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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Jul 08. 2021

호박잎 쌈이 덩굴째굴러들어왔다

뽑기 미안했지만, 덕분에 잘 먹었다

화단이나 텃밭에 뭔가의 씨앗을 심고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은 많은 가드너의 마음이다. 넉넉한 곳에 많은 씨를 뿌린 것이 아닌 경우 더더욱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데, 심어놓고 싹이 나지 않으면 참으로 낙담하게 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영어로는 volunteer라고 하는데, 자원봉사자? 아니, 자발적으로 자라는 식물이다. 심지도 않았는데 뭔가 자라는 것! 어? "왜 여기서 토마토가 나왔지?" 아마 씨를 뿌렸다가 발아하지 않은 흙을 모아서 털어 넣었던가?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지만 답을 꼭 얻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계획된 것이 아니다 보면 계속 그 자리에서 자라게 허락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집에도 생각지 못한 볼런티어가 가끔 나오는데, 얼마 전에는, 홀스래디쉬를 심은 곳 옆에서 감자가 나와서 놀라기도 했다. 


홀스래디쉬 나눔 해주신 분의 흙에서 따라왔나 싶어서 여쭤봤는데, 그 댁은 감자를 안 키우신다는 답변이 왔다. 그럼 얘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거지? 우리는 올해 감자를 심었지만, 흙 안에 들어있던 것은 없고, 새로 구한 씨감자를 심은 거여서 예전 흙에 남아있던 것일 수도 없고 말이다. 감자에 싹이 나고, 잎이 나서, 묵찌빠! 


오른쪽 사진은 벌써 한 달 반 전의 일이고, 지금은 둘 다 너무나 무성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안타깝지만 감자는 뽑아버려야 할 것 같다. 아직 감자는 안에 맺히지도 않았겠지만, 홀스래디쉬는 혼자서 크기도 이 화분이 좁으니 객이 물러나는 수밖에...


그리고 또 뜻하지 않은 객이 있으니, 바로 호박이다. 우리가 올해 봄에 새로 텃밭을 만들고 거기에 새 거름흙을 채웠는데, 도대체 어디서 호박이 나오는가 말이다. 새 텃밭에서 호박이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참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도대체 감을 잡지 못했는데, 언젠가부터 아주 걷잡을 수 없이 여기저기서 분주히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 올라오는 호박 새싹들


초반에만 해도 다른 식물들을 정식한 지 얼마 안 되는 때여서 뿌리가 퍼지지 않았기에 꺼내서 좀 옮겨 심어 살려볼까 싶었다. 그런데 조심해서 뽑으려 해도 뿌리가 너무 깊게 있어서 안전하게 뽑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간신히 두세 개 건져내서 화분에 심었는데, 그 이후에도 계속 나오고 있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 하나가 점점 더 커져가더니 원 주인을 제쳐낼 기세로 커졌다.


토마토 밭에서 시작해서 잔디밭을 점령하려 드는 호박


도대체 얘네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고민하다가 무릎을 탁 쳤다! 우리 집은 음식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모두 모아서 퇴비를 만든다. 큼직한 통에 모은 다음 오래 숙성을 시켜서 거름이 되면 그것을 흙에 섞어주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작년에 만든 거름을 이번에 이 텃밭 만들면서 가운데 텃밭에 쏟아부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위에 거름흙을 덮었는데...



그럼 그 안에 호박씨가 있었단 말인가? 맞다! 작년 10월 핼러윈 때, 딸내미가 와서 같이 셋이서 호박 파기를 하느라 호박을 여러 개 팠고, 그 씨앗은 고스란히 퇴비 통으로 들어갔던 것! 그게 썩지 않고 거름통에 들어있다가 환경이 형성되자 싹이 난 것이었다. 호박은 유난히 거름을 밝히는 작물이기는 하다. 기름진 땅에서 잘 자란다. 아무튼 그래서 이것을 좀 뽑아서 옮겨 심어 보려 해도 텃밭 저 밑바닥에 깔려있으니 당기다가 끊어지는 수밖에 없다. 


그게 불쌍하고 마음에 걸려서 계속 미루고 미루고 있었더니 정말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저기가 원래 토마토 밭인데, 이러다가는 토마토 농사를 망칠 기세이기에 오늘 마음먹고 뽑아냈다. 하지만 이 큼직한 잎사귀가 잔뜩 달린 것을 거름통에 던져 넣기는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왕 뽑은 김에 호박잎 쌈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올라오는 작은 싹들까지 싹 다 뽑았다. 열개가 넘었다. 그리고 역시나 뿌리가 깊어서 밑에서 나오면서 줄기가 쑥 뽑혔다. 


남편의 전화기 렌즈에 뭐가 묻었던 듯. 뜻하지 않게 뽀샤시 사진. 왼손엔 새싹, 오른손엔 큰 호박 덩굴


부엌으로 들고 올라오니, 뭘 할 거냐고 남편이 물었다. "이걸로 점심 먹자." 했더니 남편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씩 웃고는 밥부터 안쳤다. 그리고 쌀뜨물을 넣어서 육수를 내기 시작했다. 육수에는 전에 먹은 새우 스팟프론의 머리와, 디포리, 파 꽁다리, 다시마 등등을 넣었다. 재료 손질할 때 미리 육수를 내면 맛있는 국물을 만들기 쉽다. 육수 재료는 늘 냉동실에 쟁여놓는다.



호박은 씻어서 줄기와 잎으로 나눴다. 흔히들 줄기는 버리는데, 사실 요게 강된장에는 별미이다. 쫑쫑 썰어서 강된장 끓일 때 넣으면, 모자라는 충전물을 넉넉히 채울 수 있다.


아주 옛날 내가 초보 주부이던 시절에, 왜 나는 강된장을 끓이고 싶은데, 멀건 국이 되거나 아니면 된장이 지나쳐 짜게 되는가 고민을 했었는데, 강된장에는 내용물이 듬뿍 들어가야 바특하면서도 짜지 않게 끓일 수 있다는 것을 어느 날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사용했던 것이 바로 호박잎 줄거리였다. 그때의 추억을 살려서 호박잎을 쪄주마!


길쭉한 호박 줄기를 모두 종종 썰어주는 중


그밖에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이것저것 뒤져서 강된장을 끓였다. 호박이 하나 있으면 좋겠으나 없었다. 그런데 엊그제 호박볶음 해 먹고 남은 것이 있어서 살짝 씻어서 종종 썰어 넣었다. 어제저녁에 굽고 남은 햄버거 패티도 다져서 넣고, 양파는 기본, 고추도 송송, 양송이도 있길래 두어 개 넣었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부추도 한 줌 잘라다가 넣었다. 두부도 있으면 좋겠지만 없으니 그냥 넘어가는 걸로!



육수 낸 것에 재료를 모두 넣고 바글바글 충분히 끓이다가 된장은 막판에 푼다. 어떤 분들은 된장을 처음부터 넣고 끓이기도 하는데, 된장은 유산균이 있는 발효식품이니 나는 오래 끓이지 않는 쪽을 선호한다.



밥의 취사 버튼이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나서 호박잎을 찜기에 얹었다. 찜기에 잎을 담을 때에는 얌전히 차곡차곡 쌓지 말고 성큼성큼 넣어야 한다. 빼곡하게 쌓아놓으면 뜨거운 김이 제대로 퍼지지 못해서, 일부는 너무 익고 일부는 설익기 쉽다. 통풍이 되게 해주어야 한다. 



찜통의 냄비에 물을 붓고, 끓기 시작하면 호박잎이 들은 찜기를 얹어서  7분~10분 정도 쪄준다. 다 쪄지면 얼른 뚜껑을 열어서 온기를 빼준다. 너무 익으면 완전히 흐물거리며 찢어지니 과하게 익히지 않도록 주의한다. 이제 이 잎들을 꺼내서 접시에 얌전히 펴준다. 아래쪽에 있던 잎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면, 찜기 가장자리에 슬쩍 걸쳐두어 수분을 약간 빼줘도 좋다. 


자, 여기까지 했다면, 밥에다가 호박잎, 강된장만 놓고 먹으며 부러울 것이 없다. 그러나 남편은 이런 식사에 익숙하지 않으니 먹기 좋게 쌈을 미리 해주었다. 쌈을 쌀 때, 밥 위에 강된장을 얹어서 쌌는데, 그러느라 손이 바빠서 그 이후 과정샷은 없다.



싸면서 보니, 겉면이 바깥으로 가는 것보다는 안쪽이 바깥으로 나오게 싸야 잎맥이 선명하게 보여서 더 예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너무나 조촐한 점심식사가 마련되었다. 김치를 놓아야 하겠지만, 이 메뉴에는 김치가 없어도 되는 것이 우리 식구인지라 그냥 이렇게 간단히 놓고 먹었다. 



아무래도 강된장은 좀 넉넉히 있는 것이 좋아서 추가로 더 넣을 수 있도록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편리한 앞접시도 나중에 추가!


이렇게 보면 호박은 참 버릴 게 없는 작물이다. 얼마 전 무덥던 날에는 김치 넣어 시원한 국수를 만들면서, 호박꽃 핀 것으로 튀김을 만들어 곁들였으니 꽃, 잎, 줄기, 열매를 다 먹는 기특한 작물이라 하겠다. 호박꽃 튀김 레시피는 예전 것을 소환한다 


그래서 오늘은, 이 게시물을 텃밭 매거진에 넣을 것인지, 아니면 레시피 매거진에 넣을 것인지 고민하다가, 그냥 이쪽으로 넣었으니, 레시피 요약정리를 하면서 글을 맺어야겠다. 





호박잎 쌈


재료:

호박잎, 파, 마늘, 양파, 호박, 호박 잎줄기, 두부, 쇠고기(또는 돼지고기 또는 골뱅이), 버섯, 다시 멸치 등, 된장


만들기:

1. 호박잎과 줄기를 분리하여 깨끗이 씻는다.

2. 작은 냄비에 쌀뜨물을 붓고, 멸치, 다시마 등으로 육수를 낸다.

3. 육수가 충분히 우러났으면 건져내고 강된장 재료를 넣어 끓인다.

    호박잎 줄기는 종종 썰고, 파, 마늘 양파 모두 다려서 넣는다. 호박도 종종, 버섯도 종종 썰고

    두부도 작게 깍둑썰기 한다.

    고기도 다져서 넣는데, 꼭 고기가 아니어도 뭔가 진한 맛을 낼 수 있는 해산물이 들어가면 좋다

4. 충분히 바글바글 끓인 후, 간을 보면서 된장을 조금씩 풀어 넣는다. 완성.

5. 호박잎은 찜기에 얼기설기 쌓은 후, 김 오른 솥 위에 얹어서 8분~10분간 져준다.

    완성되면 바로 뚜껑 열고 불에서 내려 식히고, 얌전히 펴서 된장과 함께 서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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