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바스콘셀로스는 이미 1984년 세상을 떠났고 그 후 이 책은 한국에 소개되었다. 이 책은 재미있다. 개구쟁이 소년과 나이 든 아저씨의 우정이 아름답다. 그리고 참으로 가슴 시린 책이기도 하다. 번역자의 후기에서 더욱 진실이 느껴진다.
문득 깊이 있게 읽은 한 권의 책에서 정확히 다가오는 주인공의 아픔은 눈시울을 붉히며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이 책에서 제제는 나의 기억의 타임머신을 넘나들며 아팠던 생채기들을 고스란히 펼쳐놓게 하고,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아파하는 부분을 넌지시 쓰다듬어 준다. 책을 다시 읽으며 이런 희열과 만난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행운이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책 속에 나오듯 인생은 때때로 얼마나 절망스러운가! 이 책을 통해 위로가 되는 독서테라피가 되길.
“다 지나갔다. 얘야. 모두 끝났어. 너도 이다음에 크면 아빠가 될 거야. 그리고 살다 보면 어려운 시기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거야. 하는 일마다 잘 안 되고 끝없이 절망스러울 때가 있어.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 이제 다시는 크리스마스에 네 신발이 비어 있는 일은 없을 거다.”
이 부분은 이미 제제가 아빠에 대한 상처로 아빠를 사랑했던 의지를 내려놓았을 때 상실감의 상처를 대신 뽀루뚜까에게서 받은 사랑으로 아물어진 후의 대화이다. 아빠는 오랜 실업으로 무능해져 있었고 어린 아들은 아빠를 위해 자신의 고운 목소리로 핫한 유행가를 불러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가사의 내용까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철없이 성인 유행 가사를 불러대고 있었다.
"나는 발가벗은 여자가 좋아!"
"뭐라고?" 제제는 더욱 열심히
"나는 발가벗은 여자가 좋아!"
를 외쳤다.
아빠는 아들을 단도리하기 위해 허리띠를 풀러 아이에게 매질을 했다. 가엾은 작은 새는 매질에 쓰러지고 만다. 아빠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는데...
이후 제제는 마음으로 아빠를 버렸다. 그 자리를 자기를 이해해 주는 비밀 친구이자 아빠가 되어준 뽀르뚜까 아저씨에 대한 신뢰가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기차 사고로 그를 잃은 것이다. 제제가 뽀르뚜까 덕분에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어린아이는 혼자 상실을 짐 지고 있었다. 그래서 제제의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아빠를 마음으로 내려놓고 대신 진심으로 그리던 아빠의 역할을 해준 그를 잃는 엄청난 상실감을 만나니 죽음보다 거대한 고통이 휘몰아친다. 정신을 잃고 헤매다가 잠시 의식을 찾을 때 듣게 되는 친아빠의 말. 너무 늦었지만 그런 말을 하는 제제의 아빠로서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제제는 이미 소중한 시절을 너무 아프게 겪고 났다. 하지만 그런 아빠와 제제 모두에게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누구라도 이러한 아픔에서 더 이상 지치지 않기를 응원할 뿐이다. 어른이고 아빠라지만 너무 무지하고 미약했기 때문에 미처 알아보지 못함은 오히려 그의 가슴에 평생을 지고 갈 미안함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누구나 지나온 삶에서 미처 몰라봤던 자신의 제제 시절을 떠올리거나 지나쳤던 뽀루뚜까들에 대해 감사와 그리움으로 추억을 회상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인생의 어떤 한순간 누군가의 간절하고 깊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한때를 잊고 있었다면 감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만약 삶 속에서 아무도 그러한 미풍이 되어 주지 못했다고 느끼고 있다면 이제라도 당신의 마음에도 속삭이는 밍기뉴 그리고 뽀르뚜까를 만나기를!
다섯 살 제제. 너무 착하지만 감당 안 될 호기심 폭발하는 장난꾸러기 꼬마이다. 하지만 제제가 장난만 치는 것은 아니다. 상당히 신중한 친구이다. 제제처럼 가난 해 본 적이 있다면 한번쯤 비슷한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고 제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시즌 어느 날 아침, 저보다 어린 동생 루이스를 참으로 정성껏 예쁘게 단장시키고 아침 일찍 손잡고 길을 나선다. 하지만 두 아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방구시 카지노 정문에는 빈 포장지만 나뒹굴고 있었다. 더 힘든 것은 내년에는 더 일찍 오라는 카지노 문지기 꼬끼뉴 아저씨의 말, 제제는 결코 잠꾸러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날 선물을 받으러 가기 위해 누나나 형에게 몇 번이고 부탁하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도 제제를 돕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 동생 루이스에게 행복을 주고 싶던 제제 마음의 용기가 이렇듯 허무하게 끝난 것이다. 어린 루이스 왕은 울고 말았다. 제제도 울고 싶었을 테다. 나도 울고 싶다. 제제의 정성이 너무 갸륵해서!
하지만 그걸 알아보지 못한 제제의 난폭한 누나와 형은 그런 제제를 악동으로만 바라본다. 그나마 유일하게 글로리아 누나만큼은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까.’ 들릴 듯 말 듯 토해내지만 어린 제제는 아직 그런 누나를 이해하기에는 나이테가 부족했다. 몰이해의 서러움.... 그러나 꿋꿋한 제제는 야단맞을 때마다 오히려 가족들이 몰아치듯 자신의 피에 악마가 들어있어 자신이 악해서라고 받아들인다. 아! 제제처럼 삶을 아기자기하게 꾸려가려는 어린 악동에게 깊은 관심을 갖기에는 현실의 가족들은 너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메말라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빠는 실직으로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없었고 태어나면서부터 일만 해야 했던 엄마는 새벽부터 남편 대신 공장에 나가야 했다.
그나마 제제는 호기심만 많은 사고뭉치만이 아니라 지적 관심도 컸던 영리한 아이였다. 호기심이 그냥 많은 게 아니라 너무 총명해서 그 아이의 세상을 알아보지 못하는 평범한 주변의 사람들이 그를 감당하기가 버거웠을 것이다. 그들은 아이가 사고를 칠 때마다 말도 필요 없이 매질과 폭력으로 다스리는 것이었다. 너무 다행인 것은 제제는 그런 폭력에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구나 루이스에 대한 보호와 누나나 형 심지어 아빠에 대한 마음이 누구보다 컸던 아이였다. 약간의 저항 외 할 수 있는 게 없는 어린아이였지만 끊임없이 자기 안의 세계에서 회복할 길을 찾아내었다. 그래서 자신의 상상의 친구 밍기뉴, 라임 오렌지 나무를 통해 꿋꿋함을 이어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보잘것 없이 저처럼 작아서 제 것으로 만들기 싫었지만, 순간 나무를 확 끌어당긴 밍기뉴의 마법이 발생했다. 나무가 말을 걸어온 것이다. 제제는 오렌지 나무에 자신을 담았고 나무는 언제나 함께 호흡해 주었다. 가끔 여러분의 시각의 언저리에 어떤 사물이 말을 걸어올 거라고 생각한다면 음, 병원에 가봐야 할지 또는 상담을 받아야 할지 고민스러운 상황이지만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나무에 꽃을 피운 사람들이라 그런 일은 벌이지지 않는다. 하지만 제제는 아직 꽃도 피지 않은 어린 묘목이었으니 나무와 동화할 수 있음을 알아차리셨을지?
제제가 세상을 배워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사고도 치지만 가족 밖에서 스스로 학습도 한다. 남들이 미쳤다고 하는 에드문드 아저씨는 제제의 첫 번째 스승이고 제제는 그를 통해 단편적인 어휘를 배운다. 하지만 제제는 놀랍게도 그를 뛰어넘어 읽는 능력이 있었다. 그 때문에 스스로도 조숙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잘도 찾아낸다. 그게 때로는 위험천만한 악동 노릇이어서 더러는 혼나야 할 행동도 저지르는 것이니 이 아이를 잘 다듬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의 환경이 아이가 혼자 글을 깨치는데도 그뿐이었다.
덕분에 일찍 학교에 입학했을 뿐이다. 순수한 제제는 제일 어리기도 했지만 선생님에게 예쁜 짓도 했다. 인기 없는 쎄실리아 빠임 선생님의 꽃병에 유일하게 꽃을 꽂아 두었다. 물론 남의 집에서 몰래 꺾은 것이라 곧 멈추게 되지만 선생님의 영원한 시들지 않는 꽃이 되었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제제의 호기심은 학교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타고난 흥 때문에 화요일마다 악보 장사 오리발도 아저씨를 따라다닌다. 가족들은 아무도 이 꼬맹이의 비밀을 모른다. 악보 장사 오리발도는 제제를 이용해 돈을 번다. 하지만 그 일을 좋아하는 제제는 소중한 카나리아가 되어 준다. 이렇게 혼자 돌아다니다가 운명적인 만남을 찾는데 바로 포르투갈 사람 마누엘 발라다리스씨를 만난 것이다. 그는 친구가 되어 영원한 사랑을 남겨준 뽀르뚜까 아저씨이다.
처음에는 그의 차에 매달리는 박쥐 놀이를 하다가 들켰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엉덩이를 때렸다고 원수가 되었지만, 어느 날 제제는 자신을 귀엽게 보는 뽀루뚜까에게 자기는 사실 개망나니라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당신이랑 같이 있으면 아무도 저를 괴롭히지 않으며 행복의 태양이 빛난다고 전한다. 이런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어른이 있을까? 제제는 점점 뽀르뚜까와 온전한 관계에 놓이며 위로를 받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워간다. 둘은 비밀로 간직하고 늘 함께 하기로 한다. 제제에게는 너무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소풍을 간 날도 제제는 아빠에게 맞아 몸에 상처가 심했다. 뽀루뚜까는 그에게 몸을 보이지 않으려 하는 어린 제제의 진실에 충격받지만 그의 몸과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더욱 깊이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엄청난 힘을 가진 망가라치바는 제제의 행복을 빼앗는다. 제제는 엄청난 슬픔에 빠져 일어나지 못한다. 굳이 슬픔을 딛어야 인생이 완성되는가? 사고로 뽀루뚜까 아저씨를 잃는 경험은 이제 제제를 더 이상 어린아이로 남겨두지 않았다.
죽을 것 같은 진짜 아픔을 겪는 제제의 고통 속 아픔이 내게도 다가온다. 기억이 함께 버무려져 그 순간 제제의 라임 오렌지가 되어주고 싶은데 눈물만 나온다. 자꾸 쓰러지는 아이에게서 나를 바라보게 된다. 너무 힘든 고백이다.
간신히 일어난 제제가 말한다.
“내 라임 오렌지 나무도 곧 매력을 잃고 다른 나무처럼 되고 말겠지. 그것도 불쌍한 나무에게 늙어갈 시간과 기회를 줄 때나 가능한 일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죽는다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 몹쓸 기차가 한 번 지나가면 그만이잖아, 그런데 왜 내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이다지 어려운 것일까? 내가 가지 못하도록 모두들 내 다리를 붙잡고 있나 봐.”
제제가 충격으로 사경을 헤맬 때 가족과 이웃은 제제를 위해 기도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제제에게는 커다란 하늘이 무너진 줄을 모르지만 그토록 야단치던 사람들이 제제를 위해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그들도 제제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감수성을 이해하지 못할 뿐.
창문을 긁는 소리에 제제가 드디어 일어난다. 놀랍게도 밍기뉴가 창가에 까지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라임 오렌지 나무에는 흰 꽃이 한 송이 피어나 있었다. 밍기뉴는 이 꽃으로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제제는 이제 꿈의 세계를 떠나 현실과 고통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었다.
제제에게는 이미 일주일 전, 라임 오렌지 나무가 뽀르뚜까와 함께 꺾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이모는 엄청난 책의 홍수를 보여주었다. 세계문학 전집이며 제3세대 문학까지 여러모로 가난한 우리 집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준 사건이었다. 플르베르나 모디아노 같은 한수산, 최인호 같은 이름들을 거기에서 익혔다.
내 주변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유일한 예쁘장하고 날씬한 세련된 이모가 이 책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도 가져왔다. 독서의 트렌드를 알지 못하고 호불호도 없이 그저 생기는 대로 읽었던 내게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라는 핫한 책은 청소년 도서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이모는 이 책은 빌려주는 것이라며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라 당부 또 당부했다.
그쯤 반에 학급문고를 꾸려야 한다는 말에 고민했던 나는 이 책을 가져가면 딱 좋을 것이라 여겼다. 당시 나도 가난했기에 새 책을 사서 가져갈 수도 없었고 달리 적당한 책도 집에 없었다. 반장은 잠시 가져다 놓고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이모에게 사정해서 라임 오렌지 나무를 잠시 문고에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내 책은 보이지 않았고 아무도 그 책임을 지지 않았다. 나는 이모를 볼 면목이 없어 상당히 부끄러웠고 돈이 있으면 새 책으로 사다 드리고 싶었지만, 당시 내게 돈은 희귀한 물건이었다.
그 후로 이모는 나를 끼워주지 않았다. 야박하긴 해도 멍청하고 무책임했던 그 시절의 나는 뽀르뚜까를 만나지 못해 이해받고 사랑받는 연습을 못했다. 이모에게 서운해하지도 못했다. 나도 책을 너무 사랑하기에 책을 아끼지 않고 잘 다루지 않는 이들을 보면 화가 난다. 이모도 그런 것일까. 지금의 나도 내 책방에 꽂힌 책을 둘러보며 '나도 책을 좋아해' 하며 종종 빌려달래 놓고 책을 분실하는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빌려주지 않는다고 못 박고 있는데, 어쩌면 그때 생긴 트라우마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때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장난꾸러기 제제가 뭐가 문제인지 어른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당시 그 책 뒷면에 제제가 부른 노랫말에 아버지로부터 뚜들겨 맞는 대목이 필사되어 있었는데... 어린애를 그렇게 때리는 아버지가 상당히 비도덕적이기도 했고 이 정도면 아동학대 아닌가 싶어 헷갈려했던 기억만 남아 있다.
성인이 되어 다시 이 책을 읽으며... 그때의 이모에 대한 미안함과 서운함의 거리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 이 책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입히게 되었다.
지금은 이모도 없고 뽀루뚜까 아저씨처럼 나를 이해해 주던 이들도 다 떠나갔다. 모두가 다 그립다.
내가 지나온 시간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앞으로의 시간은 제제를 알아보고 뽀르뚜까가 되어줄 수 있는 이해의 선물이 이어지는 시간들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