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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 Dec 12. 2016

우리집 외국인의 반찬 사랑

La bonne heure

미니의 반찬욕심


그렇다. 내 남편은 욕심쟁이다.

반찬통만 꺼내면 "내꺼야!"라고 말하기 바쁘고, 찬을 접시에 좀 덜기 무섭게 조금만 담으라고 성화다.




남편의 반찬욕심이 시작된 건 지난 한국방문 이후. 추석도 보낼겸 한달을 한국에서 보냈는데 마는 아들이 왔다면서 꼬기며 생선이며 매일 진수성찬을 내주셨다. 딸만 둘에 수줍음 많은 우리 엄마가 그렇게 대놓고 사위사랑이 넘칠 줄이야... 이거 먹어봐라 저거 먹어봐라 난리가 났다. 게다가 외국인 사위가 뭐든지 잘 먹으니 엄마는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요리를 하시는거다. 그 모습이란...!


엄마의 노력에 부흥하듯 미니는 고기나 생선류는 말할 것도 없고 난생 첨보는 콩국수도 맛있다며 후루룩 비웠고, 엄마가 두들겨서 구워주신 더덕구이를 전혀 쓰지 않다며 밥없이 두 접시를 먹는가하면, 이름모를 나물도 꿀꺽, 김치를 비롯한 매운 음식에도 두루두루 젖가락을 바삐 움직여댔다. 심지어 밥 먹은 뒤엔 엄마가 시킨대로 요거트에 햄프씨드를 샥샥 부어서 먹기까지... 


한국에 자꾸만 가고싶은 이유


프랑스로 돌아오기 전날 엄마는 미니가 젤 좋아하는 오징어채랑 마늘쫑을 대량으로 조리고 정갈하게 담은 깻잎김치며 마늘 장아찌를 포장하느라 분주했다. 거기에 귀농한 막내삼촌은 손수 담은 매실액, 감식초, 말린 가지도 모자라 화개장터에서 공수해온 새우젓까지 챙겨주고, 허리아프신 외할머니께서 직접 말리신 나물이랑 고춧가루까지... 이미 책이며 마스크팩이며 몽땅 질렀기땜에 이 모든걸 다 가방에 넣으려니 역부족이었다. 결국 얘네들을 두개의 큰 가방과 하드보드 박스에 요리저리 나눠넣고 프랑스까지 이고지고 왔다.


한국을 떠나기 전, 미니에겐 중차대한 마지막 임무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인천공항 식당가에서 목살김치찌개를 먹는 것. 예전에 한국에 출장갔다가 오는 길에 먹은 그 맛을 잊지 못해서 벼르고 벼르던거다. 그냥 김치찌개가 아니라 '목살김치찌개'여야만 한다던 그는 출입국 심사가 끝나기 무섭게 빠른 발걸음으로 예전 그 식당가를 잘도 찾아갔다.


인천공항에서 먹은 마지막 만찬
그 날의 미남포즈


찌개가 나오니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그 싫어하는 카메라 앞에서 이런저런 포즈까지 취해주고 심지어 일년에 한 번 볼까말까한 미남포즈(본인이 세계최고 미남이라 상상하며 취하는 포즈로 자신감이 무엇보다 중요함)까지 취해주는거다.


실로 눈뜨고 못 볼 광경이었다


물론 늘 그렇듯 몇 숟갈 먹고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으로 머리고 얼굴이고 범벅이 되어 밥보다 물을 더 마신것 같지만 그래도 그릇들을 싹싹 비웠다. 업체가 바껴서인지 지난번보다 고기가 줄고 국물이 너무 없으며 반찬이 그닥이지만 찌개 자체는 나쁘지 않더라는 그의 코멘트는 서비스.




긴 비행끝에 파리에 도착다.

그 날 집에 도착해서 가방을 풀던 그 순간, 아마도 그 때가 시발점이었다. 남편의 반찬욕심이 시작된 건...


반찬욕심병자


반찬 욕심병. 그 증상을 들어보자면...

첫째, 매일 주방으로 출동하여 각각의 반찬이 얼마나 줄었는지 체크하고 식사준비시에는 반찬 담는 와이프를 반드시 감시한다. 가끔 "한 개만 먹어야돼요!" 라고 소리친다. 둘째, 조용히 사라져서 냉장고 앞에서 무언가 오물거리며 손가락을 쪽쪽 빨고 있는 빈도수가 급격히 늘었다. 셋째, 어제와 오늘의 나물중 어것이 할머니 된장으로 버무린 것인지 기가 막히게 구분하고 뿌듯해 한다. 넷째, 반찬이나 소스에 매실액 뿌려먹기를 생활화하고(함정은 전혀 맛이 어우러지지 않을 것들에도 뿌림) 물에 탄 액기스의 경우 소화 및 피로회복제로서 맹신한다.


이토록 미니를 미치도록(?) 기쁘게 해주던 반찬들이 얼마전부터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건 정말 좋지 않은거다. 왜냐하면 드러나는 바닥에 비례하게 남편은 나를 들볶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인 즉슨...


어서 반찬을 만들어달라!


반찬통 비어가는데 빨리 뭔가 만들어야 되는거 아니냐, 반짝(남편은 반찬발음을 잘 못한다)이 없으면 마음이 넘 불안하다, 와이프 너무 게으르다고 엄마(울 엄마)한테 이를꺼다, 당장 한국 슈퍼에 시장조사를 가자 등등... 다 적을수도 없다.


어떤 날은 뜬금없이 막내삼촌이 추석에 에피타이저로 만들어준 타락죽 얘기를 하면서 그건 도대체 뭘로 만든건데 그렇게 부드러운거냐며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죽는 소리를 해대고, 또 어느 날엔 엄마가 만든 마늘 장아찌는 꼬기에 먹어야 맛있을거 같은데 보쌈이 생각난다고 얼버무려서 짠한 마음에 고기 사다 삶아줬더니만... "음~~ 이렇게 맛있는 음식  여편은 왜 한번도 안해주었어요?"라고 말하는 이 인간. 이럴 때 보면 한국말 못할 때가 차라리 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불밖은 위험해!


요구사항이 많아진다는 건... 솔직히 좀 귀찮다.

반찬의 소비량으로 따져볼 때에도 나 혼자 먹었다면 훨씬 오래 먹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반찬욕심병자 눈치 안보고 팍팍 먹었을거다. 비벼먹고 말아먹고 물고 뜯고 요로케 조로케.


그런데 또 내가 먹는 모든 것들을 나보다 더 잘 먹는 남편이 한편으론 고맙다. 가끔 외국인 남편이 냄새를 싫어해서 집에선 김치를 못먹는다거나 하는 얘기를 들으면 내 집에서 냄새풍기며 김치 팍팍 담고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먹고 그럴 수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게다가 내 남편은 그걸 또 나보다 더 맛있게 먹어주지 않는가?


내 할머니가 만든 된장을 세계최고라고 엄지 척 들어주고, 내 삼촌이 만들어준 매실액을 바닥까지 핥아마시고 힘이 난다고 행복해 하는 남자. 그리고 내 엄마가 만들어준 오징어채를 혼자 독차지하고 몰래 꺼내먹는 이 남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반찬욕심병에 걸린 우리집 외국인.

귀찮은 것과 역설적으로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이런 미니가 있어서 나는 오늘 평소의 두 배로 김치를 담았다. 반찬 없음 불안하다는 그대의 마음이 이로서 안정을 찾을 수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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