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계의 주인>을 보고
*스포일러 있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이를 낳고 나서 찾아오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의 질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사 갈 집을 고르며 어디에 부동산을 가져야 하는지. 입시 철폐를 외치며 입시를 준비하는 게 맞는지. 일단 입시 철폐는 답이 안 나오니 공부를 시켜서 입시에 성공하도록 해야 할지.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를 시켜야 할지.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가더라도 대기업 취업이 어렵고 AI 시대에 직업이 모두 사라진다는데 대학교와 대기업의 바늘구멍을 통과시켜야 할지. 바늘구멍을 통과하면 취업을 어떻게 할 수 있게 해야 할지. 이것을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어떤 경험을 시켜줘야 할까. 십 년이 넘도록 이 질문들 속에서 사실 아직도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동안 각종 참사, 사고 소식을 접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는 아이의 안전. 아이가 어릴 때나 청소년기에나 또는 성인이 되어서도 절대로 사고는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사고를 당해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억장이 무너졌다. 사실은 억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마음을 꽁꽁 싸맸다. 억장이 무너지는 상상은 너무 공포스러워서 조금도 할 수 없다. (유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이런 내가 이기적인 것 같지만) 제발 내 자식은 절대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
성폭력을 당한다면
성폭력도 마찬가지. 아이의 성별은 상관없다. 친족이나 가까운 사이에서도 발생하는 성폭력을 내가 막을 길은 없다. 성인인 나 또한 으슥한 곳을 지나갈 때마다 두려움을 느끼니까. 하다못해 세상을 모르는 아이가 대처할 방법이 무슨 수가 있으랴.
아이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성에 관한 지식, 올바른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나아가 아이가 만약 성폭행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절대 아이의 잘못이 아니며, 인생이 끝난 것도 아님을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사고를 당한 아이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최대한 자연스럽게 마주해야 한다. 아이의 슬픔에는 공감하되 망한 게 아니라는 당당한 태도를 갖는 것. 이것은 사고뿐만이 아니라 내 아이가 미래에 혹시 모를 커밍 아웃을 하게 되더라도, 병이나 사고를 당해 장애를 가지게 되더라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어려운 말을 꺼낼 때 언제나 최대한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 미간 주름 하나 잡히지 않도록 '나 자신을 성교육'시키는 일이 우선이다. (사고가 장애가 병이 커밍 아웃이 성폭행이) ‘그게 뭐? 어때서?'의 당당함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도록 곁에 있는 부모 되기.
인생은 '주인'이처럼
영화 <세계의 주인>에서의 주인공 '주인'이는 성폭행 피해자다. 어린 시절 겪었던 이야기라 그것을 겪은 직후의 이야기는 카메라가 비추질 않는다. 다만 지금의 주인이는 충분히 너무나 밝고 예쁘다. 내면은 아마도 완벽한 회복은 아니겠지만 매 순간 씩씩하다. 주인이는 "성폭행을 당했지만 인생이 망한 것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주인이의 소리침에 주변 사람들도 희망을 얻는다. 주인이 덕분에 이번 생이 망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해 줘서 고맙다고 한다.
주인이는 사람들과 충실히 사랑하고, 울고 싸우고 매달려본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멀어지면 멀어지는 대로 내버려도 둬본다. 강에 버려진 쓰레기도 주워보고 봉사활동도 꾸준히 해본다. 아프면 아프다 말하고 주변 어른에게 도움도 요청해 보면서 살아간다.
인생에 어떤 파도가 오더라도 주인이처럼 살 수 있다면. 내가 세상 풍파를 다 막을 수 없으니 그런 강인함의 씨앗을 심을 수 있다면. 그 씨앗을 먼저 내 마음부터 심는다면 강인함은 내 자식에게도 자연스럽게 흩뿌려지겠지.
이 영화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되고도 남는다. 인생은 빛나는 주인이처럼. 말 그대로 '세계의 주인'처럼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