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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y 30. 2022

채소 꽃 필 무렵

메밀꽃도 꽃이다

나이가 들면 꽃을 좋아하게 된다던가? 아니 꽃을 좋아하기 시작하면 나이가 든 거라고 하더라. 나도 그렇다. 젊을 때에는 꽃이면 그저 꽃이고, 당연히 예쁜 거 아닌가 하는 정도의 마음만 있었는데, 근래에 들어서 부쩍 꽃에 관심이 많아졌다. 손만 대면 선인장까지 죽이는 마이너스의 손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웬만한 것들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심지어 금손이라는 소리까지 종종 듣는 것을 보면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꽃은 때론 봄의 상징이기도 하고, 미의 상징이기도 하고, 기쁨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분류되는 꽃들은 주로 아주 화려한 꽃들이다. 꽃 그 자체로 빛을 발하는 그런 꽃들 말이다.


작약이라던가 튤립이라던가, 수선화, 장미 같은 탐스러운 꽃들은 많은 이들의 핸드폰 프로필 사진에 자리 잡지만, 채소의 꽃에 관심을 갖는 일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채소의 원래 몫은, 잎을 먹거나 열매를 먹기 위함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채소 꽃도 매력이 있어야 벌과 나비를 모은다. 그래서 비록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아도, 때론 소박하게, 또 때로는 상당히 화려하게 자신의 빛을 발한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채소 꽃은 이런 것들이다. 무꽃, 배추꽃, 상추 꽃... 이런 꽃들은 잔잔하면서도 특별하지 않은 소박함으로 아름답다. 모두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구별도 어렵다.


열무 꽃
무꽃
무꽃
열무 꽃과 루꼴라 꽃
청갓 꽃
청갓 꽃


이런 채소들은 꽃을 올리기 위해서 꽃대를 올리는데, 사람들은 이 꽃을 그리 반가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꽃들이 달리기 시작하면, 보드라웠던 잎이 억세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꽃대가 올라오는 것 같으면 미리 꺾어서 꽃이 피는 시기를 늦추려고 하기도 한다.


복초이. 꽃이 올라오면서 잎들이 작아지고 질겨진다.


하지만 꽃이 올라와도 계속 즐기는 작물도 있다. 대표적으로 쑥갓이 그런데, 비록 살짝 질겨져도 어차피 찌개 같은 곳에 넣으면 큰 상관이 없으며, 결정적으로 채소 꽃이라 하기엔 너무 예쁘다. 노란색과 흰색이 함께 어우러져, 데이지를 방불케 한다. 사실 데이지와 한 가족이란다. 그래서 나는 쑥갓을 하나는 꽃밭에 심어두기도 한다. 꽃을 즐기며 종종 잎을 따 먹기 위해서 말이다.


벌들도 좋아하는 쑥갓 꽃


한 편, 깜짝 놀랄 만큼 선명한 꽃을 자랑하는 채소도 있다. 이건 방아 꽃이다. 독특한 향을 내는 방아 잎은 부침개로도 많이 먹는데, 샐러드에 잎을 몇 장 섞으면 풍미를 돋워준다.


보라색이 선명한 방아 꽃


자그마하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예쁜 꽃들이 있다. 이것은 고수 꽃인데, 멀리서 보면 그저 자잘한 꽃이라 생각되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화관을 쓴 신부의 면사포처럼 예쁘다. 


고수 꽃


탐스럽게 예뻐서 눈을 끄는 또 다른 꽃이 있다면, 당근 꽃이다. 사실 이 당근 종류의 풀들이 다 꽃이 이렇게 예쁘고 화려하다. 레이스처럼 희게 펼쳐 치는 꽃들은, 가장 만발한 순간에는 동그랗게 최대한 큰 모습으로 뽐을 낸다.

당근 꽃


화단을 정리하면서 뽑은 당근 꽃이 아까워서 꽃병에 꽂아두고 며칠을 즐긴 적도 있었다. 점점 피어서 둥그렇게 솟아오르는 모습에 감탄을 했다.


활짝 핀 당근 꽃


별로 자주 먹지 않아도 장식용으로 키우는 채소도 있다. 바로 돌나물이다. 통통한 줄기도 귀엽지만, 노랗게 꽃이 피면 더 예쁘다. 아무 데나 꺾어서 꽂아놓아도 바로 뿌리를 내리는 돌나물은, 돌 틈에 꽂아두면 예쁘게 늘어지면서 꽃밭을 화사하게 만든다. 아마 그래서 돌나물이라는 이름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5월 말에서 6월쯤 피는 돌나물 꽃


감자도 꽃은 자그마하면서도 가운데 심이 독특하다. 역시 환영받지 못하는 꽃이다. 영양분이 꽃으로 몰리면 감자가 튼실하게 자라지 않기 때문에, 꽃이 피면 잘라버려야 한다. 

 


하지만 꽃이 소중한 채소도 있다. 바로, 결실이 필요한 채소들이다. 납작 껍질콩의 흰 꽃은 청초하게 피었다가 콩을 선물해준다.


스냅피(snap pea) 꽃


그리고 딜(dill)의 꽃은 그대로 피클 만들 때 들어간다. 피클의 종류 중에 딜 피클이라고 있는데, 그때 잎과 꽃을 넣는다. 딱 봄철에 오이 피클 담글 때만 나오기 때문에 시기를 잘 잡아야 한다.


딜 꽃


그러면 함께 피클로 들어가는 오이는? 이렇게 앙증맞게 꽃이 피면서 아래쪽에 꼬마 오이가 준비를 미리 한다. 모든 오이꽃에 오이가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수꽃은 오이가 없고, 암꽃만 오이가 있다. 그래서 꽃이 지고 나면 이 꼬마 오이가 자라서 우리에게 오이를 선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이 주는 선물 아니겠는가!



나는 내가 보라색을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꽃에서는 보라색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 같다. 꽃이 피면 어쩔 줄 모르며 좋아하는 것 중에 이 서양 부추가 있다. 작고 귀여운 꽃이 가지런히 올라오면, 나는 수시로 드나들면 꽃을 즐긴다. 이 꽃을 따서 샐러드에 얹으면 부추의 매콤한 향이 퍼진다.


서양 부추(chive) 꽃


작년에 사진을 좀 더 찍어둘걸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는 곤드레 꽃은 이렇게 화려하다. 엉겅퀴 과의 식물이라 정말 꽃을 보기 위해서 심어도 될 만큼 예쁘고 독특하다. 이 꽃이 마르면 이 긴 줄기가 낙하산이 되어 씨앗들을 새로운 영토로 이끌 것이다.



마지막 사진은, 종처럼 매달리는 더덕 꽃이 당첨되었다. 쌉싸름한 향을 풍기는 더덕꽃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사진을 찍기 어려웠는데, 다행히 한 송이가 받침에 걸쳐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꽃이 맺히면 뿌리가 작아진다지만, 나는 그냥 꽃을 먼저 즐기기로 했다.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는 걸로!


풍선처럼 맺히는 더덕 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연이라 생각된다. 또한 가장 무서운 것도 자연이겠지. 어느 꽃 하나 허투루 피는 꽃이 없는 자연... 이렇게 하루하루 자연에 감사하며 겸허하게 노후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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