마다 중세 수도사처럼 자신의 몸에 채찍질을 하며 구도를 하는데, 이를 몰래 염탐하여 영상을 찍은 기자 다윈 보나파트르에 의해 그의 삶이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문명인들은 개인 헬기를 타고 그의 은둔지에 날아와 채찍질을 하라 외치며 그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레니나가 찾아왔으나 그는 다시 그녀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존은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삶을 마감한다.


20세기 초 헨리포드는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으로 분업을 최극대화시켰다. 이러한 작업은 대량 생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지쳐 떨어져나가는 작업자들에게는 정신적 고역이었다. 다른 회사보다 급여를 인상시킨 것은 이러한 조건에서도 참고 견디며 일할 수 있는 노동자를 길러내기 위해서였고 누군가는 그 대열에 스스로 동참하여 노동의 대가를 쌓아갔다. 하지만 노조도 설립할 수 없었고 일의 노예로 전락하는 자신의 과몰한 체력을 극복하기에는 또 다른 생존수단이 필요했다.

소마는 그래서 탄생했다. 먹고살기는 좋아졌지만 시시각각 발생하는 혐오와 분노는 어떻게 다스려야할까. 그래서 종교를 필요로 했고 자선이나 선행이 위로를 해 주었기에 일부는 사회사업에 신경을 쏟았다. 그러나 자본의 대량 유출은 돌고돌아버린 인간은 너덜하게 살아남았거나 미쳐버리거나 할 운명에 뒤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런 단순한 기계와는 달리, 아무리 첨단과학기술이 수면기억이나 세뇌를 강행해도 지워지지 않는 돌연변이의 유전자가 발생한다.

신의 변수의다. 돌연변이는 부주의가 아니라 억지스러움의 결과로 일어나는 면역이다. 다소 주류와 어긋나는 이변을 동반하기는 하나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반칙을 경고받는 창조주의 뾰족한 일침으로 인류를 통제하려는 자들의 로망은 한계를 지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때로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이 찍히기도 하지만, 어떤 돌연변이는 우공이 되어 산을 옮긴다. 그러나 우리의 존은 스스로 존재하겠다는 의지마저도 미친 군중에 의해 짓밟히는데 알파 군중1이었던 찌질한 버나드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린다를 버리고 도망친 토마킨이나 버나드나 찌질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인공적으로 학습된 이기심은 그들과 계급사회 모두를 영혼없는 영원히 미완성중의 찌질이로 결정짓게 한다. 차라리 야만 세계의 포페는 린다와 존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물- 술과 세익스피어-을 제공하며 그들 곁에 머물러 주었다.


문명의 세계에서 바라본 기가찬 광경에, 존은 세익스피어식 '멋진 신세계여!'를 역설하여 외치며 싸늘히 경멸에 들어가는데 누구도 그에게 왜 여세추이하지 못했느냐고 따질 명목이 없다. 학습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컨베이어 병 출신의 미친 군중만이 그의 채찍질의 의미를 통렬히 오해하여 폭력으로 즐기고 집단 살인에 동조했을 뿐이다.


헉슬리를 천재라 하는 이유는

21세기 지금의 사회에서 우왕좌왕하며 사회적 폭포에 휩쓸리는 이웃을 목도하고 등줄기로 씁쓸한 서늘함을 흘려보내는 영혼들에게 데자뷰를 그려내게 하기 때문인 것이다.


사유하라. 자본에 조롱당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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