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치 던지니스 크랩으로 간장게장을!
캐나다, 그중에서 태평양 연안인 비씨주에 산다면 꼭 먹어봐야 하는 두 가지 해산물이 있다. 하나는 큰 새우 스팟프론(Spot prawn)이고, 또 하나는 큰 게안 던지니스 크랩(Dungeness crab)이다. 스팟프론은 지난봄에 먹으면서 포스팅을 했었다.
그리고 지금 여름이 시작되면서 잡히는 것이 바로 이 던지니스 크랩이다. 우리가 새우를 주문했던 회사에서 얼마 전에 이메일이 왔다. 게가 나왔으니 구매하라고. 물론 이 기회를 놓칠 우리 남편이 아니다. 먹고 싶으냐고 묻더니 손 크게 10파운드를 주문했다. 한 4킬로 정도?
온라인으로 결제를 하고, 주말에 픽업하러 갔다. 꽤 먼 곳이었지만, 역시 먹는 것에 목숨 거는 우리 집이니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무게를 달아보니 6마리는 부족하고 7마리는 넘치길래, 추가 요금을 내고 7마리를 구매하였다.
그리고, 살아있는 게를 아이스박스에 담아서, 다른 곳 아무 데도 들르지 않은 채 곧장 집으로 향했다. 이 게를 어떻게 먹을까를 즐거운 고민을 하면서 말이다.
집에 와서 아이스박스를 들춰보니 여전히 씩씩하게 살아있다. 우리가 한국에서 먹던 꽃게는 자그마한데, 얘네들은 큰 접시에 한 마리가 그대로 놓이는 큼직한 사이즈이다.
어떻게 먹을까 의논하다가, 4마리는 삶아먹고, 3마리는 게장을 담그기로 하였다. 손이 가는 번거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간장게장 먹어본 게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까마득하기에 과감히 시도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큰 게로 게장을 담가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삶는 것은 남편이, 게장은 물론 내가 하기로 했다. 우선 삶아먹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쪄 먹으면 더 좋겠지만 그렇게 큰 찜 냄비는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랍스터 삶듯이 그냥 삶아 먹으면 된다. 살아있는 게를 집게발에 당하지 않게 잡으려면, 머리 쪽이 아닌 꽁지 쪽을 잡아 들면 꼬집히지 않고 안전하다. 게가 너무 생생하면 잠시 냉장하거나 짧은 시간 냉동해서 얘네들을 살짝 기절시키면 둔해져서 다루기 만만해진다.
남편은 게를 대충 씻어주고 삶기에 돌입했다. 물을 팔팔 끓인 후, 삼투압이 일어나지 않게 소금을 넣고, 그다음에 게를 머리 쪽부터 넣는다. 물이 끓으면 12분 정도만 삶아준다. 너무 오래 삶으면 퍽퍽하고 맛 없어지므로 딱 그 시간만큼만 삶은 후 건져서 얼음물에 넣는다. 그리고 건져서 손질한다.
남편이 이걸 하는 동안 나는 간장게장용 소스를 만들었다.
특별한 비법은 없다. 맛있을만한 것을 다 넣으면 된다. 흔히들 매실청을 넣지만, 그게 사실 설탕물인지라 무설탕 주의인 나는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과일을 좀 넣어줬다. 사과가 하나 들어갔고, 생강, 마늘, 양파 멸치, 새우 대가리, 파뿌리, 다시마, 통후추, 마른 표고... 그냥 마른 재료랑 냉동실에 있는 것이 대충 들어갔다. 둥굴레나 감초가 들어가면 좋지만, 집에 상비하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여기서 당장 구하기도 쉽지 않으니 생략했다.
간장물의 비율은... 간장 : 물 : 맑은술 = 2 : 3 : 1로 잡았다. 한국 같으면 소주가 들어가겠지만, 여기서는 와인을 사용했다. 간장은 양조간장을 넣는데, 조선간장을 조금 섞어주면 훨씬 맛이 좋다. 이렇게 넣고 한 시간 끓여준 후 바로 건져내면 되니 아주 쉽다. 무슨 국물이든, 아니면 한약이든, 다 끓인 후에 그대로 담가 두면 재료들이 맛과 효능을 다시 흡수하므로 지체하지 말고 바로 건지는 것이 좋다.
그동안 남편의 게는 끓는 물에서 나와서 찬물 담금 목욕을 끝내고, 손질 작업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뚜껑을 들어내고 먹기 좋게 자르고 있다.
이 접시가 디너접시인데 반마리로 이렇게 찬다.
먹기 편하게 도구가 등장하였다. 한국에선 게가 작으니까 그냥 입안에서 쪽쪽 빨아먹었는데, 여기서는 이렇게 가위로 껍데기를 잘라내고 큼직한 살을 성큼 집어 먹으면 된다.
이 이후 사진은 먹느라 바빠서 찍지 못했다. 손에 온통 게 냄새가 나니 어찌 카메라를 잡겠는가? 처음에는 그냥 맛만 볼까 하다가 결국은 둘이서 각각 게 한 마리씩 해치우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간장게장 만들기 돌입. 아까 만들어놓은 간장을 충분히 식혀서 게 위에 부었다. 그리고 냉장실로 직행.
다음날과 그다음 날, 간장물만 따라 내어서 한 번씩 더 끓여서 완전히 식힌 후 부어줬다. 이때 물을 조금 추가해서 끓이는 것이 좋다. 안 그러면 계속 졸아서 점점 짜진다.
그리고 그다음에 곧장 먹으면 되었겠지만, 갑자기 여러 가지 일이 생겨서 금방 먹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익히지 않는 게를 먹는다는 것이 마음 불편한 남편을 위해서 한 번 얼렸다가 먹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는 그렇게 얼려서 많이 사용하는 추세이긴 하다. 결국 게 세 마리는 각각 지퍼백에 포장되어서 냉동실로 이동하였다. 간장물은 냉장실에 보관했는데, 일주일이 되어서 한 번 다시 끓여서 냉장하였고, 드디어 게장을 맛 볼 날이 되었다.
하루 전 날, 게를 다시 냉동실에서 꺼내서 새 통에 담았고, 간장물을 자박하게 부어 냉장실로 옮겨놓았다. 레몬도 새로 썰어서 얹어줬다.
다음날 보니 완전히 녹지 않은 것 같아서, 먹기 30분 전쯤에 냉장실에서 꺼내 두고, 다른 반찬들을 급히 준비했다. 남편이 처음 먹어보는 간장게장인데 입에 맞지 않는다면 먹을 게 없는 밥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한 반찬들이었다. 집에서 딴 깻잎과 가지 잎을 튀김옷 입혀서 튀겨주었고, 남편이 좋아하는 호박무침도 곁들였다. 급히 하느라 프라이팬이 덜 달궈져서 김치전은 너덜너덜! 아이고!
날씨가 좋았으므로 데크에 앉아서 먹기로 했다. 상이 좁지만 어차피 별다른 것이 없으므로 쉽게 상을 차리고 먹기에 돌입했다. 얌전하게 두 손을 모으고 기다리고 있는 게를 보니 어쩐지 좀 미안했지만 이제 시식을 할 시간이었다.
게딱지를 잡아서 뒤집었더니 맛있게 완성된 간장게장의 속살이 드러났다.
먹지 못하는 아가미와 입은 잘라버리고, 몸통은 반으로 잘라서 남편과 하나씩 나눠 가졌다. 한국에서는 암게를 사용해서 알이 꽉 찬 게를 먹지만, 이곳 캐나다에서는 그것이 비윤리적이라 여겨서 수게만 잡도록 허용이 되기 때문에, 게 뱃속의 알은 기대할 수 없다. 사실 그게 말이 되지 않겠는가. 게도 번식을 해야지.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사진이 없다. 두 손에 끈끈한 게장 물을 묻히고 쭉쭉 빨아서 먹었으니 말이다. 남편도 처음 먹어보는 이 맛을 신기해하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비록 알은 없지만, 그래도 게딱지에 밥 비벼 먹는 것은 필수이니 절대 빠질 수 없는 일. 억지로 기념샷 한 장!
그렇게 캐나다에서의 첫 게장 시식을 완성했다. 아마 앞으로도 게 철이 되면 간장 게장을 필수로 하게 될 것 같다. 남편도 맛있게 먹었으니 말이다.
재료:
산 게 또는 냉동게
조선간장 1 + 양조간장 2 + 물
물 (간장: 물 : 맑은술 = 2 : 3 : 1 비율)
소주 또는 청주, 없으면 와인
사과나 배, 4등분
생강 한 엄지
마늘 한 통, 결 반대로 잘라서
양파 1개, 4등분
무 한토막
멸치 한 줌
다시마 2장
통후추
얼린 새우 대가리 (옵션)
마른 표고 (옵션)
둥굴레 (옵션)
감초 (옵션)
레몬, 고추
만들기:
1. 산 게는 꽁무니 쪽으로 집어 들면 안전하게 다룰 수 있다.
2. 게를 칫솔을 이용해서 깨끗하게 씻어준다. 특히 배 부분을 들춰서 안쪽까지 씻는다.
3. 게장 담글 그릇에 게를 넣고, 물을 부은 후, 그 물의 양이 얼마가 되는지 계량한다.
4. 그 분량보다 20% 정도 많도록 계산해서 간장, 물, 술의 비율을 맞춘다.
5. 게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다 한꺼번에 넣고 1시간 정도 끓여준다.
6. 내용물을 체에 밭쳐서 버리고 간장물만 따로 담아 완전히 실온으로 식힌다.
7. 게를 뒤집어서 놓고 간장물을 부어준다. 산 게는 숨을 쉬어서 양념이 속까지 더 잘 들어가는 장점이 있다.
8. 위에 레몬과 고추를 잘라서 얹어줘도 좋다.
9. 하루 지나면 간장물만 따라 내고, 물을 반 컵 정도 넣어서 팔팔 끓여주고 다시 식혀서 붓는다.
10. 하루 지나서 끓여 식히기를 한 번 더 하고, 냉장고에 보관하여 두고 일주일 안에 먹는다.
11. 더 오래 보관하고 싶으면, 미리 게를 따로 지퍼백에 담아서 냉동 보관하고, 간장물도 따로 보관했다가
먹기 전날 냉장실로 내리고, 합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