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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 Jun 16. 2022

그 이름


  오랜만에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주말 오전, 마로니에 길을 따라 산책길에 올랐다. 아침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안 정리정돈을 서둘러 마치며 출근하기 전 숲길을 따라 걷노라면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이, 초록 잎들이 변화의 옷을 입고 향기를 품어내며 속삭인다. 

오늘의 작품은 어떠한지...

그런 일상이 계속되다 기분 좋은 바쁨으로 몇 달간 이 길을 나서지 못했다. 운동화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몸과 마음을 시원케 하는 이 풍경이 더 지나기 전에 오늘만은 서둘러 문을 나섰다


평일 아침이라면 초, 중, 고 학생들의 등굣길이라 삼삼오오 모여서 그 길을 따라 오르고 부르고 이야기 나누느라 인산인해를 이루었겠지만 주말인 덕에 몇몇 운동하시는 분들만이 오갈 뿐이었다.

연초록 보드라운 잎들이 어느새 강렬한 햇빛과 바람을 맞아 키는 더욱 솟아오르고 잎들은 더더욱 진하게 여물어져 있었다.    

아름다운학교 가는길에 선정될 만큼 멋스러운 마로니에길

드넓은 잔디가 깔린 볕이 따사로운 그린 랜드에 들어서자 고등학교에서 행사 사진들을 찍는지, 남녀 학생들이 캐릭터 옷을 입고 보기만 해도 밝은 기운이 느껴지는 포즈를 취하며 열심히 카메라를 눌러댔다.

우리 집도 초등 5학년 막내의 바램으로 오늘, 인생 네 컷을 찍으러 가야 하는데 저 친구들을 따라 표정을 연습해 보고 싶지만 흉내 내기에는 도저히 역부족이었다.ㅎㅎ    


한껏 기쁨의 에너지를 받아 해안 길을 따라 빠른 속도로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활기 넘치는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노년의 여인이 바다를 바라보며 의자도 아닌 길 위에 혼자 처량하게 앉아 있었다. 


막내딸이 자신의 생일날 처음으로 폰을 선물로 받고서는 제일 하고 싶었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친구들처럼 학교에 데리러 오는 것’을 해달라고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서둘러야 할 때였다.


하지만 내 마음에 갈등이 일었다. 눈과 마음은 계속 그 여인을 향해 있었다. 때 마침, 그분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힘이 없어 흔들거리며 많이 위태로워 보였다. 얼른 뛰어가 잡아 드렸더니 너무나 고마워하며 잠깐 시간이 되는지 물었다.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좀 나누었으면 하시고는...


우리는 바로 옆 벤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본인은 공직에서 퇴직을 하시고 부산에서 남편과 부러울 것 없이, 넓은 집에서 여행도 수시로 다니시고 주부대학 등에서 끝없이 배우며 주변에 친구들과 늘 풍족한 생활을 했었단다. 그런데 10년 전 남편이 갑자기 몸이 안 좋다고 혼자 모임에 다녀오라고 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더니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이 되었단다. 그 이후로 혼자 계시다가 쓰러지시면서 골절을 당하고 생활을 할 수 없어서 딸 집이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오셨단다.


함께 사는 동안 얼마나 미안하고 맘이 편치 않은지 따로 떨어져 집을 얻고 맞벌이하는 딸의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돌봐주러 오갈 수 있는 것이 너무 행복한데, 이것 마저도 이제 손주들이 커가고 수술부위로 인해 내 몸이 걷기도 자유롭지 않아 걸음 연습을 하러 오셨다고 했다.


“내 인생에 이런 80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 하시며 눈에 눈물을 보이신다.

“젊은이, 이런 나를 어떻게 관심을 가지고 보러 왔냐”며 연신 고맙다고 하신다. “어머님, 원래 저는 철저히 이기적인 삶을 살았어요. 오로지 나의 시간, 나의 미래를 위해서만... 남의 일이든 나의 일이든 관심 가져 주는 것도 싫어하고... 그러다가 너무 한계가 와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 저의 생각이 깨졌어요... 사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지... 그래서 저 멀리서부터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어요...


난, 이제 아무 데도 못 가고 오래 앉아있을 수도 없어...

괜찮아요... 어디를 가지 않아도 오지 않더라도 있는 곳에서 자신을 살리세요... 자리에 앉고 서고 걸을 때마다, 걱정과 고통이 밀려온다 해도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선포하세요~" 그 이름은 종교가 아니고 하나님이 나의 아빠가 되시고, 우리의 운명을 바꾸는 생명이고 능력이니까요.


쉬운 방법을 가르쳐줘서 고맙다며 손을 잡으시고는 “내가, 꼭 다리에 힘이 생겨지면 자네를 찾아갈게.” 우리 집을 가르쳐 드리며 “모든 것 다 잊어버려도 괜찮지만 그 이름만은 꼭 기억하세요”



벅찬 인사를 하고 집을 향하여 걸어오는데 폰에서 막내 목소리가 들린다. 어르신과 대화를 하느라 “친구들과 함께 걸어오렴” 하고 급하게 끊어진 줄 알았더니 아이가 우리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던 거다.

“엄마, 어떤 할머니와 대화하는 거 내가 다 듣고 녹음도 해놨어요.”ㅎㅎ

“실시간 방영으로 숨죽여 듣고 있었답니다.” 

와~ 얼마나 다행인지... 자녀에게 사람을 죽이는 소리가 아닌 살리는 현장을 목격하게 했으니... 

나도 이렇게 기쁜데 하나님도 기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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