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Oct 12. 2020

초간단 재료로 맛있는 닭요리

때로는 절제가 필요해

요새 참으로 음식 해 먹는 재미가 없다. 나나 남편이 무슨 대단한 요리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응용해서 잘해 먹는 편인데, 저요오드 식이 하면서 간장과 달걀, 유제품, 해산물을 하나도 사용 못하니 가능한 요리가 거의 없는 것이다. 


만두 할까? 하다가 보면, 간장과 달걀, 두부... 엘에이 갈비 할까 하다가 또 간장... 돈가스도 그렇고, 해물파전도 그렇고, 새우젓 들어간 김치도 불가하니 김치찌개는 아예 꿈도 못 꾸고...


그래서 어제오늘 연달아 사골 곰탕을 끓여서 먹고 나니, 저녁에는 좀 다른 게 먹고 싶어 졌다. 장을 보러 갔지만, 역시나 모든 것에 제약이 걸렸다. 우리 집은 원래 통닭만 먹지만, 통닭도 이미 며칠 전에 해 먹었으니, 오늘은 잘라진 닭 재료를 사다가 뭐라도 양념을 해볼까 하고 뼈 붙은 닭 허벅지살(chicken thighs)을 포부 있게 들고 왔다.


그러나! 결국 버터도 못 쓰고, 그렇다고 간장 양념이나 고추장 양념도 안 되고, 그러니까 데리야키 소스도 못하고... 두툼한 닭 허벅지살을 사 와 놓고서는 한숨을 쉬고는 미뤄뒀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손질을 시작했다. 원래 깨끗하게 손질되어 처리된 닭을 사 온지라 별로 할 일은 없었다. 그저 깨끗한 물로 씻어서 물기를 빼고, 반을 칼집을 냈다. (이거 사진 안 찍은 게 아쉽다!) 그러고는 도마 위에 놓여있는 닭다리살을 째려보았다.


그러다가 그냥 마음을 비우고 가장 기본으로 가기로 했다. 뭐라도 풍미를 주려면 마늘과 생강은 기본인지라, 우리가 가을에 수확한 마늘을 다져서 위에 뿌렸다. 그 마늘이 풍미가 강해서 적합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부엌에 굴러다니던 생강도 좀 다져서 뿌렸다. 버터를 사용할 수 없으니 올리브유를 사용하려는데, 최근에 구입한 새 올리브유가 매운맛이 들어있는 강한 향의 올리브유라는 생각이 나면서, 그걸 쓰면 맛을 살려줄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으로 넉넉하게 뿌려줬다. 마지막으로 소금과 후추. 요오드 없는 히말라얀 소금을 요새 사용하는데, 뜻밖에 너무나 맛이 좋다. 물에 타 먹을 때에는 맛있다는 생각 안 했는데... 늘 바다소금만 즐겼는데 이것은 요새 새로운 발견이다.


아무튼 아무것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마늘, 생강, 올리브 오일, 소금, 후추. 끝!


이렇게 해서 뚜껑 덮고 오븐으로 들어갔다.


곁들여 먹을 것을 생각하니, 얼마 전에 농장에서 구입한 델리카나 호박이 생각났다. 그냥 씻어서 성큼성큼 썰어서 역시 올리브 오일과 소금 뿌리고, 205°C(400°F)로 예열한 오븐에 나란히 넣었다. 닭은 뚜껑을 덮었다. 20분 정도 익히고 나서 구경을 해보니, 닭에서 물이 많이 나왔길래 뚜껑을 열어줬다. 호박은 뒤집어주고. 그 상태로 10분 정도 더 익히고는, 아무래도 위에가 노릇해지지 않길래, 브로일러로 돌려서 5분 더 구웠다.


결과는... 오! 일단 냄새와 비주얼이 그럴싸해졌다.


사실, 별로 기대를 안 했기 때문에 포스팅할 생각도 없었고, 그래서 과정 샷 같은 것도 거의 안 찍었다. 그런데 맛이 정말 좋았다. 


남편은 밥과 함께, 나는 밥 없이...


밥을 선호하는 남편에겐 밥을 동그랗게 얹어주고 (아니, 남편이 스스로 그렇게 얹었다!) 닭은 얌전하게 두 토막씩 담았다. 그리고 기름진 육수를 위에 넉넉히 둘러줬다. 육수는 밥에도 뿌려줬는데, 다 스며서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구나. 잘 익은 호박구이는 접시에 담은 후 소금을 추가로 뿌려줬다.


치킨은 적당히 익었고, 위쪽의 껍질은 바삭하며 쫄깃했다. 고기 부분도 촉촉하면서 탄력 있었다. 보통 버터를 둘러서 구워 먹던 이 호박도 버터 없이 충분히 그 풍미를 뽐냈다. 한국이라면 단호박으로 대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사실 이렇게 기본에 충실한 음식이 더 맛있기도 하다. 그냥 재료 그 자체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려면 재료가 좋아야 한다. 닭도 신선해야 하고, 진짜 올리브유에 방금 간 후추, 미네랄이 살아있는 소금... 그런 것들이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때, 본연의 맛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삶도 그런 것 같다. 때론 아름답게 화장하고 예쁜 옷을 차려입고 향수를 뿌리고 나가면 기분 전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그냥 맨 얼굴에 편안한 티셔츠 차림으로 환하게 웃는 할머니가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 같이 말이다. 화려한 문장이 가득 들은 문학작품도 좋지만, 아무 기교 없이 잔잔하게 써 내려간 수필도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것도 역시 같은 맥락 이리라. 박진감 넘치며 재미난 사건들이 가득 찬 나날도 즐겁고, 아무 사건 없이 조용히 지나간 날도 아름다우리라. 산해진미로 가득한 식당과 수영장이 딸린 호텔에서의 바캉스도 즐겁고, 한적한 시골 오솔길을 걸을 때 가슴이 벅차오를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다 기본이 충실할 때 발생한다. 신선하지 않은 식재료로는 이렇게 조리할 수 없다. 양념을 듬뿍 쳐야 한다. 음식이든 생활이든, 내면 안쪽에 그 충실함을 가지고 있을 때 모든 것은 아름답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나를 쳐다보며 순박하게 웃으면, 그 안에 사랑이 들어 있어서 행복하고, 그곳이 어디였던, 맑은 공기와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벤치에 앉아서 그 자연의 힘을 즐길 수 있으면 그 순간 그냥 행복했던 경험들처럼 말이다. 


음, 음식 얘기하다가 좀 멀리 갔다. 그렇다, 요즘 먹는 음식들이 그렇다. 최근에 남편이 조리한 돼지고기 로스트와 통닭구이도 더할 나위 없이 맛있었다.


돼지 목살 구이 (Boneless Boston Butt Roast)


바삭하게 구워진 돼지비계와 촉촉한 살은, 남편이 뿌린 소금과 약간의 향신료만으로 다른 양념이 필요 없었다.  소금, 후추, 머스터드 가루, 마늘 가루, 딱 이 네 가지만 사용해서 구웠다. 


그렇게 해서, 집에 있던 토마토와 오이, 그리고 남편이 조리한 퀴노아 밥과 더불어 향기로운 식사가 되었다.



늘 같은 방식으로 조리하던 통닭도 이번에 특히 더 맛있었다.  (너무나 쉽고 맛있는 통닭 조리법은 링크 참조: https://brunch.co.kr/@lachouette/79) 히말라얀 핑크 소금 덕이었는지, 아니면 절제된 향신료 덕에 재료의 맛이 더 살아났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다시 생각한다.

때로는 기교 없이 우직하게... 삶도 그렇게...





닭 허벅지살 오븐구이

2~3인분


재료:

큼직한 닭 허벅지살(chicken thighs) 6개

마늘 4쪽, 다져서 준비

생강 엄지 한 마디만큼, 다져서 준비

올리브 오일 반 컵

소금, 후추 적당량

단호박, 적당히 슬라이스 (옵션)

밥 (옵션)


만들기:

1. 오븐을 205°C(400°F)로 예열한다.

2. 닭은 깨끗하게 씻어서 물기를 완전히 빼준다. 마지막에 키친타월로 두드려주면 좋다.

3. 통으로 사용해도 좋으나, 가운데에 칼집을 깊게 넣으면 더 잘 익고, 나중에 먹기도 좋다.

    뼈까지 자를 필요는 없다.

4. 오븐에 사용할 수 있는 용기에 담고, 닭을 겹치지 않게 가지런히 늘어놓는다.

5. 다진 마늘과 생강을 위에 뿌려준다.

6. 올리브 오일을 넉넉하게 둘러준다.

7. 소금과 후추를 뿌려준다. 뚜껑을 덮어준다. (없으면 쿠킹포일로 싸준다)

8. 단호박을 곁들이고 싶다면, 잘 씻어서 약간 두툼하게 슬라이스 한 후, 오븐용 팬에 올리고, 올리브유와 소금을 둘러준다.

9. 예열된 오븐에 넣고 15분간 조리한다.

10. 닭은 뚜껑을 열어주고, 호박은 뒤집어 준다. 10분간 더 익힌다.

11. 오븐을 브로일러 기능으로 돌려서 5분 정도 익히면서 위쪽이 노릇하고 바삭하게 구워준다.

12. 서빙할 때, 오븐 용기 안의 육수를 닭과 밥 위에 뿌려주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곰탕집 깍두기 vs 시원한 깍두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