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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 Jan 19. 2017

성공적인 결혼 생활의 조건

La bonne heure

레드와인을 미리 따서 숨쉬게 하고,


뮤직 큐! 

언제나 선곡은 매우 신나는 노래.

오늘은 The Charlie Steinmann Orchestra 의 'It is such a good night' 이 좋겠다.

볼륨을 높이고 마음껏 춤추세!

춤추세!

신난다.

왜냐하면 오늘은 스테이크 먹는 날이니까.


부부라는 이 작은 공동체에도 살면서 생겨나는 암묵적 룰들이 있다. 우리의 경우로 예를 들자면 빨래는 내가 욕실 청소는 미니가, 삼겹살은 내가 스테이크는 미니가 굽는다정도가 되겠다.

한 마디로 각자 잘 할 수 있는 걸 하는거다.


남편은 고기 구울 때 젤 빛이 나

미니의 스테이크 굽기 3단 콤보.

1. 오일을 두르고 후라이팬을 한껏 데운다.

고기를 팬에 올리기 전엔 쉿!하고 나를 부른다.

 "여편!들어들어. 고기 이즈 씽잉(고기 is singing)."

기름 위에서 고기가 치~~~하고 소리를 낼 때 고기주의자 미니는 희열을 듬뿍 느낀다.

2. 이제 고기를 뒤집기 전까지 약 30초~1분간 다시 춤추고 노래하며 감정을 최대한 표현한다. 이건 일종의 행위예술이랄까?

3. 고기를 뒤집어 가며 적당히 구운 뒤 로즈마리 같은 허브를 함께 얹어주면 더 좋고, 기호에 따라 허브솔트나 후추등을 찹찹 뿌려주면 끝.


주로 먹는 소스 & 사이드 디쉬
그 밖의 사이드 디쉬들

잘 구워진 스테이크를 육즙이 쫘악 퍼지도록 10분정도 두었다가 위와 같은 사이드 디쉬(곁들여 먹는 부식이라고 하면 될까요)들과 함께 먹는데 그때 그때 있는 재료에 맞게 혹은 구미가 당기는 걸로 준비해서 먹는다.

소스는 있는대로 다 꺼내놓고 마음이 가는 걸로 먹기. 쌈장은 미니땜에 요즘 들어 새롭게 등장했다.





우리가 만난지 얼마 안 됐을 때,

미니는 정말 시크했다.

한 여름에도 빳빳하게 다려진 셔츠 소매를 걷어 입고 실크스카프를 멋들어지게 매고 다니던 남자. 시대와 상관없이 명곡들을 찾아 나에게 들려 주었고,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문학 작품에 대한 얘기들을 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처음으로 함께 맞이한 시크남의 생일.

먹고 싶은 음식을 물었는데 주저없이 대답했다.

"포크립스(Pork Ribs)!"

젤 가까이 있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 갔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이날따라 유난히 행복해 보이던 그를 보며 뭐 당연한거라 생각했다. 외로운 타지 생활에 새로 생긴 여자친구가 케익 들고 선물 들고 양손 무겁게 짜쟌 나타났으니 좋기도 하겠지... 라고 생각했으나 주문한 메뉴가 나오던 순간에 알았다. 

그 설레던 눈빛의 이유는 내가 아니라 고기였음을.


(한식을 제외하고) 보통 레스토랑에 가면 미니는 뭐든 잘라 먹었다. 이건 트럼프도 아니고 피자는 물론 닭다리마저 포크 나이프로 촵촵.

이 날도 포크랑 나이프로 열심히 살을 발라 먹다가 대뜸 물었다.

"손으로 먹어도 돼?"

그렇게 팔 걷어붙이고 먹기 시작.

내 보기엔 다 먹은거 같은데 그 뼈를 포기를 안하고 쪽쪽거린다. "맛있어!" 를 연발하면서 빙구미소를 끊임없이 발사하는 미니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마치 다른 사람 같았던 그 모습에 살짝 당황했지만서도 미니가 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게 된 그 날.



물론 처음이 어렵지. 지금은 빵으로 닦아 먹고도 모자라(이건 다른 프렌치들도 다 하는 것) 포크로 긁어먹고 가끔은 그릇까지 먹으려 든다. 물론 집안에서만.

그러나 그걸 보는 나도 이제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고기 없이 살 수 없는 이 남자를 인정하기로 했다.


반면 나는 프랑스에 와서 고생을 좀 했다.

원래도 고기를 가려먹었던 난데 지인들 집에 가도 시댁에 가도 식당에 가도 심지어 미니가 요리를 해줘도 어딜가나 서빙되는 덜 익은(내 기준) 고기때문에 힘들었다.

아무리 잘 익혀달라고 말해도 자르면 피가...

'배고픈데 먹지도 못하고 돈도 아깝고 왜 이 인간들은 주문받은대로 조리를 안해주지? 내 앞에 있는 이 남자는 오늘도 지 혼자 신나게 먹고 있구나.'

지금 생각하니 유치하지만 왠지 혼자 꽁하고 삐지기 일쑤인 나였다.

프랑스에 살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주식으로서의 고기소비량이 한국보다 많은 이 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 나는 멀쩡한 고기를 사다가 비쩍 마르게 조리해 먹는 이해 못할 식성을 가진 사람이었던거다. 그러니 식당에 가서 바짝 좀 익혀달라고 주문을 하면 종업원들은 두 세번씩 재차 물었다. "그러면 맛이 없을텐데...정말 먹을 수 있겠어?"라고.

그러나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고 프랑스 살이 수 년째, 여전히 피나오는 고기는 잘 못먹지만 핑크빛 정도는 괜찮다. 아니 맛있다.

나도 이제 고기 좀 먹을 줄 안다.


고기 좋아하는 남자랑 살다보니 내 식성도 그에 맞게 변해간다. 대신 미니도 고기 먹는 빈도수를 줄여나가고 있다. 초반엔 단지 나와 식성을 맞추기 위한 노력이었지만,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 시청 후 건강과 환경 모두를 위해 필요한 만큼의 고기만 먹기로 동시에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장을 볼 때도 야채코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계산할 때 나모르는 고기가 자꾸 나오는 것은 함정


"Marriage is about compromise."  라는 말을 듣고 결혼이 타협이라니 참 정도 없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건 사실 나쁜 말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부분을 인정하고 양보하며 절충해 나가는 과정은 결혼 생활에서 너무도 중요하니까. 적어도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미니와 나에겐 그렇다.


누군가는 웃을지 모르겠지만 끼니를 절대 거르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먹는 것은 인생의 거대한 일부분이다. 그 일부분에는 고기에 관한 식습관도 당연 포함이 되는거고... 이렇게 사소해 보일수도 있는 것들을 하나씩 맞춰 나가는게 오랫동안 알콩달콩 살 수 있는 방법일거라 믿고 우린 매 순간 노력하고 있다.




스테이크 먹는 날엔 미니가 불 앞에 선다.

춤추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프로정신으로 고기를 굽고 내 것은 마지막에 잘라서 조금 더 익혀준다.

선호하는 고기 부위가 다르고 조리 정도가 다르지만 그에 맞게 준비해서 맛있게 먹으면 된다.

고기를 마주하고 내 앞에 앉은 이 남자는 오늘도 세상 제일 행복한 얼굴다. 박박 긁어 먹는 것도 모자라 접시에 소스까지 핥아먹고 있지만 더이상 낯설거나 당황스럽지 않다.

밖에서는 여전히 시크남인 미니, 결국 내 앞에서만 보이는 매우 인간적인 면모가 아닌가.

어쩌면 이건 나만 볼 수 있는 남편의 매력이다.


그대의 매력을 인정하기로 했다.


어서 고기를 구워라!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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