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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r 05. 2020

베트남 쌀국수를 집에서 만들다니!

몇 가지 향신료를 이용해서 쉽게 만들 수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뒤숭숭한 요즘, 집콕 하려면 아무래도 먹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가정에서 심신을 편해 해줄 수 있는 따끈한 국물 소식을 전해본다. 


원래 남편이 좋아하는 국수는 나박김치에 말아서 먹는 시원한 국수였다. 우리 처음 사귈 때 내가 나박김치 담가서 국수 해줬더니 정말 잘 먹었다. 그때는 여름이었다. 그런데 계속 날이 춥고, 컨디션이 떨어지는 날이 많아지니 그도 따끈한 국물을 찾기 시작했다. 서양사람도 한국 사람이랑 똑같구나! 우리도 추운 날에는 장터국수나 짬뽕국물이나 그런 거 생각나는데...


따끈한 포 국수가 생각나네!


내가 쌀국수를 처음 만난 것은 20년 전 미국에 살 때였다. 그때 내가 살던 동네에는 한식당이 딱 한 군데 있었고, 사실 나는 베트남 식당이나 타이 식당에 대해서도 잘 몰랐었다. 외식도 알아야 하지, 원! 겨우 어쩌다 외식하면 일식집 런치 도시락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어느 날 텍사스 사는 남동생네 식구들이 놀러 왔다. 운전하며 돌아다니기 좋아하던 남동생이 자그마치 텍사스에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서 워싱턴에 사는 사촌 형을 만나고 뉴욕 이모님 댁을 거쳐 로체스터 우리 집까지 반원을 그리며 찾아온 것이다! 일명 ‘가족 찾아 삼만리’ 여행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묵으면서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도 갔다 오고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출발하는 동생네 가족은 시카고로 갔다가,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서 다시 텍사스로 돌아간다는 긴 여행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지만, 결국 나는 사촌 언니 오빠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딸아이를 데리고 얼떨결에 그 여행에 합류하게 되었다.


꼭 이 노선은 아니었겠지만, 지금 검색해보니 이렇게 나온다. 징하다!


우리는 함께 시카고 고모님 댁에서 이틀을 머물고, 관광한 후, 토네이가 휩쓸고 지나간 동네를 거쳐서 텍사스로 내려간 기억이 남아있다. 티브이에서만 보던 참혹한 관경을 눈 앞에서 보니 정말 끔찍했다. 당시 3살이던 딸아이도 나무가 불쌍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눈 많기로 유명한 동네에 살다가 어느 순간 여름 동네로 오니 볼 것도 많았다. 당시 동생이 살던 오스틴은 텍사스의 주도였기에, 촌에 살던 나로서는 재미난 볼거리가 많았다. 그러다가 올케가 퀼트 가게를 구경시켜준다고 데리고 나갔다가, 외식하자며 베트남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형님, 이게 한식은 아니지만 뜨끈한 국물 생각날 때 좋아요. 맛이 묘한데, 한 번 먹고 나면 가끔 생각이 나더라고요." 라며 권했는데, 고수와 기타 향신료에 익숙하지 않던 그 시절에, 정말 묘한 고깃국물의 국수가 특이했다. 썩 마음에 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정말 그렇게 먹어보고 나서 한 한 달 후쯤 다시 그 국물이 먹어보고 싶어 졌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였기에 주변에서 찾아봤지만 딱히 마땅한 곳이 없었다. 차로 20분은 가야 하는 곳에 작은 베트남 식당이 하나 있었는데,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3년간 미국 생활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내가 다시 그 국물이 그리워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한국에는 한국식 뜨끈 시원한 국물이 종류별로 다 있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다시금 또 그 국물이 한 번씩 생각이 나곤 했다. 몇 군데의 베트남 식당을 다니며 실패한 끝에, 홍대 앞에 있는 호아빈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고, 그 이후로 그곳은 우리 집의 단골 외식 장소가 되었다. 특히 딸아이까지 점점 좋아하게 되어서, 텍사스 당시 3살이던 아이가 자라, 큰 사이즈로 시켜서 국물을 싹 비우게 될 때까지 우리는 참 많이 먹어댔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식당은 문을 닫았다.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없었고, 우리는 그 집만큼 입에 맞는 곳을 찾지 못했다. 직접 만들어보려고 인터넷을 찾아봤지만 당시에 마음에 드는 레시피를 찾지 못했고, 사실상 모르는 향신료들 때문에 엄두가 안 났던 것도 같다. 그러고는 살기에 바빠서 잊어버렸다. 그냥 대충 마음에 드는 곳에서 어쩌다 한 번씩 먹을 뿐...




캐나다로 와서 결혼을 새로 한 나는 남편이 당연히 월남 쌀국수를 좋아할 줄 알았다. 타이음식이나 인도음식, 그리고 초밥도 잘 먹는 상당히 동양적인 입맛을 가진 그가 이 국수를 모른다는 것은 정말 뜻밖이었다. 더구나 밀가루를 전혀 먹지 못하는 그에게 이 국수는 진짜 잘 어울리는데 말이다.


정말 가물에 콩 나듯 거의 외식하지 않는 우리 부부이지만, 장 보다가 너무나 출출해진 어느 날, 저걸 먹어보자며 처음으로 둘이 베트남 쌀국수 식당으로 갔다. 결혼 후 1년 반이나 지나서 말이다. 그런데 역시나! 남편은 이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인 줄 몰랐다며 진짜 맛있게 먹었다. 국수라고 하니까 막연히 밀가루가 들어갔을 거라 생각하고 시도도 안 해봤다고 했다.


그리고, 역시 남편도 이 국물이 가끔 생각이 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전 쉬는 날, 날씨는 우중충 하고 끼니때는 다가오는데, 점심 뭐 해 먹을까 하다가 간단히 국수 비빌까 했더니, 그 뜨끈한 국물, 그거 있잖아... 하며, 쌀국수가 먹고 싶단다. 나가자니 번거롭고, 그까이꺼 집에서 한 번 끓여보지 뭐! 하며 급히 레시피를 뒤졌다. 그러나 한국 블로거들이 소개하는 월남국수는 대부분 시판 소스를 사용해 만드는 것들이었고, 전 과정을 직접 만드는 것은 눈의 띄지 않았다. 우리는 시판 소스를 좋아하지 않는 부부다. 어차피 조미료 듬뿍일 것이고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물론 한국에서 파는 그런 것들을 여기서 쉽게 구할 수도 없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구글에 영어로 검색을 했더니, 짜잔! 딱 관심을 끄는 레시피가 나왔다. 그리 복잡하지도 않았다.


오리지널 : https://www.ricardocuisine.com/en/recipes/334-pho-soup-beef-and-noodle-soup


이거 보고서, 급하게 아쉬운 대로 휘리릭 끓였는데, 정말 그럴듯한 국물이 나왔다. 그날은 진짜, 냉장고에서 유효기간 얼마 안 남은 팩 닭 육수에다가, 대충 끓였는데도 너무나 맛있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다시, 진짜 집에서 끓여낸 닭 육수를 넣어서 재시도하였는데, 국물 베이스가 좋으니 더욱 맛이 있었다.


왼쪽이 정향(clove), 오른쪽이 팔각회향(star anise)


이 육수의 키 포인트는, 팔각회향(star anise) 정향(clove)에 있었다. 한국 우리 집에는 없던 재료이며,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재료인데, 남편의 양념찬장에는 버젓이 들어있었다. 예쁘게 생긴 향신료였다. 그러고 나서 검색해보니 한국에서도 다 팔더라! 


그럼 함께 휘리릭 만들어보자.


주 재료는 양파, 마늘, 생강, 팔각회향, 계피, 고추, 닭 육수가 들어가고, 간은 멸치액젓이나 까나리액젓을 사용하고, 모자라면 국간장을 조금 넣어줘도 좋다. 이건 내 마음대로 넣은 것이다. 처음에 양파부터 시작한다. 얇게 채를 써는데, 아무렇게나 썰어도 되지만 이왕이면 결 반대방향으로 썰면, 식당에서 먹는 것과 같은 모양새가 되니, 반을 자른 후 반달 모양 방향으로 썰어주면 좋다. 


양파 썰은 방향을 참고하시길...


그래서 양파를 먼저 기름에 볶아주는데, 라드나 오리기름, 거위기름을 선호한다. 우리 집에는 크리스마스 때 거위 구우면서 받아놓은 거위기름이 있으므로 그것을 사용했다. 양파가 노릇노릇 색이 돌 때까지 중불로 볶아주는데, 이 대목에서 모양이 예쁜 양파 조각들을 조금 건져내서 담아두면 나중에 얹어먹기 좋다. 양파가 야들야들 노릇노릇해지면 마늘과 생강을 넣고 다시 3분 정도 볶아준다.



그리고 육수와 향신료 등을 넣고 본격적으로 국물을 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시판 닭육수 팩에 들은 게 냉장실에서 있어서 그것을 처분하느라 썼는데, 두 번째는 집에서 낸 닭 육수를 썼더니 훨씬 맛있었다. 우리는 주로 통닭을 집에서 해 먹는데(https://brunch.co.kr/@lachouette/79), 그것을 먹고 남은 뼈로 육수를 내놓으면 정말 유용하다. 육수가 없다면 시판용 치킨 브로스(chicken broth)를 사용할 수 있다. 가루나 큐브로 된 것은 조미료가 많으니 피하는 것이 좋다.


고추는 원래 칠리고추를 넣는 것이지만, 집에 할라피뇨가 있어서 그것을 넣었는데 제법 칼칼했다. 청양고추를 넣으면 진짜 매워지겠지만, 취향에 따라 사용 가능할 것 같다. 고추도 어느 정도 끓은 다음에 모양이 반듯한 것들로 미리 건져놓았다. 그리고 고수 사놓은 것이 없어서, 집에서 요새 기르는 보잘것없는 새싹이라도 고수와 바질을 조금 잘라서 시늉만 냈다. 그래도 고수 향이 나더라! 하하!


국물이 끓는 동안 국수를 삶아주는데, 베트남 쌀국수를 삶는 것이 정통이다. 취향에 따라서 가는 면과 넙적한 면으로 골라서 선택하면 될 것이다. 샘표에서 나오는 쌀소면도 좋다. 두 가지 다 먹어봤는데, 좀 더 쫄깃한 맛을 원하면 샘표 쌀소면으로, 부드러운 맛을 원하면 베트남 국수로 하면 좋을 것이다. 국수 삶는 법은 봉지에 있으니 각자 자신이 구입한 국수에 맞게 삶아주면 된다.


육수가 다 우러나오면, 건더기는 체에 받쳐서 버리고 국물만 다시 팔팔 끓인다. 그리고 씻어서 헹궈둔 쌀국수를 놓고 그 위에 육수를 끼얹어주는데, 국수가 차가워서 국물이 바로 식으니 토렴을 해주면 좋다. 토렴은, 그릇에 국물을 담은 후 다시 냄비에 따라내서, 다시 끓는 국물을 담아내는 방식으로 온도를 올려주는 방법이다. 


짜잔! 완성! 쌀국수 집에서 하듯이 나름 꾸며서 따로 담아서 놔 봤다. 얇게 썰을 고기가 없어서 그냥 뭉텅이 고기로 대신했지만, 남편 완전 감격! 진실한 재료로 만든, 풍미가 풍부한 국물이었다. 이제 이것은 우리집 힐링푸드 중 하나로 정착되었다.



그런데 식당에서는 어찌하는지 모르겠으나, 토렴까지 한 국물은 여전히 숙주를 넣으니 그렇게 뜨끈하지 않아서 나는 내심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번에 끓일 때에는 육수 거르고 나서 다시 팔팔 끓을 때 숙주를 투하해버렸다. 그리고 불을 최고로 올려서 온도가 확 떨어진 국물이 다시 끓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그동안 얌전히 씻어서 대기 중이던 국수도 뜨거운 물로 재빠르게 다시 헹궈준 후, 물기 재빨리 제거하고 그릇에 담았다. 그 위에 팔팔 끓는 숙주 놓고, 국물 끼얹고... 나머지 양파, 고수 등등은 미약하므로 그냥 진행.


아효~ 입천장 델 뻔했음!


이상 끝! 

국물 넉넉히 만들어서 냉동해놓으면, 날 추울 때 딱 좋을 듯.





월남 쌀국수

3~4인분


국물 재료 :

양파 1개, 반 자른 후, 가로로 채썰기

식용유 1큰술 (나는 냉장고에 있던 거위기름으로 했다)

생강 엄지 크기 정도, 껍질 까서 잘게 다질 것

마늘 2쪽, 잘게 다질 것

닭 육수 2리터

멸치액젓 2큰술

팔각회향(star anise) 2 개

정향(clove) 2개

계피 작은 거 1대

매콤한 고추 1개 (나는 할라피뇨 사용), 납작납작 썰어서 준비


그 밖의 재료 :

쌀국수 (1인당 60g 정도)

숙주 (1인당 2컵)

바질이나 고수

양파 슬라이스 약간

고추 납작 썰어서 몇 조각

쪽파 2개, 종종 썰어서 준비

라임(또는 레몬) 한 조각

차돌이나 양지 얇게 썰은 것 몇 조각


만들기 :

1. 양파를 반달 모양으로 얇게 채 썰어서 기름 두르고 노릇노릇 볶는다. 힘이 없어질 때까지 볶아준다.

2. 다진 생강과 마늘을 넣어서 다시 한 3분 정도 볶아준다.

3. 닭 육수를 붓고, 향신료들과 고추, 멸치 액젓을 넣고 뚜껑 덮어 끓여준다.

4. 끓거든 불을 줄이고 5분 정도 더 끓여준다.

   나중에 국수에 얹어먹으려면, 양파와 고추를 살짝 덜어내도 좋다.

5. 새 냄비에 물을 끓이고 쌀국수를 삶아준다. 

   (쌀국수 종류에 따라 끓이는 시간이 달라지므로 각자 가진 쌀국수 봉투의 삶는 법을 이용한다)

6. 국수를 찬물에 씻어서 물이 빠지게 둔다.

7. 다 끓은 육수는 체에 받쳐 건더기는 버리고, 국물만 다시 팔팔 끓인다.

   이때, 간을 보고, 모자라다 싶으면 멸치액젓을 좀 더 넣거나 국간장을 넣어준다.

8. 큰 접시에, 숙주를 씻어서 담고, 아까 건져둔 양파와 고추, 그리고 고수와 바질, 파, 라임을 담아준다.

9. 씻어둔 면을 뜨거운 물로 한 번 헹궈준 후 그릇에 담고 육수를 부어준다.

   국수를 그냥 담고 국물로 토렴을 해줘도 된다. 

  (토렴: 국물 부었다가 냄비에 따라내고, 끓으면 다시 붓기 반복)

10. 위에다가 차돌이나 양지 얇게 썰은 것을 얹고 숙주 등과 함께 서빙한다.

11. 숙주를 얼른 뜨거운 국수 아래쪽으로 파묻어주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먹는다.


※ 팔팔 끓는 뜨거운 국물로 먹고 싶다면, 그리고 숙주가 너무 날거인 것이 싫은 경우,

    국물 마지막 끓일 때, 찬 숙주 넣고, 센 불로 한번 다시 끓어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서빙하면

    뜨끈한 국물이 식탁에서 식지 않고, 다 먹을 때까지 뜨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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