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독서모임 후기

by writernoh


2021. 8.24. 10년 후 오늘 독서모임 후기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로랑 베그. / 부키


1. 책을 읽고

어떤 자아는 자기만족을 충족시키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수시로 위선의 경계를 넘나 든다. 소위 카멜레온의 변신이나 페르소나의 역할적 경계를 사이에 두고 조금씩 금을 밟는다는 것을 스스로도 자각하지만 그것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눈치보기라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것이 자의식의 성장을 위해서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의 우린 이미 그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나이를 먹었다.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자기 합리화의 연식이 몸에 배어 집에 가서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맞아 하고 단정 짓거나 끊임없이 타인에게 그때 자신의 말에 대해 질문을 해댄다. 응, 그래 그럴 수 있어. 이 말을 들을 때까지 자기 위안의 피안처를 찾아 관계망 속에서 노력하는 모습이다. 적어도 대상이 있다면.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살면서 어느 순간 ‘아아~그때 그랬구나.’ 하며 자기 스스로 상황인식이 턱 하고 되어버리는 때가 있으니 그나마 그런 시간이 온다면 신의 축복이다. 적어도 인위적으로 위해를 한 것이 아니라 과거 자기도 모르고 했던 최선의 선택이었을 테니. 시간을 되돌이킬 수는 없지만 잘못된 인식을 만회할 기회는 다시 돌아오기에 진실의 유레카를 간직하고 살다 보면 부메랑 같은 인생의 때가 왔을 때 그때보다 현명한 행동을 하면서 조금씩 성숙하게 되는 게 제대로 나이 먹는 길이다. 그러면서 도덕성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 한계에 부담을 덜게 되는 게 적어도 좋은 사회를, 좋은 관계를, 좋은 나를 꿈꾸던 이들의 모습이다.


끝없는 완고함에서 벗어나 원치 않게 겪게 되는 시행착오를 벗겨가며 그나마 덜 우매한 시간을 꾸려 보는 게 이 책에 나오는 그 어떤 학자의 의견보다도 절실한 자기 성찰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과거 신분과 봉건적 위계질서 사회에서는 인류가 발견해 낸 과학적 증거기반이 부족했다. 그들의 우물 안에서 반사회적 행동이란 자기와 다른 문명에서 발달된 격식을 갖추지 않은 이들의 모습이며 그들을 야만적이라 여기며 부도덕하다는 멍에를 씌웠다.(앵무새 죽이기가 생각난다.) 그때는 그것이 발달된 최선의 지식의 틀이었기에 교회 권위자들이나 도덕주의자들 소위 존경받는다는 위치에 있는 자들의 논리가 기준이 된 것이다.


누군가는 진실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그러한 인간의 위선을 돌파하고자 고민했다. 그중 계몽주의자들은 기존의 사회가치도 결국 그들만의 천국에서 만들어낸 질서임을 간파하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고찰하였다. 미개함을 동물에 비교한 이들에 대해 몽테뉴는 도덕적으로 동물이 오히려 인간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인간은 피상적이고 인위적인 것을 탐하지만 동물은 확실하게 손에 잡히는 행동만을 추구하기 때문이었다. 이 얼마나 순수한 질서인가. 당시 자연 결정론에서 나온 인간 중심 편견을 깨우치는 일격이었다.


타인을 동물 취급함으로써 자칭 문화인으로써 인권 파괴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는 인간 중심 의식구조가 타인을 침해하던 신분 권력 사회에서 미처 생각지도 않은 반격은 기득권에 대한 충격을 주었을 터이나 세월이 오래 지났건만 그런 의식과 함께 진보된 사회에서도 결국 다를 게 없는 게 인간의 속성이니 또 다른 몽테뉴들이 조금씩 외쳐가는 일침과 삽으로 산을 퍼 날랐던 우공을 자처하는 누군가의 한 삽 뜨기가 인간성을 유지하는 시대마다의 밑거름이고 도덕은 그들의 묵묵함에서 싹이 트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애덤 스미스는 당대의 도덕적 타락의 원인 중 하나가 도시화가 낳은 익명성이라 고발한다. 규범을 어겨 평판이 나빠질까 우려했기에 사회 구성원의 지탄은 무서운 권력이었다. 그러나 대도시의 그늘에서는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개인이 이기적인 개체가 되어가는 현대 사회에서는 ‘타인의 시선’이 여전히 범죄 예방에 효과는 있지만 감시 카메라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새록새록 등장한다. 현대에 와서 네트워크로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가는 세대가 양산됨에 따라 더욱 비겁한 익명성이 깊어진다. 개인이 드러나면 발생하는 집단 매도의 피해의식은 관망과 빠져나가기의 행태로 개인을 감추어 버린다. 누군가의 정당하고 옳다는 신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반격하고 패거리를 모아 집단행동을 하는 이들은 잘못된 집단지성을 양산하고 자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타인의 존재를 우습게 격하시키고 만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사는 세상에서 이렇듯 봐주기 힘든 편견과 지독한 신념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게 하나의 능력으로 까지 부상하는 것이 역시 위선의 탈이라고 한다면 과연 그렇지 않으려고 하는 개개인의 연약한 신념은 다음 세대 아니면 새로운 집단에게 또 어떻게 비추어 질까?



도덕성을 몰래 위반하지 않고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은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온 기게스의 반지의 사례처럼 인간의 본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꾸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합리화한다. 한때 근대 사회는 그래서 이러한 체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 힘의 논리로 국가를 만들었고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팬옵틱의 일망 통제시스템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감시 통제하에서도 도덕을 지키고 사는 것은 집단 구성원을 통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보호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사회적 순응성을 높이는 것이 되기도 한다. 전체주의 사회가 아닌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그것이 오늘날 범죄 예방의 핵심이 되었으니 더 많은 사람들은 범죄자가 아님에도 가로등이 지켜보는 사회에서 반듯하게 걷는다는 것을 보여주며 자기 정보를 공여하고 보호를 받는다는 의식을 갖는다. 인터넷 아이디나 카드 거래에 서명한 모든 규칙을 사용하게 되는 것도 개인 정보를 기반으로 권리를 얻기 위한 것이 통용되는 사회인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빈틈은 존재하기에 첨단 경비 시스템도 해커의 침입을 막을 벽을 세우지는 못한다. 중요한 것은 도덕의 기준이 사라지는 현대에는 CCTV가 없이 불안을 감출 수 없고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과연 누구의 인권을 더 보호해야 할지 헷갈리는 법의 무능함에 울분을 토하고 있으니 도덕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무방비의 시스템에 자기를 오픈하고 사는 것과 같다. 어무리 실명이 아닌 익명을 추구한다 해도 최후의 순간 밝힐 수밖에 없는 안전과 도덕에 관한 딜레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개인은 자기 고유의 인권을 지킬 권리가 있고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집단의 영향력을 거부하기도 한다. 검은 양 효과는 개인이 집단에 순응하면 그 사람은 집단 안에서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보다는 좋은 평가를 받지만 반면 규칙을 위반하면 혹독한 평가를 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스스로 검은 양이 되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지만 때로는 검은 양이 되기를 자처하면서 자아의 성취감을 가져보는 것도 건강한 자의식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2.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이 책에는 고리타분해 보이긴 해도 종종 부딪치는 일상의 문제의 기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이유를 이론적으로 설명해주기 때문에 독서를 통해 삶의 근육을 튼튼히 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필독서 중 하나가 되길 바란다.



넥플릭스가 세계를 점유하는 까닭은 비단 코로나 팬데믹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가 치유해주는 쾌락과 이상 사회에서 위안을 얻고 싶은 누구나의 욕망일 것이다. 그러나 한참 드라마 시즌에 심취해 있다 보면 밀려드는 허무함은 역시 매체로도 극복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를 돌고 있다. 누구나 책을 읽는다고 그것의 가치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책을 통해 얻는 비타민은 또 다른 활력을 준다. 그래서 오늘 벌써 한 달이나 지난 모임 후기이지만 9월의 책을 만나기 전에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를 잠시 리뷰해 본다.




3. 회원님 의견 나눔—그날 공유한 우리의 이야기


◆서영님, 자기반성과 집단에서 어울리기 위해 사회성도 필요하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고민했다. 너무 자신 위주로 말하지 않았을까, 성장을 위한 고착화 버리기와 타인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겠다.


◆은하님, 너무 학자들의 이론이 많아 불편했다.. 도덕 부도덕은 나의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도덕일 것이다. 원래 착한 사람은 없고 환경 탁으로 착하게 살고 있을 뿐이다. 핼러윈의 가면이 즐겁긴 하나 가면과 현실의 차이 때문에 도덕적으로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한다.


◆서희님은 익명성과 집단 속 악의 평범성에 대해 인상 깊다고 말했다. 이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되길 바라며 또 스스로가 튼튼하길 바란다.


◆나는 역시 나에게만 관대한 사람이었을까 고민했고, 사회문제를 필터링할 수 있는 여과지로 여기자. 각각의 역할에서 다양한 나의 모습으로 살되 나다운 나의 모습은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갈 것이다.




4. 마무리

회원님들! 벌써 한 달이 된 말이라 가물가물하시죠^^

명절 지났으니 곧 9월 모임입니다.


그런데... 저 오늘 코로나 검사했고 아직 결과는 안 나왔기에 저는 어쩌면 줌으로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이 시대의 모습이라 여기며 노작가의 우왕좌왕 후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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