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라 Oct 03. 2021

사람이야, 사람이라고!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는 좋은 대사가 많다. 그중 전여빈이 갑질 하는 사람에게 "야, 이 새끼야. 사람이야, 사람이라고!" 라면서 소리를 지르는 장면은 '멜로가 체질'을 대표하는 수많은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장면은 내가 본방 사수할 때도 인상적이었고, 그 이후에도 가끔씩 생각이 난다. 왜 이렇게 가슴에 남을까 생각해보면 나에게 사람이라는 단어가 참 낯설었기 때문이었나 싶다. 대통령 후보자들이 현수막으로 '사람을 위한 세상, 사람이 곧 정치다' 등의 글귀들을 내세울 때에도 '사람'이라는 단어는 참 낯설었다. 사람이 사람이지 싶다가 우리 세대에게 마치 '공동체'라는 단어가 낯설듯, '사람'이라는 단어도 참 낯설어진 시대가 되었다 싶다.


  사회에는 수많은 교육문제들이 있다.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에는 교사들과 부모들을 탓하는 말들이 자주 보인다. 그러나 왕따, 학교폭력, 감정조절 못하는 아이들, 스마트폰, 게임중독, 아동학대 등 수많은 교육의 문제들을 해결할 길은 '공동체를 되살리는 일' 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이것은 초등교사로서 십여 년간 고민한 결론이다. 예를 들면 왕따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해자를 처벌하면 될 것 같지만 '무엇이 교육적인 해결인가'에 집중하면 가해자 처벌은 아주 간편하고 얕은 방법임을 알게 된다. 하나의 문제에는 소위 가해학생을 둘러싼 가정환경, 오래된 양극화와 가난, 부모의 낮은 자존감과 부모교육의 부재 등 수많은 원인들이 얽혀있다. 학생 한 명의 단순한 처벌은 결국 그 아이가 다시 세상으로 나와야 할 때에 힘이 되어주지 못하므로 무의미하다. 그래서 그 아이를 변화시켜서 나아가 사회를 보살피려면 '여러 좋은 어른들'이 힘을 모아 '공동체'로서 아이들을 보듬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교사가 되기 전에는 '공동체'라는 단어를 잘 듣지도 쓰지도 않았었던 것처럼 참 낯선 접근법이다. 교사가 된 이후에나 공동체가 답이고 마을 공동체를 살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교사가 아닌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이 말에 공감할까.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를 싫어하고 깊이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내가 아이를 낳고 주변에 교사가 아닌 양육자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얼마나 쉽게 교사와 학교를 재단하고 탓하는 말들을 하는가 깜짝깜짝 놀란다. 갈등 상황이 발생하면 나는 교사와 가해학생들을 변호하기에 바쁘고 그러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어서 한동안 대화를 중단하기도 했었다. 그들과도 이미 공동체의 필요성에 대해 공유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일상에서 공동체를 일구는 것은 거의 사회 운동을 하듯이 수많은 마음과 몸의 희생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나도 이웃집과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코로나로 아이들은 학교에 잘 가지 못한다. 등교를 하는 날에도 쉬는 시간이 없거나 5분뿐이다. 그 5분은 화장실을 다녀오고 다음 수업 준비를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투명 가림막을 테이프로 붙인 비좁은 1인 책상에 종일 일어서지 못하고 앉아만 있어야 하는 학교들도 여전히 많다. 아이들은 친구와 놀게 하지 못하게 하면서 어른들은 카페에 가고 술을 마시고 논다. 안전이 최우선이다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은 똑똑하고 잘 적응하며 방역수칙을 잘 지킨다.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는 이중적인 어른들의 태도다. 코로나도 학교폭력도 무엇이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가장 교육적인 해결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아이들도 사람이야, 사람이라고!"라고 외치고 싶은 시대다.

이전 02화 인생 과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