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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 Mar 17. 2022

봄이 오면 생각나는 사람들

문제는 축복의 발판

큰 아이가 고2 때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회사 사택의 특성상 오랜 주택들로 평수가 크지 않고 낡은 집들 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넓고 무엇보다 화장실을 두 개로 리모델링할 수 있는 구조였기에 우리 6명의 대가족이 살기에는 나름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통로에 위아래 네 집만이 드나드는 공간이라 조용하고 아늑했다.


특히나 만남이 중요하기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웃에 누가 살까? 기대를 하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 윗집에는 따뜻한 인상의 고3 수험생의 가족, 그 옆집에는 조용한 같은 반 친구의 엄마였다. 우리 옆집에는 한 참을 들쭉날쭉하더니 마침 이삿짐이 들어왔다.


“옆집에 누가 이사 왔을까?” 동화책의 주인공 마냥 셀레임 속에 한껏 기대를 모으고 있는데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간혹 배달 음식만이 오갈 뿐... 분명히 짐이 들어오긴 왔는데...


무성한 소문만 있을 한 달 후쯤, ‘똑똑’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옆집에 이사 온 사람이에요... 남자들만 보여서 놀라셨죠?
해외에서 살다 들어와서 우선 남편과 아들만 미리 왔고 저는 딸의 학교를 마치느라 지금 들어왔어요.


“집이 정리되는 대로 우리 차 한잔해요.”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가더니 정말 그다음 날부터 부르기 시작했다.


“커피는 같이 마셔야 좋잖아요,” “빵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사 왔어요.”

저희 집은 항상 오픈되어 있으니 언제든지 오란다. 정말 전직 국제선을 탔던 승무원 이라더니 예쁜 얼굴과 몸매에 먹을거리, 이야깃거리가 풍성했다.

둘이 넷이 되어 우리는 잠깐의 짬을 내어 함께 차를 마시며 오랜만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각자 조심스러우면서도 살짝살짝 상대방들의 마음을 노크해 가며 이야기들을 풀어 가는데 어느 한 사람 대충 사는 사람이 없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나중에 필요할지 모르는 자격증들을 다 취득하고 틈나는 대로 문화 센터에 다니며 한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아침마다 기타를 들려주는 윗집 언니, 


EBS 방송국에서 보도국 기자생활을 하다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요양 차 언니네 집 근처로 이사를 왔다는 몇 개국 어나 능통한 친구네 엄마. 

부부의 사이가 정말 애틋하고 예쁜 딸이 볼때마다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행복해 보이는 가정에, 생각보다 건강이 많이 심각했던 친구의 엄마는 지금의 사는 것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이고 덤의 생애라고 했다.


모두가 부럽고 대단한 성향과 성품을 가졌음에도 동생인 나에게 항상 삶을 배운다며 겸손한 그들... 이 삭막한 세상 속에서도 처음 맞이하는 가정과 자녀를 같이 키워가고 나약해질 때마다 서로를 의지해가며 이웃사촌이 되었다.


그렇게 좋은 날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친구 엄마가 생각보다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진 어느 날... 언니는 부탁을 해왔다.

“내가 혹시 안 좋은 결과가 오더라도 우리 딸 좀 도와줘...” “아빠와 사이가 많이 좋기는 하지만...” 우리는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아픈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께 우리는 집중으로 매달렸다. 

아직 해야 할 가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면 그 생명을 강하게 붙들어 달라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아픔이었지만 날마다 이 숨을 쉰다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것이고 소중한 것이며 감사한 것인지를 안겨주었다. 그 오랜 사투 끝에 언니는 조금씩 좋아져 갔고 우리는 이 생애를 더욱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 함께 말씀도 보고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가 시작되었다.


생각에서는 관심이 가득해도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던 나의 딱딱히 굳은 마음 밭에 단비와 같이 촉촉이 적셔 주었던 나의 이웃들...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얼굴은 자주 볼 수 없지만 그곳에서도 빛을 비추이고 있겠지... 

참 보고 싶은 봄이다.

봄을 맞은 집 베란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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