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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Sep 18. 2020

쉽게 자라서 식탁을 채워주는 콩

어려운 게 있으면 쉬운 것도 있다!

지난번 농사일기에서는 짝짓기까지 시켜야 하는 상전 오이를 소개했는데, 오늘은 정말 신경 하나도 안 쓰고 무럭무럭 자라준 콩에게 감사한다는 글을 쓰고 싶다. 집집마다 쉽게 되는 게 다르고, 잘 안 되는 것이 다르겠지만, 우리 집에선 얘가 효자다.


지난봄에 모종을 이것저것 사 오면서, 남편이 집어 들은 껍질콩. 이게 서양식 콩이어서 나는 그리 익숙하지 않지만 남편이 좋아해서 먹다 보니 나도 좋아하게 되었다. 종종 마트에서 사 먹던 것이니 집에서 키우면 좋겠다 싶었지만, 사실 어떻게 키워야 하는 종류인지도 모르고 해서 내가 선뜻 집어 들었을 종류는 아니었다.


덩굴로 올라간다 하니 어디다 심어야 할까 처음에 좀 고민했었는데, 정원에 높게 솟은 나무가 눈에 띄었다. 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어떨까 싶어서 심어봤다. 사실 이때는 거름도 사기 전이었고, 땅은 몹시 척박했으니 큰 기대가 없었다.


옹기종기 화분을 놓아보고, 괜찮다 싶으면 그 자리에 심는다.


이때는 정말 정원에 손 하나도 안 댔을 시기여서, 바닥엔 잡초가 가득했고, 무너진 울타리 위로 아이비가 가득할 뿐이었다. 무질서한 상황을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이며 살고 있었던 시기에, 여기에 작은 모종을 쉬우니 귀여워 보였다. 총 5개의 pole bean blue lake이라는 종류였다. (사실 뭔지도 몰랐는데, 한쪽에 꽂아놓은 이름표를 오늘 다시 확인했다.)


 

피오니 꽃이 예쁘게 필 무렵 얘네들도 덩굴을 뻗기 시작하길래, 마침 달러 스토어에서 사다 놓았던 철제 받침대를 세워주었다. 그리 높지 않았지만, 얘네들이 얼마나 자랄지 사실 감도 없었다.



잭과 콩나무처럼 하늘로 하늘로 뻗어 올라가지는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받침대가 끝나자 줄기는 그 자리에서 나무를 감으며 맴맴 돌았고, 안쪽에 빽빽하게 잎이 들어차서 잘 통풍도 안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데 이미 줄기는 다 뒤엉켜있어서 따로 구출해줄 상황도 못 되길래, 수확은 포기하고 그냥 관상용처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무를 감고 있는 모습이 예쁘지 아니한가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콩을 숨겨놓고 키우고 있었던 것이 발견되었다. 꽃이 스리슬쩍 보이긴 했어도 그다지 눈에 띄는 모양이 아니다 보니 우리가 더욱 무심히 지나가긴 했다만서도, 열매가 맺히도록 몰랐다니 참으로 무심하기도 했구나.

 

왼쪽에 작고 하얀 꽃이 보인다. 오른쪽에는 조롱조롱 매달려있는 콩깍지들


남편은 기분이 좋아서 그 자리에서 바로 따 먹었다. 어릴 때 이렇게 밭에서 직접 딴 날콩을 먹곤 했었다고 한다. 맛이 제법 달콤하면서 상큼했다. 그래서 나도 그 이후로 잡초 뽑다가 하나 따 먹기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법 많이씩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는 저녁식사 전에, 밥상에 올릴 콩을 한 바가지씩 딸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수북하게 수확한다.


한 손에  쥐고 사진 찍느라 애 먹었음!

같이 마당에서 일하다가, 남편이 저녁 준비한다고 들어가면서 "들어올 때 콩 따와~"라고 말해서, 저녁식사용으로 따다가 생각나서 찍은 사진이다. 척 보기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지만, 사진 찍느라 손에 간신히 쥐었다.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데, 잎 안쪽을 뒤적이면 안쪽에 다 자란 콩들이 아주 많이 숨어있다. 



얘는 보통 양식 식사에서 사용하는데, 양 끝을 잘라내고 그대로 볶거나, 아니면, 냄비에 물 조금만 담고 수증기로 쪄서, 물 따라낸 후 소금 뿌리고 버터 둘러 먹으면 고기 식사에 곁들임으로 딱 좋다. 


색감을 살리기 위해서 당근과 함께 요리. 남편이 서빙 중. 이날 저녁은 폭찹
함박스테이크에도 잘 어울린다.




쉽게 커서 밥상에 오르는 친구 하나 추가! 깻잎이다. 작년에도 올해도 효자 식물이다. 아무것도 안 해줘도 쑥쑥 자란다. 조그만 화분에 심은 게 미안하지만, 그냥 부엌 앞에 두고 수시로 따먹고 싶어서 텃밭으로 안 내려가고 베란다에서 사느라 고생이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 잎을 내준다. 


곁순 치기도 안 해줬다. 그냥 생각나면 아무 데나 따 먹는다. 해가 잘 드는 곳에 두었다. 깻잎은 해를 많이 좋아한다. 해를 못 보면 뒷면이 보라색으로 되는 게 잘 안 된다. 그래야 싱싱한데... 아, 그리고 두엄을 좀 주었다. 트럭으로 구매한 두엄을 위에다가 얹어줬다. 그래 봐야 이 작은 화분에 뭐 얼마나 있겠는가. 그래서 물이 빨리 마르기에, 매일 물을 듬뿍 준다. 눈 앞에 있으니 챙기기 쉽다. 



오늘 찍은 사진인데, 잔뜩 뜯어서 깻잎 조림했는데, 흔적도 없다. 식물을 키울 때 곁순은 꼭 제거를 하라고 흔히 그러는데, 나는 어떨 때는 곁순이 많아서 막 퍼지고 그러는 게 좋다. 오히려 그게 더 건강하게 자라고 결실도 더 많이 맺기도 한다. 판매용 농사가 아니라 가정용 소규모 텃밭이라면 곁순은 눈치껏 적절히 잘라주면 되는 듯싶다. 이 깻잎이 멀대같이 한 줄만 있다면... 아유! 상상하기도 싫다!


어제저녁 반찬에 밑반찬 종류가 없길래 후다닥... 하고 싶었으나, 이렇게 쌓으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양념장만 간장, 파 마늘, 깨, 참기름, 양파, 고춧가루 넣어서 섞고, 세장씩 한 겹 돌려준 후, 마침 남편이 자기 뭐 하려냐고 물어볼 때 얼른 건네주었더니 이렇게 얌전하게 쌓았다. 그리고 위에 멸치를 뿌려주고 작은 불로 한 10여분 졸여주면 맛있게 완성된다. 아, 물도 한 두 세 숟가락 넣어줘야 타지 않는다. 주의사항은  단 하나! 태우지 말 것!



그래서 어제저녁은 화분에서 딴 미나리로 미나리 해물전을 부치고, 깻잎 반찬 곁들여서 간단히 먹었다. 아, 돼지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맵지 않게 잘 되어서 좋았다.


사진이 왜 이렇게 윤기 안 나게 찍혔는지... ㅎㅎㅎ


작은 농사지만 집에서 키운 것들을 따자마자 상에 올린다는 것은 아주 큰 기쁨을 준다. 또한 놀랄 만큼 맛에 차이가 난다. 마트에서 사는 것들이 며칠간 유통되면서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도 한몫을 할 것이고, 아무래도 농약이나 그런 문제도 무시할 수는 없으리라.


농사짓는 사람들만큼 그렇게 예쁜 작물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래도 충분히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일인 것 같다. 특히나 별로 손이 안 가는 작물이라면 횡재한 기분이 들게 된다. 밭이 없어도 베란다에서 키운 깻잎만으로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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