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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ug 16. 2022

고추나무가 어떻게 되었나요?

겨울을 넘긴 고추가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2년 전, 고추가 일년생인 줄 알고 다 뽑아버린 후에 뒤늦게 다년생임을 알게 되었다. 어찌나 아깝던지! 그래서 작년에는 겨울나기를 시도하였다.


열대성 작물인 고추는 추위에 약한데, 그래도 온실 안에 두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직접 서리를 맞지 않을 테고, 바람도 맞지 않을 테니 막연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겨울에 이상기온 한파가 몰아닥쳐서, 온실 안에 보관했던 고추들이 모두 얼어 죽었다.


이때 목숨을 보존한 딱 한그루는 바로, 집안으로 들여온 꽈리고추였다. 혹시나 싶어서, 잎 다 떼고, 벌레 안 따라들어오게 흙도 새로 바꿔서 집안으로 들여온 앙상한 고추는, 따뜻한 실내에서 잎을 새로 내고 꽃을 피우더니 심지어 고추까지 몇 개 생산해내는 기적을 보였다.



많은 독자님들의 관심사는, 그래서 그 고추가 정말 살아남았을까 하는 것이리라.


과정은 쉽지 않았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 때문에, 고추는 밖으로 나갈 시기를 많이 놓쳤다. 영양가 없는 흙에서 햇빛도 제대로 못 본채 너무 긴 시간을 보냈던지라, 나갈 준비가 되었을 때는 병색이 완연했다. 뿌리 파리가 꼬이기도 하였고, 잎은 탈색된 모양으로 희망이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자연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지쳐있는 고추를 일단 큼직한 화분으로 옮겼다. 뿌리 파리가 있는 것 같은 흙도 버리고 완전히 새 흙으로 갈아주었다. 초봄에 집안에서 달린 고추 몇 개도 따고, 낡아서 지쳐있는 잎들을 과감히 제거하였다. 원래는 Y 모양 위쪽을 살려야 하는데, 거기는 정말 건질 잎이 하나도 없었기에, 광합성을 위해서 아래쪽에 괜찮아 보이는 잎들만 조금 남겨뒀다.


야외로 갓 나온 고추(왼쪽), 분갈이 및 대략의 잎 정리를 마친 고추(오른쪽)


식물은 동물과 많이 다르다. 아프다면, 아픈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 일단 제일 중요하다. 나무가 반쯤 썩은 것 같다면, 과감히 반을 잘라내서 살리기도 한다. 사실 지난겨울 동안 작은 관엽식물이 거의 죽었었는데, 죽은 가지를 반복적으로 잘라냈더니 한쪽에서 새 잎이 나기 시작했고, 그 살아남은 반쪽만 남기고 나머지를 제거해서 다시 심었더니 지금은 너무 예쁘게 자라고 있다.


죽거나 아픈 잎, 가지를 그대로 두면, 그걸 살리겠다고 나무는 기를 쓰며 그쪽으로 영양을 보낸다. 그러나 이미 시들어버린 잎은 되살아나지 못한다. 오랜 병치레에 가정 살림이 파탄 나는 것이다. 따라서 희망이 없는 부분은 과감히 잘라내고, 새로 살아나는 부분을 북돋워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싹 정리한 때가 5월 말일이었으니, 그 이후에 남편이 아파서 입원을 했었고, 나는 고추를 신경 쓸 새가 없었다. 복잡한 시간이 가고 6월 말쯤에는 잎이 나고 있는 모습을 보았으나 사진으로 남기지는 못했다. 그리고 다시 동부 시누님 댁으로 두 주일을 다녀왔다.


그렇게 7월 중순이 되어서 집으로 다시 돌아온 우리는 숲이 되어버린 텃밭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의 고추나무는 초록색으로 살아나서 하얀 꽃을 함박 뒤집어쓰고는 예쁘게 웃고 있었다. 아래쪽에는 조그만 고추들을 대롱대롱 달고서 말이다.


일부러 꽃이 잘 보이게 검은 배경 앞에 세워서 사진 찍음


한 그루의 나무처럼 예뻐서 보고 또 보게 되는 고추나무였다. 사실 텃밭으로 옮겨 심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모종으로 심는 것들과 함께 두고 싶지 않아서 화분에 하나만 따로 심은 것이었다. 올해 고추 농사가 별로라고 내가 울상을 짓는 이유는, 변덕스러웠던 봄 날씨 때문에 올해 텃밭의 고추는 별로 크지도 않았고 그러니 열매도 별로 잘 안 달렸다. 병이 든 것인가 하는 걱정도 들었으니, 함께 심지 않은 것이 마음 편한 일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다시 날짜가 가고, 고추나무는 점점 더 무겁게 결실을 매달아 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데크에 앉아서 점심을 먹다가 바라보니, 너무 많아서, 따주지 않으면 위쪽의 꽃이 열매를 맺지 못하겠다 싶었다.


위쪽은 꽃들, 아래쪽은 결실이 하나 가득인 고추나무


심지어 흙에 닿는 고추들도 있었으니 더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서, 서둘러 첫 수확을 했다.

한 그루에서 한 움큼을 땄다


우리는 이 꽈리고추를 프라이팬에 기름 살짝 두르고 볶아 먹기를 좋아하는데, 이 정도면 둘이 먹기 딱 좋은 분량이었다. 사실 고추 수확도 좋지만, 겨울을 난 고추나무가 살아있다는 게 나는 더 좋다.


사람도, 동물도 함께 한 세월이 늘어가면 정이 들듯, 식물도 그렇다. 물론, 그런 목적으로 키우는 식물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한 해 스쳐 지나가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런 고추나무도 해를 거듭하며 마치 애완용 동물 키우듯이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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