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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Sep 16. 2020

소렌토에서 먹었던 호박꽃 튀김을!

정원에서 식탁으로 가능할 줄이야!

마당에 뭔가를 심는다고 해서 그게 꼭 싹이 나리라는 법은 없다. 지난 이른 봄, 이웃집 소닐라가 맛있는 호박 종류라며 씨앗을 나눔 해줬다. 진짜 맛있었다고 했는데, 당시만 해도 우리 집 정원을 손질하기 훨씬 전이었기 때문에 어디 심을 데가 마땅치 않아서 고민하다가 그냥 여기저기 좀 묻어뒀던 것 같다. 그러고는 완전히 까먹었고, 나중에 기억이 났지만, 그 근처를 이미 다 갈아엎었기 때문에 그냥 나지 않았다고만 생각하고 말았는데...


그런데 이 녀석이 뒤늦게 최근에 싹이 난 것이다. 처음에 난 것을 보고, "이게 뭐지? 꼭 호박 같네." 했는데, 정말 호박이 맞았다. 아마 씨가 깊숙이 들어가서 싹으로 나오는 데까지 오래 걸렸던 듯하다. 하지만 8월에 난 호박으로 무슨 결실을 보겠는가? 그것도 야채 심는 쪽이 아니라, 한창 꽃들 피기 바쁜 곳에 나서는 이걸 어쩔까 하다가 좀 한적한 곳에 옮겨주었다. 그러자 그 밑에서 또 하나가 올라왔고, 그것도 옮겼더니 또 하나가 올라왔다.


그러다가 최근에 창문을 바꾸는 공사를 대대적으로 하면서, 부득이 오이 덩굴을 걷어내야 했는데, 그러고 나니 빈자리가 너무 허전했다. 그래서 신경 안 쓰고 미뤄두었던 얘네들을 앞쪽 화단으로 데려왔다. 세상에 얼마나 무관심했으면 그 전 사진을 한 장도 안 찍 놨을까 모르겠다. 혹시나 싶어서 찾아봤는데, 한 장도 없다. 에궁!


아무튼, 그렇게 옮겨놓고서도 사실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날도 추워지기 시작했고, 꽃이 피어봐야 결실을 맺을 시간도 이미 없기 때문이었다. 그저 잠시 우리의 허전함을 달래주다 떠나리라고만 생각했다. 


함께 옮겨 심은 나팔꽃은 살아남지 못할 듯...


그런데, 어제 보니까 아니 글쎄 얘가 꽃이 피었네! 그것도 두 개나! 반가워서 보니, 엄연한 수꽃이었다. 짝짓기 할 암꽃도 없으니 얘는 그냥 피었다가 사라질 운명...


그런데 문득,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호박꽃 튀김이 생각나는 것이 아닌가? 로마 교환학생 끝낸 딸에게 가서 함께 소렌토 갔다가 모처럼 분위기 내서 먹은 근사한 식당의 메뉴였다. 이 식당에서는 또 다른 사연이 있는데, 지금의 남편에게서 상당히 의미 있는 문자를 받게 되면서, 우리 결혼의 씨앗이 되는 결정적인 암시가 된 곳이기도 했다.


이 새우구이도 진짜 맛있었고, 호박꽃튀김은 속에 크림치즈가 들어있어서 살살 녹았다.


아름다운 그의 편지를 받고 너무나 놀라고 가슴 뛰어서 이 맛있는 것들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던 것은 안 비밀! 당시만 해도 그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결국 작년에 신혼여행 가면서 여기를 빼먹지 않았다. 그날 참 피곤해서 기진맥진한 날이었는데, 그래도 빼먹을 수 없는 코스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남편은 먹을 수 없었다. 밀가루를 씌워서 튀겼기 때문이다.




남편이 퇴근한다는 문자를 보내오자마자 나는 얼른 내려가서 호박꽃을 따왔다. 참 작구나! 진작에 이 생각을 했으면, 그동안 주키니 호박꽃이 많이 피었었는데, 그때 그걸로 해 먹는 건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 다음번에는 꼭 풍성하게 챙겨 먹으리라 생각하면서, 후다닥 간단 버전으로 만들었다.


급히 레시피를 검색해보니, 안에 들어가는 크림치즈에 달걀노른자를 넣기도 하고, 바질이나 민트나 그런 허브도 넣고 하던데, 나는 시간이 없었으므로 그냥 크림치즈만 사용했다. 튀김가루는 지난번에 해물파전 레시피에 썼던 그 배합으로 하되 약간 더 걸쭉하게 했다. 그래야 잘 씌워질 테니까. (그 레시피는 여기 :https://brunch.co.kr/@lachouette/182)



다시 옛날 사진을 찾아보고 만들었으면 뒤에 꼭지도 살짝 남기는 것인데, 허둥지둥하느라 아쉽게 되었다. 다음번에는 모양을 좀 더 살릴 수 있을 듯. 


꽃 안쪽에 벌레나 지저분한 것이 있으면 안 되므로, 꽃의 한쪽을 조심스럽게 찢어서, 안쪽의 수술을 제거했다. 그리고 물로 살살 달래듯 씻어주고,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해주었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던 케피어 크림치즈를 한 스푼 떠서 그 안에 밀어 넣었다. (케피어 크림치즈 만드는 법은 여기에: https://brunch.co.kr/@lachouette/148 그러나, 일반 크림치즈로 사용하면 되니까 일부러 만들 필요는 없음) 그리고 꽃으로 조심스럽게 다시 감싸주었다. 

그다음의 과정샷은 없다. 남편이 도착했고, 나는 튀김옷을 씌워서 후다닥 튀겼으니까. 튀김옷이 너무 얇아서, 한 번 튀기고 나서 다시 한번 더 입혀서 튀겼다. 그리고 간식으로 요렇게... 파슬리도 따서 곁들여주고...



그리고 데크에 나가 앉아서,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느냐고 대화를 나누며 휴식시간을 가졌다. 그 이후엔 정원에 나가서 흙 만졌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고...



누구나 집에서 화분에 호박을 키워서 재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꽃이나 잎을 먹는다면 꼭 열매가 맺히지 않아도 그것으로도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강력 추천!




호박꽃 튀김


재료:

호박꽃 4개

벽돌형 크림치즈 1/2, 또는 채울 수 있을 만큼

달걀노른자 1개 

글루텐프리 가루 1/8컵 + 타피오카 전분 1/8컵 (일반 튀김가루나 밀가루 1/4컵으로 대체 가능)

물 1/4컵 (남은 달걀흰자와 섞어서 이 분량을 만들면 더 좋다)

소금 약간 (일반 튀김가루 사용 시 생략)

튀김기름


만들기 :

1. 호박꽃을 조심스럽게 씻은 후, 안쪽을 벌려 수술을 제거한다.

2. 마른 행주로 꽃에 남아있는 물기를 살살 닦아준다.

3. 크림치즈에 달걀노른자를 섞어서 부드럽게 해 준다.

4. 크림치즈믹스를 꽃의 안쪽에 넣고, 꽃잎으로 잘 감싸준다.

5. 튀김용 가루와 물을 섞어서 튀김옷을 만들어준다.

6. 튀김기름을 프라이팬에 여유롭게 두르고, 팬을 기울여서 튀겨준다.

    튀김옷이 너무 얇다 싶으면 한 번 더 입혀서 다시 한번 튀겨줘도 좋다.

7. 완성.




멕시칸 스타일로 변화를 주고 싶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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