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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un 11. 2020

오래된 것들

일부는 남고, 일부는 떠나가고...

세월이 가고 나이 먹어갈수록 점점 많은 오래된 물건들이 주변에 쌓이게 된다. 그런 것들 중에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잘 쓰고 있어서 늘 곁에 있는 것도 있고, 이제 더 이상 쓰지 않지만 향수에 젖어서 버리지 못하는 것도 있다. 또 어떤 것은 어느 순간, 이제 인연이 끝났구나 싶어서 떠나보내는 것들도 있다. 지금 잘 쓰고 있는 것들의 좋은 예라면, 얼마 전에 포스팅했던 제빵 반죽기 bread bucket이 대표적인 물건이겠지?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서, 내 창고 안에 있는 오래된 물건들은 구질구질해 보여서 버려야겠다 싶다가도, 남의 집 창고에 박혀있는 것은 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반대로 늘 정이 들어서 쓰이고 있는 물건은 진짜 낡았는데도 김상조 정책실장의 가방처럼 본인 눈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내가 이혼을 하고 이사를 하면서 정말 많은 물건들을 정리하고 버렸는데, 그래도 결국 20평짜리 다가구주택 한 칸을 빼곡히 채우게 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역시 정말 못 버리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딸이 그 집에 가서, 자기 어렸을 때의 추억이 남아있는 물건들을 사용하면서 지내고 있다. 엄마가 없어도 엄마의 집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곳에서 말이다.


내가 캐나다 와서 살면서 남편에게서도 그런 물건들을 많이 보게 된다. 저 물건은 왜 가지고 있을까 싶은 것들도 있고, 이 멀쩡한 것을 왜 버린다고 그러나 싶은 것들도 있다. 


요새 가드닝을 하면서 마당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물건을 이리저리 끌고 다닐 일도 많아졌다. 어느 날 남편이 창고에서 작은 웨건을 하나 꺼내면서, 옛날에 아이들이 사용했던 것이라고 했다. 비록 녹이 슬긴 했지만, 화분이나 가드닝 도구들을 담아 끌고 다니기에 딱 좋은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잡초를 뽑고 있었기에 남편이 "이거 쓸래?"라고 물어보는데, 아무 생각 없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잡초 뽑다 말고 웨건을 끌고 다닐 일이 없으니까 말이다. 

활짝 핀 아이리스를 올려놓으니 엽서 같지 않은가!

그러고 나서 한 30분 후쯤엔가 앞마당에 오이 심은 거 잘 크고 있나 보러 갔는데, 그 물건이 집 앞에 떡 놓여있는 것이다! 앞에 종이로 FREE 라고 쓰인 채로! "헉! 이거 왜 여기 있어?"라고 물었더니, "안 쓴대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무슨 소리냐고, 지금 당장 안 쓴다고 했지... 놀라서 가슴 쓸며 끌고 들어왔다. 에효, 누가 그 사이에 집어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거 얘기하면서 남편 얼굴이 추억에 젖는 것을 봤는데, 이게 무슨 일이냔 말인가.


추억이 있는 물건을 그렇게 쉽게 버리냐 했더니, 안 쓰면 떠나는 거지 뭐... 라며 웃는데, 내가 도로 주워왔더니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냥 본인이 생각하기에 그걸 아직도 끼고 있는 것이 궁상맞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창고에 방치된 물건들을 꺼내보면 몹시 손상되고 녹이 슬었어도 여전히 아름답다. 한때 우리의 가슴을 뛰게 했던 것들, 우리의 삶과 밀접했던 것들.. 그것들의 일부는 떠나가고 잊힐지라도 현재의 우리를 만드는 데 일조를 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남편이 아이들을 키우며 사용했던 이 귀여운 웨건, radio flyer, 완전 녹이 슬었지만 이렇게 그냥 놓아두기만 해도 예쁘다. 못 버리는 내가 못 말리는 것일까? 그래도 나는 오래된 것들이 좋다.


그렇다고 모든 것들을 다 끼고 살 수는 없다. 


얼마 전 내가 양동이를 이용해서 빵을 왕창 만들었던 이유는 남편의 막내아들과 사위가 오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집 뒷마당에 전에부터 보관 중이던 둘째 아들의 차가 있었는데, 이번에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그 차를 정리하기로 하였고, 오래 방치되어서 움직일 수 없는 차를 남편 혼자 앞마당으로 꺼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 


늘 방수포로 덮여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게 어떤 모양의 차인 지조차 모르고 결혼 후 일 년을 살았다. 그냥 차를 쓸 일이 없어서 덮어두었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차는 콜렉터블에 해당되는 차였고, 몹시 낡았지만 너무나 예쁘게 생긴 구식 자동차였다.


세차를 하니 반짝반짝 예쁘게 빛났다

당장의 목표는 이 차를 현관 앞으로 끌어내는 것이었지만, 최종의 목표는 이 차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팔려하니 요새 같은 시즌에 쉽지 않을 것이고, 가격도 어떻게 매겨야 할지 난감하고... 그러던 와중에 이동을 도와주던 큰 사위가 차 상태를 살피더니, 자기가 손을 봐서 사용해도 되겠냐고 했다. 차 주인도 오케이 하고, 사실 모두 안도하였다. 전혀 알지 못하는 남에게 가는 것보다, 가족 안에서 이동하는 것이니 어찌나 마음이 편하던지...


첫날은 바퀴가 돌지 않아서 결국 꺼내지를 못했고, 며칠 후 다시 장비를 가지고 와서 마침내 집 앞으로 끌어냈다. 드라이브 웨이에 세워둔 차는 만개한 만병초의 붉은색과 너무나 잘 어울리면서 아름답게 이틀 동안 놓여있었다. 이웃집 아이들이 와서 재미있어하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오래된 것이 주는 정겨움과 아름다움은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떠났다. 이 차가 떠나던 날, 나는 남편의 눈물을 보았다. 물건을 떠나보낼 때는 참 호쾌하게 보내는 사람인데, 가슴속에 들어있는 마음이 남달랐던 것 같다. 단순한 차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가 다 한꺼번에 그의 가슴을 두드렸으리라. 이 차를 구입하러 아들과 같던 추억, 함께 달렸던 길... 등등 함께 했던 많은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겠지. 어쩌면 그리운 것은 물건이 아니고 시간 이리라. 나 역시 그런 경험들이 있었기에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스라이 찡 해져왔다.


나는 예전에 컴퓨터 모니터를 떠나보내면서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난다. 그까짓 기계에 어찌 눈물을 흘릴지 의문스럽기도 하겠지만, 당시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떠난 구식 모니터에 관한 일기를 쓰면서, 과거 조침문을 썼던 유 씨 부인을 이해했었다. 


세상 모든 것들에는 정해진 인연이 있는 듯, 어차피 그 어느 것도 평생 함께 갈 수 없으며, 또한 사물이 아닌 사람들조차도, 모든 이들과 평생 함께 할 수 없으리라. 늘 곁에 있는 이도 있고, 왔다가 떠나는 이들도 있다. 그것이 인력으로 조절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있는 동안만큼은 많이 후회 없이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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