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농사에 풍성한 먹거리
2년 만에 시누님 댁에 다녀온 것은 좋았는데, 텃밭을 두 주일이나 비우는 것은 마음이 영 불안했다. 물론, 좋은 이웃이 있어서 물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 외에도 원래 손이 많이 가는 것이 텃밭인지라 뭔가 두고 가는 사람처럼 마음이 아련했다.
막 피려고 하는 양귀비 꽃망울도 아쉬웠고, 토마토 지지대 설치하자마자 떠나니, 그 뒷감당도 걱정되었다. 직장 다니는 이웃집 여인이 애들 셋 키우느라 바쁜데 우리 마당까지 관리해주는 것도 미안하기도 했다. 물론, 그 집이 한 달간 자기네 나라 다녀올 때 우리도 물을 주긴 했지만, 나는 직장에 다니지는 않으니까.
다행히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에 비가 몇 번 왔고, 그녀는 그 사이에 우리 마당을 즐겼다고 말했다. 그 심정도 안다. 내 마당을 가꾸는 사람들은 남의 마당도 좋아한다는 것을. 무엇이든 열려서 익으면 따 먹으라고 했는데, 콩을 땄다는 인증샷과, 내가 궁금해하던 양귀비 사진까지 전송해줬다.
집에 와보니, 토마토는 이미 지지대 꼭대기를 찌를 기세로 자랐고, 방울토마토는 한 두 개씩 익기 시작하고 있었다. 껍질콩은 너무 자라 질겨서 까서 먹어야 할 상황이었다. 급하게 던져놓고 간 꼬마 양파 샬롯은 싹이 쭉쭉 올라와서 제법 자라 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놀라운 것이 오이였다.
떠날 때에는 상태가 그리 씩씩하지 않아서, 올해 오이 농사는 별로 기대를 안 했는데, 곁순까지 무성하게 자라고, 유인줄을 제대로 못 타서 막 엉켜있었다. 그리고 오이가 달려있었다. 노각오이는 심지어 누런색을 띄기 시작했다니!
올해는 오이 모종도 전부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마음이 더 가기는 했다. 한국 백다다기 오이 다섯 그루와, 노각오이 한그루, 그리고 거킨스(gherkins) 품종의 피클오이가 다섯 그루였다.
오이 앞에 심은 옥수수는 제법 키가 자라서 오이가 그리 빛을 보지도 못했을 텐데, 오이는 정말 남부럽지 않게 자라 있었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물이 넉넉하지 않았겠지만, 아직 오이가 크기 시작할 무렵이 아니어서 물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으리라. 아니, 오히려 물이 적어서 앞쪽의 피클용 오이는 마디간 간격이 짧아서 더 좋았다.
내가 농사 전문가는 아니지만, 뭔가를 키울 때에는 공부 먼저 하는 타입이다 보니, 나름 오이의 성질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간단히 오이 키우기에 관해서 정리를 해보자면 이렇다.
오이는 양지바른 곳에서 키우는 것이 좋지만, 해가 너무 뜨거우면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리고 물을 많이 줘야 한다. 오이는 물로 키우는 셈이다. 물이 모자라면 오이가 잘 자라지 않거니와, 결정적으로 쓴맛이 난다.
어릴 때 엄마가 늘 하시던 아재 개그가 있었다. "엄마, 가위 어딨어요? (발음은 어디써요라고 난다)" 이런 식으로 물으면 늘, "가뭄 끝에 오이 꼭지가 쓰지, 쓰긴 뭐가 어디 써?" 제 자리에 안 두고 찾는다고 핀잔을 주시는 말이었는데, 그게 뭔 소린지 몰라 늘 어리둥절하곤 했다. 그렇다. 가뭄이 들면 오이 꼭지가 쓰다는 말이다. 그래서 달콤한 오이를 만들려면 물이 넉넉해야 한다.
그렇다고 잎사귀에 막 물이 튀고 그러면 또 싫다. 잎에 흰 곰팡이 같은 게 피는 흰가루병이나, 누렇게 변하는 노균병이 잘 걸리기 때문에, 통풍이 잘 되게 하고, 잎에 물이 튀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좋다.
오이 키우는 사람들이, 흰가루병 걸려서 키우다 포기했다는 경우가 많은데, 오이 키우면서 중요한 팁은, 바로 잎사귀 제거이다. 오이는 대부분, 잎 하나에 열매 하나가 달리는데, 열매 옆의 잎사귀는 광합성을 해서 짝꿍 열매를 먹여 살린다. 즉, 잎이 죽으면 짝꿍 열매도 자라지 못하고 말라죽더라는 것.
그 말은, 열매를 따고 나면 그 짝꿍 잎은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오이는 밑에서부터 커지니까, 아래쪽의 오이를 따면서 반드시 그 잎을 함께 잘라서 버려줘야 한다. 안 그러면 짝 잃은 잎은 금방 병에 노출된다. 흰가루병이나 노균병에 걸리기 쉽다는 말이다. 특히 흙에서 가까우니 더욱 그렇다.
즉, 오이를 계속 키우다 보면, 아래쪽은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는 게 정상이다. 그리고 오이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 올라간다. 그러면 지지대는 얼마나 높게 만들어줘야 할까. 물론 높으면 좋겠지만, 너무 높으면 어차피 따는 것도 힘들다. 그러니 손이 닿는 높이로 하면 된다.
그리고 아래쪽이 비게 되면, 오이 줄기를 밑으로 내려주면서 키운다. 더 편리한 방법은, 텃밭 모임 방장님한테 배운 것인데, 오이 유인줄을 한 줄로 할 것이 아니라, 길게 해서 도르래처럼 둥글게 돌려주는 방법이다. 그러면 거기에 매달린 오이 줄기에서 오이를 따먹고 나면, 줄을 돌려서 필요 없는 부분을 아래로 내려준다. 그러면 오이 달린 부분들만 줄에 매달려있게 된다. 오이는 한 없이 위로 위로 올라가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허공에 팔을 휘두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이는 쑥쑥 자란다. 계속 주렁주렁 열린다. 이건 사실 내가 능력 있어서 되는 일은 아니다. 농사는 인간의 뜻이 아니다. 사람들이 물론, 씨를 뿌리고 노력을 하지만, 농사 성패의 열쇠는 자연이 가지고 있다. 올해는 작년보다 오이가 풍성하다. 반면 고추는 영 부진하다.
처음에 텃밭 농사를 할 때에는 욕심이 들어서, 더 많이 더 잘 수확하고자 애를 썼다. 그래서 예년 같으면 고추 농사가 잘 안 되어서 막 애가 탈 텐데, 이제는 그런 마음이 없다.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수확의 양에 초연해졌다는 말이다. 많으면 많은 대로 좋고, 적으면 적은 대로 감사한다. 그것이 자연의 뜻인 것을 어쩌겠는가!
이렇게 따는 오이로는 우리는 무엇을 할까? 그건 여기 링크에서 확인하시길
1. 양지 바르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심는다.
2. 오이가 자랄 때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3. 다 자란 오이를 딸 때, 그 옆의 잎도 함께 따준다.
4. 잎이 없는 줄기는 아래쪽으로 내려주고, 오이가 달긴 줄기가 유인줄에 제대로 매달려 자라게 해 준다.
5. 오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빨리 따줘야 다른 오이가 제대로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