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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an 17. 2021

풍요로운 상차림이 가능한 이유

맛있는 것을 해 먹는 것은 우리의 놀이

오늘 우리 집 저녁 식탁에서 우스개 삼아 한 이야기는 "그저 남은 음식을 먹어치운 것뿐이야"였다. 지난번 내 생일 저녁을 근사하게 먹고 나서, 그 남은 음식 중에서, 달팽이와 그 갈릭버터를 활용했고, 그때 굽기 위해 만들어놓았던 반죽으로 새로운 바게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의 메인 메뉴였던 홍합은 엊그제 새로 사 온 것이다. 싱싱한 홍합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이 예약을 했고, 늘 그렇듯 밴쿠버 부두에 가서 픽업을 해왔다. 잡자마자 가져오는 홍합이라 신선함이 남다른지라 우리는 모두 신나는 마음으로 주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오늘, 나는 미리 감치 준비를 해서 꼬마 바게트를 구웠다. 미리 해놓았던 반죽이어서 다루기 더 쉬웠고, 결과물은 지난번 생일보다 좋았다. 딸 표현대로, 말하지 않으면 글루텐프리 바게트인지 아무도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다. 물론 고급진 파리의 바게트 같기야 하겠느냐만서도, 파리에서 사 먹었던 글루텐프리 바게트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의견이었으니 이 정도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달팽이 요리도, 홍합요리도 우리 집에서는 그리 새로운 음식이 아니므로 별로 거창하지 않게 준비할 수 있었다. 좋은 점은, 지난번 크리스마스 때 남편이 준비한 산타의 선물, 홍합 전용 냄비이 있다는 것. 그걸로 충분히 그럴듯한 기분을 낼 수 있었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7시에 시작하기로 하고 모든 재료를 미리 준비했다. 남편은 달팽이 전용 용기에 버터와 달팽이를 적절하게 담아서 오븐에 넣었고, 바게트를 썰었다. 나는 홍합을 씻고, 거기에 들어갈 샬롯과 마늘을 다지고, 파슬리를 준비했다. 이왕이면 분위기를 내고 싶다며 남편이 한 30년 전쯤 누나가 만들었다는 식탁보를 가져다가 상 위에 덮었다. 하도 오래되어서 사이즈가 줄어서 식탁보다 살짝 작았지만 별 상관없었다. 이미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나는 홍합 요리의 베이스를 미리 준비하고 있었고, 남편이 식탁을 차렸다. 오븐에서는 달팽이가 지글지글 익고 있었고, 레인지 위에서는 마늘과 샬롯이 버터에 노릇노릇 부드럽게 익고 있었다. 새로 구운 바게트는 어디에 서빙할까 하다가, 지난 크리스마스 때 시누이가 선물한 떡갈나무의 치즈 보드에 얹었다. 예쁘게 담으려 하지 않아도 보드가 멋있어서 그대로 멋있어 보였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그저 신나서 했다. 딸아이가 부엌으로 들어와 상차림을 돕고, 서빙을 거들었다. 남편은 생일 때 남은 스파클링 와인을 가져와서 서빙했고, 우리는 그렇게 건배한 후, 완성된 달팽이를 앞에 놓고, 맛있다고 음음 거리며 먹었다. 달팽이 전용 그릇에 고여있는 버터까지 바게트로 싹 긁어서 다 먹었다. 



그리고 준비된 냄비에 불을 켠 후, 와인을 붓고 홍합을 투하했다. 5분 만에 완성된 홍합요리. 우리는 식욕이 발동하여 두 번째 바게트까지 다 썰어 담고 홍합 그릇을 싹 비웠다. 두 번째 와인도 비우고, 웃고, 떠들고, 장난하고, 이렇게 저녁 먹는데만 두 시간은 족히 쓴 듯하다. 평소에 술 안 하는 딸도, "주말이니까"라고 말하며 잔을 받아 들었고, 우리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사람들처럼 즐겁게 먹고 웃었다.



크리스마스 때 구워서 아직 남아있는 마지막 마카롱까지 털어서, 어제 새로 만든 소르베와 함께 디저트까지 마무리하니, 간단히 애피타이저, 본식, 디저트로 달린 코스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나는 전자라고 믿고 살던 사람인데, 요새는 상당히 후자라고 믿고 있는 듯도 하다. 한때는 요리에 미쳐, 줄리아 차일드의 백과사전 같이 생긴 요리책으로 북클럽을 운영하며 갖은 요리를 다 해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나의 실험정신의 일부였으며, 실제 식사를 위한 음식 만들기는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밥상도 즐거움이 넘치는 곳이 아니었고, 그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고 싶어 했다. 심지어 가능하다면 알약으로 끼니를 대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닥치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대학 교수님이었기에, 어려서부터 집안에 손님치레가 많았고, 약주를 즐기시던 아버지 덕분에 어머니는 각종 안주 상차림에 도사셨다. 그리고 나도 가까이서 거드는 일은 그저 당연한 맏딸의 생활 중 하나였다. 그렇게 보고 배운 가락이 있어서, 뭔가 음식을 하려고 할 때 두려운 일은 없었다.  처음 결혼해서 시댁에서 명절을 치를 때에도 부엌일이 두렵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재미가 없었다. 그냥 해야 하는 일, 나의 일이었을 뿐이다. 아내의 일, 며느리의 일이었다. 


이런 일들이 기쁨으로 이루어지느냐, 의무로 이루어지느냐는 참으로 다른 세상의 일이다. 아이 아주 어렸을 때, 미국에 잠시 살았었는데, 그때 추석 때, 아무런 의무 없이, 단지 송편을 먹고 싶다는 이유로 친한 몇몇 엄마들과 우리 집에서 송편을 빚었다. 송편 좀 빚는 것은 아줌마들에게 사실 일도 아니었다. 그 옆에는 그것을 당연시 여기는 시댁 식구가 없었으니까, 우리는 명절 놀이로 그렇게 송편을 만들었다. 송편 빚기가 스트레스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주부들 모두에게 큰 놀라움이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웃으면서 전 과정을 즐겁게 해냈다. 그리고 맛있는 송편은 덤으로 얻었다.


우리 집에서의 식사는 내가 지난 평생 동안 해왔던 것과 상당히 다른 풍경이다. 일단, 살기 위해서 먹지 않는다. 먹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둔다. 아니 그 이상이다. 만드는 것에도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음식은 혼자 하지 않는다. 양식이 되면 남편이 주도하고, 한식이 되면 내가 주도하지만 우리는 늘 함께 저녁을 준비한다. 한식을 하면 남편이 옆에서 마늘을 다지고, 파를 다듬는다. 남편이 스테이크를 구우면 내가 곁들일 야채를 볶는다. 그냥 이것이 누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하는 일이라는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 둘 중 한 사람이 뭔가 다른 일로 바쁘다면 혼자 준비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상대를 원망하지 않는다. 누구든 여력이 되는 사람이 집안일을 하는 것은 우리 집의 기본 원칙이다. 다만, 아무도 그 원칙을 규정하지 않았고, 그냥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함께 식사를 준비한다. 준비하면서 함께 장난도 치고, 또 진지해지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이다.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나던 시절, 어느 날 함께 저녁을 차리며 갑자기 눈물을 울컥 쏟은 기억이 있다. 이게 함께 사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함께 상을 차리고 함께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영양을 보충하는 것과는 다른, 영혼을 보충하는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 누군가와 삶의 기본적인 부분을 함께 하고 있다는 벅참이 결국 나를 다시 결혼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꼭 홍합이 아니어도 좋다. 꼭 달팽이 요리가 아니면 어떤가? 다만 이들이 나의 가족이고, 우리는 맛있는 저녁 식사를 위해서 함께 준비하고 있으니, 어떤 이들은 우리를 과로 부부라고 불러도, 우리는 기꺼이 이 과정을 반복하며, 재미난 식사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은 우리 집이다. 


이건, 그러니까, 천생연분인 것이다.




* 10분 안에 완성하는 홍합 요리 레시피가 궁금하신 분은 여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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