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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r 17. 2020

피스타치오 젤라또

초록색의 날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 기념...

3월 17일은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Saint Patrick's Day)다.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인 세인트 패트릭이 세상을 떠난 날로, 그를 기리는 여러 가지 행사를 한다. 한국에서는 참으로 생소한 날이지만, 캐나다를 포함하여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등의 나라에서는 퍼레이드도 하고, 여러 가지 행사를 하며 축하한다. 옛날에 잠시 미국에 살 때에는,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초록색을 입혀오라고 해서 의아하기도 했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으니 검색도 쉽지 않았고, 그래서 그저 초록색에 관련된 날 정도로만 인식이 되었던 것 같다.

초록색은 아일랜드에 관련된 색상이다. 그들을 상징하는 초록색 토끼풀 잎(Shamrock)에서 유래되었다고 보인다. 축제를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아이리쉬 계열의 사람들이지만, 다문화를 인정하는 이곳 분위기상 학교에서는 이렇게 초록색을 입혀 보내라는 안내문을 보내어 함께 축하하는 것이다. 당시에 그래서 간식도 초록색으로 구워서 들려 보내려고 나름 시금치 쿠키를 구웠는데 전혀 초록색이 아니어서 실망하기도 했다. 예쁜 초록색을 넣으려면 역시 색소가 짱인데 그걸 안 쓰려니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이렇게 봄이 오고 3월이 되면, 어쩐지 뭔가 초록색으로 만들고 싶어 진다. 꼭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가 아니어도 봄을 생각하면 이미 녹색이 떠 오르니, 나름 몸이 근질근질한 것이다. (사실 어제 올린 달래장도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 음식이라도 주장해도 될 색상이긴 하다 : https://brunch.co.kr/@lachouette/135 )


하지만 한식과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는 좀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떠올린 것이 피스타치오 젤라또이다. 나는 달다구리를 즐기지 않는 입맛이지만, 지난여름 이태리에 갔을 때에는 이태리만의 젤라토를 피할 수 없었다. 특히나 시칠리아 팔레르모에 진짜 맛있는 집이 있었는데, 시칠리아는 더구나 피스타치오로 유명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조합했던 젤라또를 맛있게 먹었었고, 나는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젤라또는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뭔가 분명히 특수한 비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쫀득함이 있어서, 집에서 만드는 셔벗 질감의 아이스크림과는 차원이 다른 매력이 있다. 작년에도 나름 젤라또를 시도해봤었는데, 맛은 좋았지만 역시 집에서 만들면 이 정도 질감밖에 안 나오는구나 하고 안타까워했었다. 그러다가 올해 다시 알아보면서 다른 비법을 알아냈다. 작년엔 왜 그게 눈에 안 들어왔을까?


젤라또에 달걀을 넣어? 말어?


남편 친구가 집에서 키우는 달걀을 공급해준다.

어떤 사람이 자기 젤라또 레시피에 달걀노른자를 넣었다고 글을 올렸더니, 그 밑에 덧글로 논쟁이 붙었다. 젤라또에는 달걀노른자가 들어간다 vs 들어가지 않는다. 이것이 이슈였는데, 결론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것으로 판명 났다. 사실 이걸로 시칠리아 사람들과 논의를 해본 적은 없으니 정말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달걀을 좋아하기 때문에 늘 달걀노른자를 아이스크림에 넣었었는데, 이번에는 과감히 달걀노른자를 빼고 다른 재료를 넣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타피오카 전분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재료인데, 알고 봤더니 젤라또에는 전분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전분은 옥수수 전분이지만, 나는 음식에 옥수수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GMO 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은 오메가 6을 굳이 섭취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또한 타피오카 전분의 다른 장점은 부드러운 점력이다. 따라서 이것을 넣을 경우, 다른 전분보다 양을 두배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이번에는 타피오카 전분을 넣고 젤라또를 만들었다. 흔히 젤라또는 생크림이 적고 우유가 더 많다지만, 나는 생크림을 선호하므로 반반으로 진행했다. 취향에 따라, 적당히 가감해도 되고, 집에 있는 재료를 봐 가면서 비율이 적당히 달라져도 딱히 큰일 날 것은 없다. 나는 이 정도가 입에 맞는 듯하다. 아무튼 흰자를 버리고 노른자만 써야 되는 번거로움을 버리고 전분을 넣은 아이스크림은 대성공이었다. 

쫀득쫀득 젤라또

입 안에 착착 감기며 쫀득하게 느껴지는 질감이 딱 젤라또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젤라또! 이름부터 쫀득하지 않은가? 


남편에게 건네줬더니 "바로 이거야!"라는 탄성이 나왔다. 이제 인생 젤라또 레시피 장착이다. 응용은 여기서부터 무궁무진 아니겠는가! 


결국은 호두 젤라또와 모카 젤라또까지 연달아 만들어서 흐뭇해졌다는 뒷 이야기를 남기고, 함께 만들어보자!





피스타치오 젤라또를 만들기 위해서는 피스타치오 페이스트가 있어야 하는데, 서양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러지 못할 것이고, 나 역시 무슨 첨가물이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페이스트를 구입해서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겁도 없이 피스타치오 페이스트 만들었다.


우선, 소금 가미가 되지 않은 피스타치오가 필요하다. 단단한 껍데기 안에 들어있는 것을 구입했다면, 껍데기를 먼저 까야겠고, 만일 이미 벗겨둔 것을 구입했다면 그보다는 더 편리할 것이다. 나는 마침 미국에 장 보러 갔다가 구매해 둔 트레이더 조스의 피스타치오를 사용했다. 


이것을 그대로 사용해도 되지만, 예쁜 녹색을 만들고 싶다면 속껍질을 벗기는 것이 좋다. 맛에는 큰 차이가 없을 테니 번거로운 것이 싫으면 재빨리 여기서 손을 빼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를 추천한다.



속껍질은 그닥 호락호락하게 까지지 않는다. 그래서 작은 냄비에 물을 팔팔 끓인 후, 거기에 피스타치오를 던져 넣고 1분간 화르르 끓여준다. 익히겠다는 개념은 아니고, 껍질을 잘 벗기려는 작전이므로 익는다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얼음물을 준비해두었다가, 체에 밭쳐낸 피스타치오를 넣어서 헹궈낸다. 그리고 키친타월로 물기를 닦으며 벅벅 문질러준다. 이 과정에서 속껍질이 어느 정도 벗겨나가리라 예상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그냥 정성껏 벗겨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며, 영화나 뉴스나 드라마를 보며 벗기기를 추천한다.


너무나 귀찮지만 다 해놓고 나면 탐스럽게 예뻐서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또 하고 싶지는 않다! ^^ 다음번에는 초록색 포기하고 그냥 갈색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만들까 보다! 


색상의 차이가 보이시는가!
완전 노르스름한 녹색 반죽으로 탈바꿈한 피스타치오!


이제 푸드프로세서나 믹서기에 넣고 돌려준다. 어느 정도 충분히 갈렸다 싶을 때 우유를 넣고 다시 돌려주면 반죽처럼 질감이 바뀌며 완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페이스트는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무스라든가 기타 다른 간식 만들 때에도 사용하면 좋다. 한꺼번에 다 사용할 것이 아니라면 1/4컵이나 1/2컵 분량으로 분할해서 냉동하면 나중에 다시 사용하기도 좋다.




이제 본격적으로 젤라또를 만들 차례이다. 달걀노른자를 사용하지 않으니 훨씬 쉬워졌다. 하지만 전분이 들어가므로 처음에 액체 섞을 때 약간 주의를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막 뭉친다.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으므로 전분과 대체 감미료 자일리톨을 먼저 냄비에서 잘 섞어준다. 설탕이 아닌 감미료는 주료 에리스리톨과 자일리톨이 사용되는데, 아이스크림에는 질감을 위해 자일리톨이 훨씬 낫다. 우유와 생크림은 미리 계량해서 전자레인지에 살짝만 돌려주면 좋다. 차갑게 시작하면 갈 길이 너무 멀기 때문이다. 


불을 켜기 전에 거품기로 전분 믹스를 잘 섞으면서 거기에 우유 믹스를 조금만 넣고 젛어준다. 잘 섞이면 조금 더 넣고, 하는 식으로 양을 늘려간다. 1/4 정도 들어갔다 하면 이제 레인지에 불을 켜고, 중불로 가열하면서 나머지 우유 믹스를 다 넣는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잘 섞이고, 가장자리가 끓기 시작하면 피스타치오 페이스트를 넣어 섞어 준다. 그리고 한 5분 정도만 더 뭉근히 끓여주면 된다.



이제 불에서 내려서 서늘한 곳에 두며 식힌다. 중간중간 저어줘서 위에 막이 생기기 않도록 한다. 방심하면 위에가 필름처럼 굳어버려서 좋지 않다. 다 식거든 레몬즙바닐라를 넣어서 한 번 더 저어준다. 사람에 따라서는 보드카를 넣어주기도 하는데, 이것도 의견이 분분하다. 독한 술이 아이스크림을 덜 얼게 하기 때문에 더 쫀득하게 만든다는 주장인데,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냉동되지 않는 독주 때문에 아이스크림이 계속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더 거칠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실 나는 실험상 별 차이를 못 느꼈다. 그래서 풍미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굳이 넣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 만들어졌다면, 원하는 틀에 담아서 냉동실로 들어가면 된다. 너무 단단하게 굳지 말라고 중간중간 저어주는 것은 원래 모든 아이스크림의 기본이다. 아이스크림 기계가 있다면 알아서 해주겠지만, 없다면 뭐 이렇게라도 하면 된다. 처음에는 한 2시간쯤 있다가 저어주면 좋고, 그다음에는 1시간,  그리고 다시 30분마다 서너 번 더 저어주면 된다. 


어중간하게 얼었을 때 저어줌으로써 중간에 공기를 넣어주어 부드럽게 한다


하지만 귀찮으면 생략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 너무 단단해서 서빙이 어렵다면, 먹기 전에 10분 전쯤 꺼내놓거나, 아니면 한 30분 전쯤 냉장실로 옮겨놓으면 좋다. 만일 깜빡해서 꺼내놓지 않았다면,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10~20초 정도 돌려주면 퍼담기 쉽게 변한다.


아이스크림은 뭐니 뭐니 해도 아이스크림 전용 스쿱으로 퍼주는 것이 제맛이다. 둥글게 돌돌 말리는 모양이 예쁘지 않은가? 



위에 피스타치오 좀 뿌려주고, 접시에도 장식으로 담아주었다. 아이스크림 만들 때 씹히는 맛을 살리기 위해서 처음부터 너트를 섞어 넣어도 되지만, 이렇게 따로 서빙할 때 더 바삭바삭한 질감이 살아나며 훨씬 맛있다. 그리고 장식용으로도 훌륭하지 않은가?



이상으로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를 빙자한 젤라또 만들기 스토리를 마친다. 다른 너트 아이스크림과 초코아이스크림은 다음 기회에 다시 정리하기로...




피스타치오 페이스트

계량 - 서양식 1컵 240ml 기준

1과 1/3컵 분량


재료:

피스타치오(껍데기 제거, 소금 없는 거) 1컵 반

자일리톨 1큰술

우유 1/2컵


만들기 :

1)  작은 냄비에 물을 팔팔 끓인다. 

    끓거든 피스타치오를 넣고 불을 중불로 줄인 후 딱 1분만 끓인다.

    (속껍질을 쉽게 벗기려고 하는 거니까, 얼마나 익힌다... 뭐 이런 개념이 아님)


2) 체에 밭쳐서 찬물(얼음물)로 헹구고, 키친타월로 물기를 닦아주듯 벅벅 문질러준다.

    그리고 껍질을 까준다. 


3)  준비된 피스타치오를 푸드프로세서나 믹서기에 넣고 돌려준다.

    충분히 갈렸다 싶을 때, 우유 넣고 다시 돌려서 반죽상태로 만들어준다.


4) 총 1과 1/3컵 분량이 나옴. 쓸 만큼을 빼고 나머지는 1/4컵씩 나눠서 둥글게 빚어서,

   유산지에 올려 냉동한 후에, 랩으로 싸고, 다시 포장하여 두면 다음에 쓰기 좋다.


* 녹색을 포기하고 갈색도 괜찮다면 1, 2 과정을 생략한다.





피스타치오 젤라또

600ml 분량


재료:

생크림 1컵 (없으면 우유로 대치)

우유 1컵 

자일리톨 1/3컵 취향껏 가감

타피오카 전분 2큰술 (없으면 옥수수 전분 1큰술)

소금 한 꼬집

피스타치오 페이스트 1/3~1/2컵

바닐라 1/2 티스푼

레몬즙 1 작은술


만들기:

1) 우유와 생크림을 섞어서 전자레인지에 2~3분 정도 돌린다. (따끈해지도록)

2) 냄비에 전분과 자일리톨을 넣어서 섞어주고, 우유 믹스를 조금만 따라 부어 잘 섞어준다.

3) 섞이는 상태를 봐 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더 섞어서 1/4 정도의 분량까지 섞어준 후 레인지 불을 켠다.

4) 중불로 가열하면서 나머지 우유 믹스를 다 넣어준다.

5) 걸쭉해지면서 살짝 끓기 시작하면, 피스타치오 페이스트를 넣고 섞어준다.

6) 뭉근히 5분 정도 끓인 후, 불에서 내려서 식도록 둔다. 종종 저어줘서 위에 막이 생기지 않게 한다

7) 다 식거든 다시 한번 거품기로 휘저어 준 후, 레몬즙과 바닐라를 넣고 섞어준다.

8) 적당한 틀에 담는다. 냉동한다.

9) 처음에 두 시간 후에 꺼내서 섞어주고, 다시 1시간 후, 30분 후... 이렇게  여러 번 꺼내서 섞어준다.

10) 너무 단단하면 실온에 10분 정도 내 놓거나, 전자레인지에 10~20초 정도 돌려주면 쉽게 퍼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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