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찌개만큼 쉽게 끓여보자
지난 추석 때 갑자기 시애틀에 딸 보러 내려가느라 냉장고에 곤란한 일들이 몇 가지 생겼는데, 그중 하나가 연어였다. 주말에 먹으려고 냉동실에서 내려놓았던 연어를 먹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해동한 것을 다시 냉동할 수도 없는 일... 그래서 가기 전에 급하게 연어를 구웠다. 그렇게 하면 다시 냉동실로 갈 수 있다.
그리고 여행 다녀와서 며칠 뒤, 저녁 귀찮은데 그 연어나 먹자... 그러고 꺼내서 세 토막 중 두 토막을 데워서 저녁을 준비했는데! 이것이 영 맛이 없는 거다. 생선은 원래 구워서 바로 먹어야 제맛이고, 너무 익으면 육즙이 빠져서 맛이 없는 법이거늘, 구워 놓은 것을 다시 데웠더니 완전히 퍽퍽해져서 가슴을 치며 먹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저녁을 준비했던 남편은 날더러 "꼭 다 안 먹어도 돼." 그러면서 자기부터 남기는 솔선수범을 보였고, 나도 야채 위주로 먹고 막판에는 좀 남기고 말았다. 그래서 데우지 않은 나머지 한 토막과 우리가 먹다 남긴 반토막 정도가 냉장고를 다시 차지하게 되었다. 이걸 어떻게 해서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마요네즈에 버무려서 샐러드를 해 먹을까? 그렇게 해서 도시락에 가져갈까? 그런 생각을 하던 남편이, 차라리 수프를 끓이는 게 낫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연어 차우더를 해 먹자
지난번 시애틀에서 맛있게 먹었던 각종 차우더들 중에서 클램 차우더뿐만 아니라 연어 차우더도 있었고, 할리벗이 들어간 차우더도 있었고, 훈제연어 차우더도 있었는데 다 맛있었다. 그래서 남편은 우리도 시애틀 식으로 해보자며 의욕을 불태우고 요리에 돌입했다. 나는 밀린 브런치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이 요리하는 동안 시애틀 사진 정리하고 글 쓰기 바빴다. 즉, 과정 샷을 하나도 찍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차우더(chowder)라는 음식은 수프 종류인데, 감자가 들어가서 다소 걸쭉하고, 크림이 들어가서 리치한 맛이 나며, 일반적으로 해산물로 많이 만들지만 베지테리안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맑은 수프가 아니어서 뜨거움이 오래가기 때문에 서늘할 때 속을 데우기에도 좋고, 배도 든든하다. 나는 예전에 주로 뉴 잉글랜드 클램 차우더를 해 먹곤 했었는데, 남편은 자기 고향인 노바스코샤(Nova Scotia) 스타일의 해산물 차우더를 주로 해 먹었다고 했다. 만드는 방식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두 가지 모두 차우더여서 베이스가 비슷하고, 결정적으로 두 사람 모두 좋아한다는 것이 포인트였다.
남편이 예전에 만들었던 해산물 차우더에는 흰 살 생선, 새우, 관자 등을 푸짐하게 넣고 감자와 야채도 넣어서 씹는 맛이 풍부하면서도 크리미한 것이 일품이었다. 특히 감자를 큼직하게 성큼성큼 썰어 넣어서 녹말화가 덜 되어서 국물이 완전 되직하지는 않다.
반면에 내가 만들었던 것은 주로 조개를 이용한 뉴 잉글랜드 클램 차우더였는데, 안 만들어 본 지 너무 오래되어 사진도 간신히 옛날 거 한 장 찾았다. 베이컨과 밀가루, 양파, 감자 등에다가 조갯살만 넣는 비교적 간단한 스타일이었다. 그래도 딸아이가 어릴 때 워낙 좋아해서 한때는 참 많이 만들었던 아이템이었다. 보스턴 살던 올케에게 배웠으니 역시 한국에서 친숙한 음식은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재료들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흔히 만들어먹을 생각을 못하고, 레스토랑에 가거나 아니면 캠벨 통조림 같은 거 사 먹는 거 많이 봤는데, 통조림은 정말 맛없다. 완전히 다른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지난번 글에서도 밝혔지만, 황금비율이나 똑같은 재료를 정량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우면서 비슷하게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에서도 그냥 '차우더'라고만 했는데, 그만큼 융통성을 두고 싶은 것이 의도이다. 즉, 응용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만든다면 살이 단단한 종류의 생선은 다 가능하다. 대구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생선이다. 아니면 조개나 관자, 새우 등등을 이용해서 해산물 차우더를 해도 좋고, 조개만을 이용해서 클램 차우더를 해도 좋다. 연어의 경우는, 한국식 훈제연어 말고, 더운 온도로 훈제해서 익힌 연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게 없으면 훈제의 마음을 접고 생연어를 구워서 사용해도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 (판매하는 것 중에는 연어 차우더도 있고 훈제연어 차우더도 있으니까)
참고로 위 사진은 남편이 만든 훈제연어이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훈제연어와는 완전히 다르다. 먼저 연어를 소스에 하루 재우고, 다시 하루간 말린 후에, 불을 때서 연기를 입히면서 서서히 익히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은 훈제기계도 집에 가지고 있다. 집에서 훈연한 연어들은 진공 포장하여 냉동하면 오랫동안 먹을 수 있다. 특히 오른쪽 사진처럼 식전 애피타이저로 애용하는데, 케이퍼와 크림치즈를 곁들이고, 크래커 등에 얹어서 먹도록 내놓으면 손님상에서 아주 인기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이번 차우더는 훈제연어 한 조각과 퍽퍽하게 구운 연어 한 조각 반을 이용했다. 훈제가 들어가면 아무래도 연기 맛이 삽입되니 풍미가 더욱 강해지지만, 꼭 훈제연어를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 없다고 실망하지 말고 다양한 것들로 시도해보자. 한 가지로 어려우면 몇 가지 해산물을 같이 넣는 것을 추천한다.
만들기 시작!
생선을 사용하면 익혀서 쓰는 것이 좋다. 우리 집의 방식은 미리 익혀서 깍둑썰기 해두었다가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넣는다. 팬이나 오븐에 구워도 되고, 아니면 끓는 물에 살짝 삶아도 된다. 생선 껍질은 넣지 않는다. 클램 차우더를 하려면 물 조금 끓여서 조개를 살짝 데쳐 껍질 벗겨 준비하거나, 아예 별도로 조갯살로 200g 정도 구입해도 된다. 그밖에 새우나 관자를 사용할 수도 있다. 역시 살짝 데쳐주면 좋다. 데칠때에는 물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진하게 끓여서 육수로 사용하면 좋다. (물이 많아 싱거우면 육수 자체를 끓여서 졸여서 양을 줄여주면 진해질 수 있다)
그다음, 베이컨은 풍미를 올려주는 역할을 하는데 없으면 삼겹살로 대신할 수 있다. 다만 훈제가 주는 맛이 아쉬울 수는 있다. 베이컨은 최대한 두툼한 쪽으로 사용해서 기름을 잘 활용하도록 한다. 잘게 썰어 팬에 먼저 올려 중간 불로 익혀준다.
불이 세면 베이컨이 바삭해지고 타므로 주의한다. 최대한 부드럽게, 그리고 기름이 배어 나오게 한다. 베이컨이 부드러워지면 양파를 작게 깍둑썰기 해서 넣고 같이 익혀준다. 소금을 같이 넣고 투명해지는 느낌이 나게 서서히 볶는다. 그리고 감자나 당근, 샐러리 등의 야채도 자그마하게 깍둑 썰어서 준비되는 대로 던져 넣는다. 새로운 재료를 넣을때마다 소금을 함께 조금씩 넣어준다.
이제 이 대목에서 토마토가 들어가는데, 우리 집에는 예전에 쌀 때 남편이 왕창 구입해 둔 유기농 토마토가 있다. 이미 껍질 벗겨서 깍둑썰기 해서 냉동해 놓은 것이라 쓰기 좋았는데, 그런 것이 없을 경우 일반 토마토를 사용한다. 단단한 로마 토마토가 제일 좋다. 껍질이 있으면 나중에 입에 거슬릴 수 있으니, 뜨거운 물로 살짝 데쳐서 껍질을 벗겨 사용한다. 역시 깍둑썰기 해준다. 이도 저도 다 귀찮으면 파스타 만들 때 흔히 쓰는 캔에 들은 토마토 통조림도 있다(토마토 홀 이라고 파는 것으로 구입하면 두고두고 잘 쓸 수 있다). 단 국물은 넣지 않는다. 깍둑 썰어서 대략 2 컵 정도 넣으면 된다.
육수가 들어갈 차례인데, 해산물로 내놓은 육수가 있으면 딱 좋고, 아니면 다른 육수도 괜찮다. 닭 먹고 남은 뼈를 고아둔 육수라든지, 이도 저도 없으면 치킨스톡 팩을 사서 쓸 수 있다. 단, 맹물은 사용하지 말 것. 아까 조개 삶은 물이나 생선 데친 물을 사용할 수 있다. 육수를 넣을 때, 다진 마늘을 함께 넣어준다.
이때 육수를 너무 첨벙하게 많이 넣지 말고, 간신히 잠길 정도로 아래 사진 만큼 넣어준다. 그리고 가장자리에서 살짝 끓기 시작할 때 생선을 넣는다. (팔팔 끓이지 말고 뭉근하게 끓여야한다) 조개를 넣는다면 더 있다가 시즈닝 해준 후에 넣는 것이 좋다. 미리 들어가면 질겨진다. 조개는 다져서 넣는다.
사진에서 보면 아직 야채가 완전히 익지 않았다. 이제 시즈닝을 해준다.
우리는 약간 열감있게 하기 위해서 매운맛 나는 양념들을 첨가했다. 그런 양념들이 들어가면 수프가 더 뜨끈하게 느껴져서 좋다. 실제 매운맛이 날 정도로 넣는 것은 아니다. 과용하면 안 된다. 사진에서 붉은 기가 도는 이유는 토마토때문이다. 의외로 고추장을 조금 넣었는데 아주 좋았고, 서양재료로 넛맥과 스패니쉬 스모크드 파프리카 파우더, 칠리 파우더를 조금씩 넣었다. 없으면 넣지 않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고추장은 어느 집에나 있을것 같다. 고춧가루를 넣고싶다면 아주 고운 고춧가루로 조금만 넣기를...
그리고나서 거의 다 익었다 싶을 때 쪽파를 다져서 한 스푼 정도 넣고, 생크림을 넣어준다. 케익에 쓰는 것처럼 거품 올린 생크림이 아니고, 우유팩에 넣어서 판매하는 생크림을 말한다. 없으면 우유를 넣어주고 버터를 한 숟가락 같이 넣어줘도 된다. 농도를 봐서 너무 묽다싶으면 전분을 한 두 숟가락 물에 타서 넣어주고 저은 후 불을 꺼준다. 전분이 들어가면 걸죽해지기도 하지만, 차우더를 따끈하게 유지하는 역할도 함께 해준다. 어쩐지 서운한 기분이 들어 말린 바질을 마지막에 좀 뿌려줬다.
그리고 이제 담아서 먹으면 된다. 위에는 생 파슬리가 있어서 뿌리면 정말 좋겠지만, 없어서 아쉬운대로 말린 파슬리를 뿌렸다. 맛은 완전히 최고였다. 시애틀의 차우더들이 울고 갈 맛이었다. 고추장이 아주 역할을 제대로 해주어서 놀라웠다. 적당한 열감과 적당한 농도, 그리고 풍미...
설명을 들으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막상 하다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사실 망치기 쉽지 않다. 재료의 양이 좀 틀려도 별로 상관없다. 각자 좋아하는 취향이 다르니 맛을 보면서 접근하면 자신의 스타일로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떨 때에는 오늘 만들은 게 별로 그냥 그렇다가, 내일 다시 먹으니 훨씬 맛있어지기도 한다. 식는 과정에서 감자가 더 녹말화 되면서 국물이 진해지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진해졌다 싶으면 다시 데울 때 육수를 조금 넣어줘도 좋다.
이틀 후 저녁, 내가 컴퓨터 앞에서 바빴더니 남편이 이렇게 수프를 데워서 가져다줬다. 저녁 식사 전에 살짝 이거 먹고 시작하자고... 역시 다시 먹어도 더 맛있었다.
재료:
베이컨, 두툼한 부위로 2줄 정도 잘게 다져서 준비
양파 1개, 작게 깍둑썰기
당근 작은 거 2개, 깍둑썰기
셀러리 2 줄기, 깍둑썰기
감자 3개 정도, 깍둑썰기 (크기 따라 다른데 500g 정도)
다진 마늘 3-4 조각
토마토, 껍질 벗겨서 깍둑 썰어 2컵
생선, 앞뒤로 굽거나, 오븐에 굽거나, 끓는 물에 데친 후 깍둑 썰기 한다.
육수 2컵 정도, 상태 봐 가며 넣는다.
고추장, 넛맥, 흰후추, 스패니쉬 스모크드 파프리카 가루 등 적당히
생크림 1컵 정도
쪽파, 1줄기 다져서 준비
전분가루 2스푼, 동량의 찬물에 풀어놓는다.
바질
파슬리
만들기:
1. 생선을 굽거나, 데치거나 원하는 방법으로 익혀준다,
2. 품질 좋은 베이컨을 잘게 다져서 두툼한 냄비에서 천천히 익힌다. 기름이 충분히 배어 나오고 부드럽게 한다.
3. 베이컨이 부드럽게 익으면 양파를 잘게 깍둑 썰어서 넣는다. 소금도 적당히 뿌려준다.
4. 당근, 셀러리 잘게 깍둑썰기 해서 먼저 넣고, 이어서 감자도 역시 깍둑 썰어 넣고 함께 익혀준다.
5. 토마토를 넣는다.
6. 다진 마늘을 넣고, 육수를 적당히 잠길만큼만 넣는다. 소금, 후추를 뿌려준다.
7. 낮은 온도로 살살 끓인다. 지나치게 익어서 야채가 흐물거리지 않게 한다.
8. 맛을 보면서 고추장, 넛맥, 칠리 가루, 흰 후추 등 취향에 맞는 향신료를 넣어준다.
9. 뭉근히 끓기 시작하면 생선을 넣고 계속 익힌다.
10. 내용물이 거의 다 익었다 싶으면 생크림을 넣고 저어준다. 이 때 쪽파도 넣어준다.
11. 전분물을 반 정도 붓고 저어주고, 다시 반복해서 딱 필요한 만큼만 넣어준다.
12. 마지막에 바질을 뿌려서 마무리한다.
* 만들어보신 분들 소감 나눠주시면 감사하고요, 질문도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