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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 Jan 30. 2017

너와 나의 이야기

La bonne heure

두 살

이 아이는 내 동생이다.

남자 아니고 여자다.

항상 내 뒤를 따라다녔다.



선머슴아 같던 동생은 이렇게 자랐다.

스웨덴 외화시리즈 말광량이 삐삐 비디오를 보고 또 보고 대사를 외워댔다. 자신이 동경하던 삐삐만큼 엉뚱하고 개구지던 이 아이는 여전히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모든 언니, 오빠들이 그렇듯 가끔은 이 껌딱지를 어떻게 따돌리고 나 혼자 놀러가나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정말 대단한 껌딱지였다.


열 두 살 내 동생

생은 또 이렇게 훌쩍 자랐고 고등학생이 된 나는 늘 바빴다. 다섯 살 터울인 우리의 생활 패턴과 생각의 방식이 확연하게 달라졌음에도 동생은 내가 어디 가는지 뭘 하는지 여전히 궁금해했다.

우리는 그런 관계였다.




엄마의 일과 서로의 학업 등을 이유로 십 대의 어느 시점부터 우린 꽤 오랜 시간을 떨어져 살았는데 아마도 한 9년 정도인거 같다. 그렇게 우린 성인이 되었고 그 사이 동생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자연히 우리의 관계도 달라졌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우린 둘도 없는 사이지만, 아니 더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었지만 둘 사이의 주종관계에 아주 사~알~짝 변화가 좀 생겼달까?



관계의 변화

동생은 엄청나게 쿨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사회생활에 좀 소극적인 나와는 정반대로 어쩜 그렇게 대인관계를 미친듯이 하는지...

다시 함께 살면서 그녀에게 제일 자주 들은 말은 아마도 이 세 가지가 아닌가 싶다.

"나 나간다."

"오늘 늦게 와."

"혼자 놀아."


아~사람의 마음이란...

안놀아주니까 더 놀고 싶다. 관심 받고 싶다.

나는 동생의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고 안놀아주면 삐지는 찌질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 제일 쿨한 내 동생 앞에 강적이 나타났다.


이 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 강적은 바로 나의 남편, 미니.

동생과 미니가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남편의 신기한 능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미니는 내 동생을 놀리고 심지어 조종하는데 아주 타고난 재능을 지닌 것이었다. 맨 처음 봤을 때만 서로가 수줍었지 두 번째 만났을 때부턴 급속도로 달라진 두 사람의 관계. 그래서 나는 한동안 동생을 아바타라고 불렀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 아이는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걸 즐기는 것 같은 분위기.

미니, 나 , 내 동생... 우리 세 사람의 관계를 잘 들여다보면, 나와 동생의 관계에서는 동생이 분명한 우위를 차지하지만, 미니와 동생의 관계에서는 미니가 우위를 차지하는 이상한 관계도볼 수 있다.


작년 여름 한국에서 보낸 한 달은 그들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예를 들면,


더 빨리! 지금이야!

미니가 요리를 할 때마다 동생은 자연스럽게 주방보조가 되어 있었다. "나 좀 도와줘.","내가 도와줄까?" 같은 말도 필요없다. 동생은 요리하는 미니 곁을 얼쩡거리다가 어느새 주방에서 눈썹을 휘날리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일단 시작하면 그만둘 수도 없고 요리가 다 될 때까지 미니가 시키는대로 다 가져다주고 다 해 준다. 이것은 예전에 미니의 장기출장으로 우리가 한국에 몇 달간 거주하던 때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모습인데 바로 이것이 동생을 아바타라고 부르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신나는 배드민턴

뿐만 아니다.

미니의 등장으로 동생은 자주 피곤해 했다.

사실 난 허리가 안좋아서 격렬한 운동은 못하는데 운동신경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저질 몸뚱이를 타고 났기에 미니가 원하는 스포츠를 함께 해 주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미니에겐 한국가면 실컷 하고 싶은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볼링, 포켓볼, 배드민턴.

볼링은 한달간 동네에서 실컷하고도 추석 휴엔 그의 바램을 들은 일가친척이 총 출동해서 이틀간 볼링내기를 했다. 포켓볼 역시 삼촌들과 이모부, 사촌동생까지 나서서 원없이 해 주었지만 배드민턴은 비가 내린 관계로 짧게 한 번 한 것이 전부. 배드민턴 라켓도 얻었고, 셔틀콕도 샀는데 마음껏 해 보질 못한 미니는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이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 동생이 어느 날 미니를 데리고 동네 공원으로 함께 나가주었는데 내 동생은 아직 미니를 너무 모른다. 그냥 잠깐 가볍게 해 주면 되겠지 생각한 그녀의 계획은 오산이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미니는 트레이닝을 시켜준다며 왼쪽 오른쪽 번갈아가며 셔틀콕을 날려댔고 동생은 말그대로 미친듯 달려야만 했다. 영혼을 잃게 만드는 동생의 배드민턴 훈련, 그것은 그 날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보고싶어서 기다린거야

한 달간 동생은 빈대도 키웠다.

요가강사인 내 동생, 일반 직장인보다 출퇴근 시간이 늦은 편인데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오면 10시 반정도가 된다. 그런 그녀를 몸소 마중나와 기다리는 빈대 두 마리!

지갑들고 퇴근하는 그녀의 모습은 참말로 빛이 났다. 

동네 술집



셋이서 사이좋게

뭐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니까...

우리는 한 달간 동생의 수업실습생이 되었다. 내 몸은 저질이니 특히 유연한 미니가. 요가하는 미니라니 평소같았음 이건 말도 안되는 광경이지만 내 동생이 부탁하니 순순히 다 들어준다. 

동네 카페; 커피 취향만큼 성격도 다른 우리 셋




사실 동생과 미니는 동갑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동갑내기 형부에게 동생은 망설임 없이 우위를 내 주었다. 마음표현을 잘 하지 않는 동생이지만 나는 이게 다 사랑이란걸 안다. 나를 사랑하는 내 동생의 마음.

비록 예전처럼 나를 졸졸 따라다니지 않고, 애정을 갈구하는 내게 쿨내나는 대답으로 응수하는 동생이지만, 또 우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

내 동생이랑 쇼핑하고, 술 마시고, 마트구경가고, 동네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하던 그 모든 순간들이 그립다.

우리가 함께 살 때 자주 외치던 구호가 있다.

좀 부끄럽지만...

(씨)스터! 크로스!


늦은 밤 동네 카페에서


To. 연댕; 우리만 아는 너와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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