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만들고 맛있게 먹다!
얼마 전에 농장에 가서 비트를 9 뿌리나 사 왔다. 비트 뿌리만 사 온 것이 아니라 농부 아저씨가 아예 통째로 뽑아줬기 때문에 잎사귀와 줄기 부분이 비트 뿌리보다도 많았다. 노바스코샤에서 농사도 지으며 자란 남편은 신선한 비트 그린(그는 그렇게 부른다)을 버터에 볶아서 먹으면 너무나 맛있다며 추억의 맛이라고 즐거워했지만,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양은 한정되어있고, 그렇다고 냉장고에서 한 없이 기다리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비트 줄기가 다소 질기기 때문에 따로 먼저 볶다가 그린 부분을 볶는다. 그렇기 때문에 손질할 때 비트 뿌리, 줄기, 그린을 각각 따로 다룬다.
그러다가 문득, "아! 이걸로 김치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양새를 다시 보니 알타리 김치를 만들어도 될 거 같은 비주얼! 그래서 남편이 저녁 준비하는데 옆에서 나는 갑자기 김치를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남편은 옆에서 비트를 손질해주었다.
잎은 깨끗하게 씻었고, 줄기도 따로 깨끗하게 씻었다. 그리고 둘 다 먹기 좋은 사이즈로 성큼성큼 잘랐다. 나는 야채 자를 때 주로 세라믹 칼을 이용하는데, 자른 단면의 산화가 덜 하다는 장점이 있다. 비트 뿌리도 안 넣으면 서운할 거 같아서 한 뿌리만 껍질 벗겨서 길쭉하게 썰어서 첨가했다.
그리고 얘네들을 소금물에 절였다. 찍어 먹어봐서 짜다 싶을 만큼 소금을 넣었는데, 절여지는 모양새를 봐서 소금을 더 넣을 수 있다. 대략 물 1리터 당 소금 반 컵 정도로 잡으면 된다. (분량에 따라 3~4배 만들면 됨) 시간은 대략 40분~1시간 절이는데, 짜진 정도에 따라서 좀 달라질 수 있다. 줄기나 뿌리를 구부려보아서 살짝 휘어지며 낭창한 느낌이 들면 면 준비된 것이다.
사실 김치 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절이기라고도 할 수 있다. 잘 절여지지 않으면 나중에 맛이 없거나 쉽게 상하기도 한다. 배추김치인 경우 그게 제일 심하지만, 다른 종류의 김치도 이 부분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야채가 생생하면 아직 안 된 거라는 거..
비트 그린이 절여지는 동안 양념을 만들었다. 우선 찹쌀풀을 쒔다. 귀찮아서 잘 안 하는데, 이번엔 좀 제대로 해 보고 싶어서... 그리고 저탄고지도 반쯤 포기상태이기 때문에 발효균에 먹이를 주자고 생각했다.
찹쌀풀은 찬물 1컵에 찹쌀가루를 1큰술 넣어서 거품기로 잘 풀어주고, 그대로 불에 올려서 저으면서 끓여준다. 거품이 부글부글 나고, 팔딱거리는데, 바닥을 긁었을 때 바닥에 선이 잠시 남아있으면 된 것이다. 완성되면 서늘한 곳에서 식혀준다.
양념 재료는 그냥 냉장고에 있는 거 이거 저거 꺼내서 가능한 것들만 가지고 성큼성큼 만들었다. 사실 나는 계량하고 그러는 거 잘 못한다. 그게 별로 의미가 없는 게, 같은 분량으로 만들어도 그 재료의 성질에 따라서 매번 다른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들면서 간을 보고... 그런 식으로 진행한다.
마늘 작은 거 1통, 쪽파 2 뿌리, 양파 반쪽, 그리고 집에 풋사과가 있길래 원래 단거 잘 안 넣지만, 비트가 워낙 써서 조금 갈아서 넣었다. 생강은 정말 조금 남아있었는데, 그래도 김치에 생강은 기본이므로 다져서 넣고, 우리 식구는 맵게 안 먹으니까 고춧가루 안 매운 것으로 1컵 (맵게 드시는 분들은 더 넣으셔도 좋음), 그리고 새우젓 듬뿍 1큰술, 멸치 액젓도 2큰술 넣어서 버무렸다.
김치 양념은 짠 게 포인트! 짜야한다. 부지런히 양념을 해서 고춧가루가 수분을 먹도록 해주면 좋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찹쌀풀이 완전히 식으면 넣어서 함께 섞어준다.
자, 이제 잘 절여진 비트 그린과 비트를 채반에 건져준다. 흐르는 물에 살짝 헹궈줘도 되고, 그대로 써도 된다.
물기를 뺀 후, 버물버물 해주면 완성. 이때 간을 보고, 만일 간이 딱 맞다 싶으면 멸치액젓을 한 숟가락 더 넣어준다. 김치는 짜게 만들어야 익을 때 상하지 않고, 익은 후에 간이 딱 맞는다.
완성되면 김치통에 담고, 뚜껑을 꾹 눌러 닫지 말고, 그냥 얹어서 부엌 한쪽에 둔다. 날씨에 따라서 하루 이틀 실온에서 익히고, 살짝 익었다 싶을 때 냉장고로 넣으면 된다. 뚜껑을 꽉 닫았을 경우, 발효되면서 뚜껑이 열려 날아가는 수도 있다!
이틀 후 냉장고 넣기 전에 뚜껑을 열어보고 먹어 보니 제법 맛이 들었다. 이것은 고들빼기김치이던가! 쌉쌀하면서 흙 맛 나는 김치! 그리고 뿌리 부분은 굉장히 아작아작 했다. 단단하고 경쾌하게 씹히는 것이 매력적인 김치였다.
비트 맛이 강하게 나는 김치라니 남편은 맛을 보고 상당히 놀라워했지만, 어제 한식으로 차린 저녁식사에서 맛있게 잘 먹었다. 남편에겐 전복보다 비트김치가 더 맛있는 반찬이었다.
한국에서는 비트 그린을 구하기 어렵겠지만, 같은 양념으로 알타리 김치를 해도 된다. 열무김치도 가능하지만, 열무는 좀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풋내가 나기 때문에 만들기 쉬운 김치는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나박김치가 쉽다. 다음번에는 실패 확률 0%인 나박김치를 소개해야겠다.
비트 손질:
줄기와 잎, 뿌리를 분리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준다.
물 1리터+소금 반 컵 비율로 해서 절임물을 만들고, 잠길만큼 담가준다.
대략 한 시간 안팎으로 절이는데, 재료가 대충 휘어지면 준비 완료.
헹궈서 건져준다.
찹쌀풀 : 찬물 1컵 +찹쌀가루 1큰술 -
저으면서 풀을 쑨다. 바닥에 긁은 흔적이 날 때까지 끓인다.
양념재료:
모두 한데 섞어준 후, 마지막으로 식은 찹쌀풀을 섞어준다.
재료는 취향에 따라 가감할 수 있다.
마늘 작은 거 1통 - 으깨 다질 것
쪽파 2 뿌리 - 잘게 다질 것
양파 반쪽 - 잘게 다질 것
사과 반쪽 - 강판에 갈아준다
생강 엄지 한 마디 - 으깨 다질 것
고춧가루 1컵
새우젓 듬뿍 1큰술
멸치액젓 2큰술
건져서 물을 뺀 비트 그린 (또는 알타리)에 양념을 고루 비벼서
김치통에 담고, 뚜껑 살짝 얹어서 하루나 이틀(날씨 봐가며) 익혀서 냉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