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베리가 익어갈 무렵
우리 집 뒷산은 블랙베리 수풀이 우거져있다. 뒷산이라고는 하지만 길도 없는 곳이고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다. 오직 곰이 즐겨 올 뿐이다. 며칠 전에도 마당에서 남편이랑 일 하고 있는데, 뒷산 쪽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곰이 나타났다.
우리 부부는 깜짝 놀라서 데크로 허둥지둥 올라왔다. 한 살 좀 넘어 보이는, 아주 어리지는 않은 중간 크기 곰이었는데, 푸짐하게 응가를 하여서 영역표시를 하고 나서는 우리 마당으로 내려오려고 눈치를 봤다. 나를 쳐다보고 눈이 마주쳤는데,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더니 슬금슬금 발걸음을 내디뎠다.
나는 늘 목에 해양용 호루라기를 걸고 있는데, 곰을 쫓기 위함이다. 이 호루라기는 구조용이라 소리가 아주 큰데, 곰들은 큰 소리를 싫어하고 소리가 나는 곳을 피하고 싶어 한다고 해서 늘 걸고 다닌다. 나는 얼른 호루라기를 불었다. 처음에는 무시하려는 듯 했지만, 반복적으로 불어대니 결국은 발길을 돌렸다.
그보다 일주일 전에는 두 마리가 와서 장난을 치고, 우리 집 애꿎은 호박을 망가뜨려 놓고 가기도 했는데 그새 또 오다니! 정말 철없는 애들이 몰려다니며 장난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도 우리가 호루라기를 불자 부랴부랴 도망을 갔다. 그래도 이 정도 큰 애들이어서 엄마를 데리고 다니지 않으니 다행인 것으로 여기는 수준이다.
아무튼, 곰 이외에는 아무도 찾지 않은, 길도 없는 이 땅을 블랙베리가 차지하고 있다. 번식력이 좋은 블랙베리는 물론 우리 마당을 침범하여 우리 집 온실 옆에 아주 한가득이다. 우리 집에는 라즈베리도 심어서 자라고 있지만, 야생으로 번진 블랙베리의 위세를 당할 수는 없다. 라즈베리는 하루 이틀에 한 번 수집하면 손바닥에 올릴 수 있을 만큼의 양을 건지기 때문에 마당일 하면서 조금씩 따 먹는다. 블랙베리는 그보다 훨씬 많다.
원래 공원의 야생 과실은 채취하면 안 되는 것이 이 지역 법이지만, 이 블랙베리는 우리 마당으로 들어온 것이기도 하거니와 그냥 뒀다가는 곰이 이거 먹자고 오면 아주 곤란하기 때문에 따는 것이 안전하다. 곰이 와서 먹을 것이 있도록 방치하면 그것도 벌금이 아주 세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은, 며칠에 걸쳐서 블랙베리를 따서 모았다는 것이다. 잘 익은 블랙베리는 손으로 잡아당기면 쉽게 딸 수 있다. 안 떨어지려고 하는 것은 굳이 딸 필요가 없다. 익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굉장히 시다. 남편은 씨가 우둑우둑 씹히는 블랙베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맛은 좋지만 씨가 거슬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스크림에 블랙베리 시럽을 얹어서 먹는 것은 좋아해.
남편이 하는 말에 대고, "무슨 아이스크림?"이라고 덧붙여 묻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오호! 요새 안 그래도 디저트 떨어져서 뭐 할까 했는데, 마음속에서 바로 결정이 났다. 그래서 그 핑계로 오늘은 마당일 좀 덜 하고 부엌에서 시간을 보냈다.
따 온 블랙베리는 식초를 풀은 물로 한 번 씻어줬다. 이런 야생 베리에는 은근 벌레가 많으니 식초 살균은 필수이다. 시럽은 어떤 레시피로 만들까 머리를 굴리다가, 예전에 만들었던 크랜베리 시럽과 같은 방식으로 하면 되겠다 싶어서 따로 레시피도 안 찾아봤다. 그런데 막상 결과물이 상당히 달라서 만들면서 좀 수정을 했다.
물과 감미료를 섞어서 끓인 후 블랙베리를 투척하였다. 감미료는 자일리톨을 사용했다. 나처럼 무설탕주의가 아니라면 설탕을 대신 넣을 수도 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한 20분 정도 졸여준다
종종 저어주면서 블랙베리를 으깨 주었다. 저으면서 보니, 내가 덜 익은 것들도 모았던 것 같다. 상당히 탱글 하게 버티네. 낮에 해가 뜨거울 때 채집하면 덜 익은 것도 익은 것처럼 보이는 바람에, 잘 안 따지는 것도 다시 따기 귀찮아서 그냥 모은 것들이 꽤 되었나 보다.
어느 정도 으깨면서 삶은 후에는, 채반에 걸러준다. 여기서 복병이 나타났다. 예전에 크랜베리 시럽 만들 때에는 속이 물러서 쉽게 터지고 거르기 편했는데, 블랙베리는 극성맞은 씨앗이 과육을 물고는 놓아줄 생각을 안 했다.
냉동 크랜베리는 여기서 과정이 끝이지만, 블랙베리는 다른 레시피가 필요했다. 결국은 채반에 걸려있는 것들을 물 한 컵에 풀어서 휘휘 젛어서 다시 체에 내려야했다. 덕분에 시럽이 너무 묽어져서 다시 냄비에 넣고 30분을 졸였다. 이 과정의 사진은 왜 없을까?
원하는 농도보다 약간 묽다 싶을 때 불을 꺼야 식으면 원하는 농도가 된다. 맛을 보니 역시나 많이 새콤한데 풍미가 너무 좋았다. 진한 블랙베리 맛이 입안을 차르르 감돌았다. 남편이 싫어하는 씨는 당연히 씹히지 않았고 부드럽게 녹아드는 맛이었다. 넉넉하게 했더니 4컵가량이 나와서, 두 개의 병에 나눠 담고 냉장고로 직행.
이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야지. 내가 아이스크림 만드는 방법은 언제나 비슷하다. 젤라또로 하려면 달걀을 안 넣고, 아이스크림으로 하려면 달걀을 넣는 차이 정도가 되고, 내용물을 여러 가지로 바꿔서 모카 젤라또, 다크 초코 젤라또, 피스타치오 젤라또, 호도 아이스크림 등등 그때그때 먹고 싶은 것으로 만든다.
오늘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할 것이니, 재료에 바닐라가 들어간다. 나는 바닐라빈을 사용하는데, 이미 가루를 내어놓은 바닐라 파우더를 사용해도 좋다. 둘 다 없으면 흔히 구할 수 있는 바닐라액을 사용한다. 단 바닐라액은 풍미가 덜하므로 두배로 사용하면 된다.
가루 재료들을 먼저 냄비에 섞어 두고, 우유와 생크림을 전자레인지로 살짝 따끈하게 데워준 후, 조금씩 가루에 부으면서 섞어준다. 왕창 부어버리면 가루가 제대로 풀리지 않고 뭉쳐 돌아다니기 때문에, 처음에 액체를 아주 조금만 넣어서 완전히 풀어주고, 다시 조금씩 액체를 추가하여야 한다.
이번엔 달걀노른자를 넣을 차례인데, 그대로 뜨거운 우유 믹스에 투하하면 샥스핀에 계란 풀어놓은 것 같이 달걀이 먼저 확 익어버리기 때문에, 반대로 달걀 쪽에 뜨거운 우유를 조금씩 넣어 섞으면서 온도를 맞춘 후, 충분히 따뜻해졌을 때 우유 믹스로 다시 부어 넣는다. 이게 커스터드 크림 만들 때와 같은 방식이다. 어렵다 싶으면 달걀노른자를 빼도 된다. 그러면 젤라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약간 노란색이 나는 것이 더 예쁘니까 나는 꼭 노른자를 챙긴다.
재료가 다 들어갔으면 낮은 온도에서 계속 저으면서 약간 묵직한 느낌이 날 때까지 5~10분 정도 뭉근히 끓여준다. 불을 끈 후 바닐라를 넣어서 섞어주고 그다음에는 버터를 한 숟가락 넣어서 다시 저어주면 일단 재료는 완성이다.
이제 이것을 얼려야 하는데, 전에는 귀찮아도 통에 담아서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저어 주곤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는다. 실리콘 머핀컵을 사용하면 딱 1회분 만큼의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머핀틀에 실리콘 머핀컵을 담은 후, 아이스크림을 붓고 냉동하면 완성이다. 작은 틀에 만들기 때문에 한 4시간 정도면 딱 먹기 좋을 만큼 언다. 더 오래 두고 먹을 생각이면 다음날쯤 컵에 담긴채로 밀폐용기에 넣는다. 안 그러면 수분이 증발되어 맛이 없어지기때문이다. 며칠 지나서 먹자면 아이스크림이 꽝꽝 얼기 때문에 먹기 약간 단단하다 싶을 수도 있다. 이럴 때에는 5초~10초 정도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으면 먹기 좋은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이 된다.
낮에 내가 뭔가 하느라 바빠 보이자, 남편이 뭐 만드냐고 물었다. 하지만 무엇을 만드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냥 디저트 만든다고만 했다. 그리고 저녁때, 연어와 관자를 이용한 요리를 근사하게 차려준 남편에게 디저트를 먹겠냐고 물었다.
디저트 글라스에 먼저 시럽을 조금 담고 그 위에 아이스크림을 꺼내서 얹었다. 그리고 다시 위에 시럽을 뿌려줬다. 하얀 아이스크림에 짙은 붉은 시럽이 너무나 강렬하게 예뻤다. 그리고 적당히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새콤한 블랙베리 시럽은 진짜 잘 어울렸다. 바닐라 향을 더 살려준다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마트에서 파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말한 것이었는데, 집에서 만드니 훨씬 건강하고 진한 맛이 난다. 당신 말에서 힌트를 얻어서 만들었다고 하니 껄껄 웃는다. 그리고는 행복한 미소가 잔잔히 번진다. 이런 순간의 기쁨을 위해서 나는 한여름에도 땀을 흘리면서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는 것일게다. 물론, 그 역시 내가 맛있게 먹을 것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고급진 저녁식사를 준비했듯이 말이다.
이제 아이스크림과 시럽을 넉넉하게 만들어 놨으니 앞으로 며칠간 디저트 걱정은 없을 듯!
2컵 분량 (서양식 컵 계량 기준 =240ml)
재료:
물 1컵 반
자일리톨 1/4 컵 (안 넣어도 됨. 취향껏 가감)
블랙베리 3컵
만들기:
1. 블랙베리는 물:식초=8:1 희석한 물에 씻어서 건져둔다.
2. 물 반컵과 블랙베리를 넣고 중불에서 끓인다.
3. 끓기 시작하면 약불로 블랙베리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15분 정도 끓인다.
4. 큼직한 체를 볼에 걸쳐놓고 문질러서 걸러준다.
5. 체에 남은 블랙베리 씨앗을 나머지 물을 넣어 저어주고, 그것도 걸러서 앞의 액과 섞어준다.
6. 거른 혼합액을 불에 올리고, 취향에 따라 감미료를 적당히 넣어 맛을 본다.
7. 양이 2/3로 줄 때까지 30분 정도 약불로 졸여준다. 가끔 저어준다.
8. 완성되면 유리병에 담아 냉장 보관하면 두 주일 정도는 괜찮다. 그보다 오래 보관하려면 냉동한다
* 블랙베리를 구하기 힘들면 냉동 크랜베리나 블루베리를 사용하면 좋다. (4번에서 조리과정이 끝난다)
* 블루베리를 대신 사용하면 감미료의 양을 줄인다.
머핀컵 12개 분량
재료:
우유 1컵 반
생크림 1컵 반
자일리톨 1/3컵 (취향껏 조절)
타피오카 전분 2큰술 (없으면 옥수수 전분 1큰술)
콜라겐 파우더 1/4 컵 (없으면 생략해도 무방하다)
소금 한 꼬집
달걀노른자 2개 (생략 가능)
바닐라빈 1개 (또는 바닐라 가루 1 작은술, 또는 바닐라 익스트랙트 2 작은술)
버터 1큰술
만들기:
1. 우유와 생크림을 섞어서 전자레인지에 2~3분 정도 돌린다. (따끈해지도록)
2. 냄비에 전분과 자일리톨, 콜라겐 파우더, 소금을 넣어서 섞어서 준비한다.
3. 거기에, 우유 믹스를 아주 조금만 따라 부어 잘 섞어준다.
섞이는 상태를 봐 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더 섞어서 1/4 정도의 분량까지 섞어준 후 불에 올린다.
4. 중불로 가열하면서 나머지 우유 믹스를 다 넣어준다.
5. 걸쭉해지면서 살짝 끓기 시작하면 잠시 불에서 내리고 달걀노른자를 준비한다.
6. 노른자를 풀은 곳에 뜨거운 우유 믹스를 한 숟가락씩 섞으면서 저어주기를 반복한다.
대략 한 컵 정도의 우유 믹스가 들어가면 이제 그것을 다시 냄비에 부어 섞어준다.
7. 뭉근히 5분 정도 더 끓인 후, 불을 끄고 바닐라를 넣어 섞어준다.
8. 그리고 버터를 넣어서 다시 한번 섞어준다.
9. 실리콘 머핀컵에 담아서 실온이 될 때까지 식힌 후 냉동실에 넣는다.
10. 최소 4시간 정도를 얼린 후, 틀에서 꺼내어 서빙한다. 블랙베리 시럽을 뿌려서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