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에 따른 다각적 증상 경험
ADHD 일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어라? 가끔 내가 통제가 어렵거나 집중이 어려운 문제가 이것 때문이었을까?
우울할 땐 저 아래 땅굴 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든다. 좋을 때는 ‘내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을 많이 하기도 한다.
누구나 삶의 높고 낮음, 엔탈피(enthalpy)는 유지되는 상태에서 얼마든지 엔트로피(entropy) 증가는 관찰되거나 증명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심리상태)도 그럴까?
결론적으로는 일시적인 상황에 의한 상태였다는 것이었다.
쉽게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된 적이 있다. 반대로 한 가지에 너무 매몰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험도 동반됐다. 당연히 이런 증상들은 일상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좋든 싫든, 내가 내 상태를 조절하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찾아오게 된다. 때론 명상이나 요가로 다스릴 수도 있었지만, 어쩔 땐 자극적인 요소를 통제하려고 해도 쉬이 물러서지 않고 대들보처럼 버티고 있는 감정상태를 마주할 때도 있었다. 처음엔 이런 증상들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마주하기 조차 힘이 들었다. 인정하기 싫었다. 무시해 보려고 노력해 봤지만, 그럴수록 더 크게 나에게 저항했고 그 결과 원치 않은 신체적 반응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마음의 병이 신체의 병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은 그런 바보 같은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알아차리고, 그렇구나 하고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최대한 원인이라고 판단한 동일한 자극은 줄여보려 한다. 세상에 정말 정보가 많아지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덕에, 스스로를 여러 정보를 기반으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HSP(Highly sensitive person)이라는 증상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가만 생각해 보니 어릴 적부터 나는 늘 예민했다. 어쩔 땐 이 예민함이 축복처럼 다가왔다. 민감한 작업들을 하거나 감각적인 것들을 기반으로 하는 행위를 할 때에는 몹시 심취할 수 있었다.
너무 슬프고, 너무 기쁘고, 너무 정성적이면서 너무 차갑도록 객관적인 모든 면이 나에게 있었다. 때에 따라 나는 그 모든 모습 중 하나를 취할 수 있었다. 몰입을 사랑하지만, 싫어하는 어수선함이 늘 내 주변에 서성이고 있었으며, 늘 정제되지 않은 걸 찾으면서도 정제하고 싶어 하는 마음. 때론 너무 괴롭지만, 나 스스로가 세상과 다르고 유일한 존재라는 걸 모순적이게도 기쁘게 알아차리는 순간이 있었다. 어쩌면 ‘괜찮아’ 보이고 싶은 마음의 저편에서는 ‘남들과는 다르다’에서 온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가끔은 나를 실험하고 싶다. 가장 좋은 실험 대상은 ‘나‘라는걸 잘 알기에. 나름의 안전장치를 만들어 두고, 그 안에서 불안하지 않은 정도의 범위 내에서 하는 의미 있는 실험. 자유를 갈망하지만 어느 정도는 루틴이나 자동화가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참으로 모순된 경향이다. Self-agency(자기 주도성)라는 개념을 나 스스로 가지는지 알아보고 싶은 욕망이다. 자유의지와 자기 인식을 더해 자기 주도성을 만들 수 있다고 하면, 어쨌든 주관적인 틀 내에서 나름의 좋은 실험환경을 구성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본래 복잡한 존재다. 무엇 하나 ‘이 것’이라고 완벽하게 명명하기 어려운 존재다.
나도 꽤나 복잡성이 높은 존재라는 걸 또 한 번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을 탐험해 나가는 게 내 삶의 이유고 내 꿈이자 관심이고 쓸모이며 존재의 이유이다. 삶의 흥미는 이런 것에 쓰여야 하지 않을까.
내일은 오랜만에 아침부터 요가수업을 갈 예정이다. 규칙성이 없지만 반복하면 규칙이 된다고 한다. 무려 5년째 반복하고 있는 요가라는 요소를 반복하며 오늘도 나를 알아보는데 최선을 다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