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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 Jan 06. 2017

남편의 한국어가 늘고있다!

La bonne heure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은 한국어를 거의 몰랐다.

혼자 책사서 틈틈히 공부한 덕에 몇 가지 단어를 알고 있었고 한글을 읽고 적을 수는 있었지만 뜻은 모르고 말은 거의 못하는 정도?

나의 경우는 더 했다. 프랑스어 알파벳도 읽을 줄 모르는 완전 까막눈. 그러다보니 우리의 대화는 99%의 영어와 1%의 한국어로 이루어졌다.


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60% 영어, 30% 한국어, 10%의 프랑스어로 대화한다. 한국어의 비중이 확! 늘은거다. 1년즈음 전부터 한국어를 좀 더 잘하고 싶다는 미니를 위해 나는 일상적인 회화는 한국어로 말하기 시작했는데 남편의 습득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일단 못알아 들어도 한국어로 얘길하고 모르는 것은 설명해 주었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에도 기억할때까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즉, 이것은 애정어린 내 노력의 결과이니 고마워하라고 남편에게 주입하고 있지만 사실 미니는 말이 되든 안되든 배운 것은 다 입밖으로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미니가 한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재밌는 일도 많았고 웃을 일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  점점 내가 수세에 몰리는 느낌이다.



며칠 전 영화를 보고 싶다던 미니. 월정액 프로그램을 켜고 한국영화를 한 편 골랐는데 뭘 보느냐 물으니 "공포"라고 대답을 한다. 때는 이 때다 싶어 급한 작업을 하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와~! 90분동안 남편은 왔다갔다를 미친듯이 반복했다. 프랑스어 자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한국어 단어가 나올 때마다 소리치며 달려왔다. 그 영화에서 아마 97%는 모르는 단어였을듯 싶은데 이런건 단순 학구열이라고 봐야하는걸까?

영화가 시작하기 무섭게...


또 어떤 날엔 물건을 아무데나 둔다거나 하는 사소한 걸로 잔소리를 좀 하려고 하니, 코평수를 넓히고 허리춤에 손을 착 올리면서 "무슨 문제이예요?","어떤 특뵬한 문제 있어요?"라고 큰 소리를 치니 황당하기도 하고 웃음이 터져 아무말도 못했다. 결국 "귀여운데 짜증나."라고 말하는 날 보고 미니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 걸로 상황종료. 이런 일이 시도때도 없이 생기니 뭔가 손해보는 느낌이다.

"어떤 특뵬한" 문제있어요?


사실 문장이 완벽하지 않아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미니가 귀여울 때도 있고, 그렇게 프랑스어를 내뱉지 못하는 나로선 이런 그가 대단해 보이기까지한다. 또 가끔 생기는 돌발 상황들이 우릴 많이 웃게 해기도 하고.

그런데 제일 심각한 일이 얼마 전에 일어났다.




누군가 나에게 커플로서의 로망을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마스크팩! 둘이 나란히 노곤한 몸을 눕힌 후 마스크팩을 착착 올린 다음 휴식을 취하는 것이 하고 싶었다. 사실 별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남자에게 그것은 매우 별 것이다.


수 년 둘이서 처음 갔던 홍콩여행.

하루종일 걸어다닌 후 저녁에 호텔에 가서 쨘 하고 마스크팩을 꺼냈다. "마스크팩 할래?"라고 물으니 오케이라고 쿨하게 대답한 미니가 팩을 들고 욕실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옴마나! 이 남자 느무 매력있다! 채 펴지지도 않은 팩을 위아래는 거꾸로 말도 안되게 붙이고는 눈조차 제대로 못 뜬 상태로 당당하게 나타난 미니. 침대 위로 나자빠져 배꼽이 빠지게 웃는 나를 보고도 영문을 몰라했다. 지나고나니 그 때는 나에게 잘보이려고 참 많이 노력했구나 싶다. 그 후 몇 년을 마스크팩 얘기만 꺼내도 고개를 절래절래하던 미니에게 최근 변화가 생겼다.


지난 한국방문때 엄청난 양의 마스크팩을 들고 왔는데 얼굴에 뭘 바르는걸 귀찮아하는 나같은 게으름뱅이에게 이건 최고다. 일주일에 두 세번정도 사용하는데 처음엔 팩붙인 나만 보면 몬스터라고 놀리고 슬금슬금 피하던 미니가 점점 내 팩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피곤하면 누워서 팩을 하라고 잠자리도 정돈해주고, 또 어떤 날은 다가와서 킁킁대며 향기를 맡기도 하고, 급기야 내 얼굴에 얹어진 팩을 콕콕 찍은 담에 본인의 얼굴에 톡톡톡 두드리는 날들이 늘었다. 

나는 이 때다 싶었다.

한 번 해볼텨?


"어때? 좋지? 이게 다 에센스야." 라고 일단 제품홍보를 적당히 하고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틈에 콧소리 좀 섞어서 초강수를 뒀다.

"미니도 할래? 내가 아주 작게 잘라서 양볼에다만 붙여줄께. 전혀 찐득하지 않은 걸로, 하~~~나도 안불편하게!."

오호라~ 내가 말을 잘하긴 했나보다. 미니는 알았노라 했고 다음날을 기약했다.

나는 신이 났다.


이튿날 밤, 침대에 누워 책읽는 미니에게 물었다.

"마스크팩 언제 할래?"

"나중에."

엥? 이건 안한다는 소린데...

포기할 수 없던 나는 조용히 욕실에 들어가 몰래 작업을 했다. 미니의 볼에 붙일 마스크팩 자르기. 그걸 들고가서 책읽는 미니 얼굴에 척! 

난리가 났다.

내 평생 그런 불쌍한 괴성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제가 마스크팩 싫어요!"라고 외치는 그 소리가 얼마나 처절하게 울려퍼지던지... 결국 미니는 몸부림으로 너덜너덜해진 팩을 1분정도 달고 있었나보다.

그 순간 생각했다.

'아! 이건 한국어구나!'

거부하거나 항의하는 의사표현을 할 때 미니가 나를 향해 한국말로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한 무기인거다. 내 모국어이기 때문에 귀에 더 확확 꽂히고 가슴에 와닿고.

왜 난 이걸 몰랐지?

나는 마스크팩이 미치도록 싫다!


2017년을 맞이하면서 세 가지 목표를 세웠었다.

첫째, 건강관리하기 (몸과 마음 모두)

둘째, 좋은 사람되기

셋째, 꾸준히 그림그리기

이랬으나 저 날 이후로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그것은 프랑스어로 말하기!


프랑스어에 흥미를 못느끼는데다 영어로 대화하는데 불편함이 없었고 남편이 한국말까지 하기 시작하니 나는 어쩜 공부할 생각조차 안했다. 그나마 프랑스 정착 초기에 배운것도 다 잊어버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한국말로 말하려고 노력하는 남편덕분에 깨달았다.

언어도 문화라는 말이 이런거구나. 내가 상대방의 언어로 이야기할 때 진심은 두 배 세 배로 강하게 전달되는건데 난 참 게을렀다. 물론 처음엔 노력했다. 그런데 배울수록 어렵고 이해안되는 이 언어땜에 나이먹고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어서 어느순간 손을 놓아버렸다. 나라는 사람은 목표가 있어야 신나는 사람인데 그게 없으니 흥이 안났다.

그런데 이제 알았다. 왜 내가 더 배워야하는지, 왜 미니에게 그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하는지... 


2017년 나의 네 번째 목표, 프랑스어로 말하기

(싸울 때 좀 유리할려나?)


물론 이 네 가지는 어디까지나 목표다.

소원은 백만개. 히히


꿈에서나 이루어질 나의 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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