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해를 시작해야 하는 때에, 내 자녀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소리를 들려줘야 할까? 최고의 선물이 무엇인지 고민을 했다.
성탄절의 주인공이 바뀌고 핼러윈 축제보다 못한 더 이상 새롭지도 신선하지도 않은 성탄절 축제에, 몇 년째 행사가 없어진 우리가 다니는 작은 교회를 대신해서 언니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의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엄마는 네 자녀를 키우기 위해 새벽 4시면 집을 나서서 밤이 늦어야 돌아오셨다. 고된 삶을 살아가는 이 한 많은 여인에게 교회란 시끄럽게 떠드는 팔자 좋은 소리로 들려서인지 내가 옆집 언니를 따라 교회에 가는 것을 극히 싫어하셨다.
그런 엄마에게도 성탄절이란 나에게 자유를 허용해 준 유일한 날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보며 우리 가정과 마을 사람들과는 완전 다른 표정, 다른 세상을 보며 그 이후로도 바쁜 엄마에게 들키지 않게 매 주일마다 몰래몰래 발걸음을 옮겼었다. 그곳에 가면 나는 숨을 쉴 수 있었고 따뜻함과 생전 받아보지 못한 관심들이 정말 좋았다.
그러던 나도 머리가 굵어지고 미래를 고민하는 청소년기로 접어들면서 어쩌면 이곳은 의지가 약한 사람들의 집합체로 나에게 체면을 걸어와서 세상 준비 하나도 없이 기타만 치는 베짱이 같은 무능력자들로 내 비쳤다.
그 이후로 나는 세상의 성공을 향해 달리며 다시는 이곳에 발걸음도 하지 않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철저히
귀를 막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다른 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더욱 사람을 키운다는 것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왔다.
아이와 내가 탯줄이 잘리고 분리가 되었음에도 유치원에 근무하며
수많은 아이들을 경험했으면서도 나의 아이에게는 늘 끈이 붙어 다니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인사만 바르게 하지 않아도 화가 나고, 아이가 아프면 내가 더 아프고 열이 나기라도 하면 혹여 장애가 생기지나 않을까?
죽으면 어쩔까? 날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물릴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세상에 나를 만드시고 보내신 분이 정말 계시다면 이 늪에서 나를 제발 꺼내 주세요”
라고 대상도 불분명한 기도를 혼자 중얼거렸다.
나의 이 고통의 신음소리가 전달이 되었는지 그 이후로 나는 돌아온 탕자가 되어 다시금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서서히 주인을 바꾸어 갔다.
한 명의 아이도 키우지 못해 안달을 하던 내가 주인의 자리를 내어 주었더니 얼마나 자유해져 가는지 네 명의 자녀를 낳고 키우면서도 한 아이 한 아이마다 사랑스럽고 귀한 보배로운 존재로 다가온다.
날마다 날마다가 새로운 날, 유쾌한 날, 마음이 가벼워지는 재 창조의 날이 되어 간다.
이제는 언제나 함께 해 줄 수 없을 만큼 쑥쑥 자랐고 자라 가고 있기에 이 아이들에게 영원히 함께 하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누리게 하고 싶었다.
올 한 해를 결산해 보며 철저히 나밖에 모르고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엄마를, 아무도 없는 집이 너무 무서워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며 나약하기만 했던 한 소녀가...
날마다 새 힘을 공급받고 새 능력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향해 행진해야 하는지 알게 해 준 축제의 날 온 가족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을 만큼 한가득 담아서 집으로 내려왔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해 새날을 기다리며 나를 살려내고 다른 인생을 도울 만큼, 내 안에 날마다 메리 크리스마스가 울려 퍼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