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Aug 10. 2023

국수인가 샐러드인가?

여름철에 맛있는 쟁반국수

며칠 전, 남편의 딸 부부가 온다고 연락이 왔다. 와서 일 보고 저녁도 먹고 간단다. 흠! 뭐 해 먹지?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줄 알기에 내 머릿속이 바빠졌다.


그녀는 냉면을 참 좋아하는데, 안타깝게도 사위는 차가운 국을 싫어한다. 처음에는 냉면이 싫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차가운 국물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국물 없는 냉국수는 어떻겠느냐 물었더니 시도해 보겠다는 대답이 왔다. 


가장 쉬운 냉국수라면, 그냥 김치 넣고 쓱쓱 비벼 먹으면 좋겠지만, 손님맞이로는 아무래도 약하다. 게다가 우리 남편도 매운 것을 못 먹고, 그렇다면 거의 맹탕인 국수이기 때문에 한 끼로는 아주 부족한 음식이 된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바로, 쟁반국수였다. 한국에 살 때에는 여름철이면 늘 소스를 냉장고에 챙겨두고 여름 내내 먹었던 그 쟁반국수. 각종 야채를 곁들이면 꽤 화려해 보일 테니 이 정도면 손님 초대용으로 준비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국물 없는 차가운 국수라고 하니 남편은 감이 잘 안 오는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대부분 물국수 위주로 먹었었다 싶다. 찬 국수는 나박김치에 말아서 먹거나, 냉면 육수를 내서 먹고, 더운 국수도 잔치국수나 월남국수를 주로 먹는다. 


어렸을 적, 어머니와 즐겨 먹던 김치 소면은 사실 남편에게 어필하기는 좀 어려운 아이템이다 보니 같이 해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남편에게 쟁반국수를 어떻게 알려줄까 생각하며 재료를 읊기 시작하다가 갑자기 깨달음이 왔다. 


"이거 샐러드야."



서양 사람들은 이렇게 야채를 듬뿍 넣은 국수를 그냥 샐러드라고 부른다. 때론 밥이나 퀴노아가 들어가기도 하고, 그래도 야채가 많이 들어가면 다 샐러드라고 부른다. 즉, 쟁반국수는 국수 샐러드인 셈이다. 국수는 거들뿐, 메인 재료는 야채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들이 이런 음식을 먹을 때, 국수의 양도 적은 편이다. 주객이 전도되는 모양새라고 할까? 한국식으로 1인분 100g 국수 끓여서 만들면 남편은 양이 많다고 좀 허덕인다. 키 190cm 장신의 남편이 그러는 거 보면 좀 이상하다 싶지만, 탄수기반의 식사가 아닌, 단백질 기반의 식사를 하는 서양 사람이다 보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쟁반국수도, 국수보다는 다른 재료가 중요하다. 물론 국수도 중요하지만 말이다.


국수는 메밀국수를 사용하는데, 남편이 밀가루 알러지가 있기 때문에 100% 순 메밀국수를 사용해야 한다. 값이 많이 비싸고, 삶아 놓으면 잘 끊기는데, 그래도 깊은 맛이 나서 나름의 매력이 있다.


그리고 내용물에서 편육은 곤란하고 닭고기를 사용해야 한다. 큰 딸이 붉은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는 쟁반국수에서 닭고기를 더 선호한다. 우리는 그래서 그들이 오기 전에 바비큐 통닭을 한 번 해 먹고 고기를 챙겼다. 


어차피 우리가 해 먹는 바비큐 통닭에는 별다른 향신료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살을 발라 사용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맛있는 통닭 레시피는 여기 : https://brunch.co.kr/@lachouette/79)


남편은 내가 뭔가 손이 많이 가는 것을 할까 봐 걱정되는 것 같았는데, 사실 이 음식은 소스만 만들어 놓으면 별거 없지 않은가. 그다음엔 야채만 썰면 되니까...


그래서 사흘 전에 소스부터 만들어 준비를 해뒀다. 이 소스는 멸치육수를 만드는 공이 들어가지만 나머지는 믹서가 다 해주니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리고 육수가 제대로 되면 그만큼 맛이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 중요한 것은, 최소한 하루, 또는 그보다 전에 미리 만들어 놓아 숙성시키는 것이 더 맛있다는 것이다. 


차갑지 않으면 정말 별로다. 즉, 완성했을 때에도 별 맛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 하루 숙성 시킨 후에 맛을 꼭 다시 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육수를 그리 어렵지 않게 내는 편이다. 중간 크기 냄비에 멸치와 디포리, 곤어리를 넣고, 새우 대가리 얼려 놓은 것도 함께 넣어 물 없이 먼저 살짝 볶아준다. 이렇게 하면 비린내가 쉽게 잡힌다. 거기에 찬물을 붓고 다시마를 넣어서 끓여낸다. 


건어물류를 먼저 불에 살짝 볶아주면 비린내를 잡을 수 있다.


육수를 끓이고 나면 식도록 두고, 다른 재료를 준비한다.


배를 넣으면 시원하고 맛있는데, 없으면 사과를 넣어도 된다. 아니면 서양배를 사용할 수도 있다. 이 소스의 단맛은 자연스럽게 과일로 내줄 것이다. 


배는 껍질을 까서 큼직하게 썰고, 양파도 마찬가지로 성큼성큼 썰어서 믹서기에 넣는다. 잘 섞이게 하겠다는 의도로 간장과 소금, 고춧가루, 식초, 겨자도 함께 넣어준다. 단맛을 추가하고 싶다면 꿀을 한 두 숟가락 넣어줘도 된다. 


우리 식구들은 매운 것을 못 먹어서 고춧가루는 1큰술만 넣었는데, 입맛에 따라 넉넉히 넣어도 좋다. 겨자는 매콤한 맛이 나는 겨자가 좋다. 나는 가루 겨자를 뜨거운 물에 개어서 사용한다. 레몬즙은 필수는 아니지만 들어가면 확실히 더 맛있다.


이 재료들을 모두 믹서기에 넣고 갈아주는데, 물이 없으면 잘 갈리지 않으므로 부드럽게 돌아갈 만큼 육수를 적당히 넣고 돌린다. 잘 갈아지면 소스병에 담고, 남은 육수로 믹서기를 헹궈서 마저 붓는다.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육수를 다 넣고 갈면, 나중에 믹서기에 아까운 양념이 너무 많이 남아서 안타깝다.


이제 간을 보고, 소금이 필요하면 더 넣는다. 나는 조선간장을 써서 소금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는데, 진간장을 사용하면 소금간이 따로 필요하다.


그리고 들깨가루를 넉넉히 넣어준다. 그러면 비로소 소스가 딱 좋게 걸쭉해진다. 여기에 참기름과 깨를 넣으면 완성. 메이슨 자 쿼트 사이즈에 딱 들어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다는 사실!




큰 딸이 방문하던 날, 사위뿐만 아니라 둘째 아들도 온다고 연락이 왔다. 장정이 둘이 된다면 국수만 가지고는 안 될 일이다. 나는 오징어 넣고 김치부침개만 하나 얹으려 했었는데, 모자랄 것 같아서 수제 어묵도 급히 만들었다. (수제 어묵 만들기 : https://brunch.co.kr/@lachouette/674) 이건 오븐에 굽는 것이라서 급할 때 반찬 추가로 딱 좋다.


식구들은 북적이기 시작하고, 급 정신이 없어져서 뭔가 빼먹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열심히 채를 썰어서 담았다. 마당에 나가서 토마토랑 깻잎, 상추, 오이, 고추, 쑥갓을 따오고, 양배추가 없어서 배추 썰고, 국수 삶으면서 달걀도 삶고... 그렇게 해서 큼직한 파스타 접시에 담았다. 


배를 넣으면 좋겠지만, 없어서 멜론을 좀 썰어서 넣었다. 달지 않은 멜론이나 참외가 있다면 조금 넣어도 좋다. 과일이 은근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원래 쟁반국수는 쟁반만큼 큰 접시에 전체 식구 것을 담아서 상에 낸 후 섞어 먹지만, 이렇게 식구가 많아지면 그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각자 담는 것이 더 편하다.


소스는 넉넉히 만들어서, 먹으면서 추가로 뿌리는 것이 맛있다.


서양식 식탁 예절상, 상 위에서 음식을 뒤적이며 섞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남편의 식구들은 역시 소심하게 섞으면서 먹었다. 하지만 반응은 아주 좋았다. 


소스를 오랜만에 만들어서 약간 불안했는데, 딱 적당히 간이 맞으면서, 여러 가지 맛이 고루 났다. 도대체 무슨 재료로 만들었을지 상상도 안 가는 맛이 되어버린 덕에, 뭐가 들어갔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런저런 재료를 이야기해 줬는데, 결정적으로 육수 설명을 안 해줬네. 그러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사진도 부실한 설명이 되었지만, 소스만 잘 만들면 되고, 그나마 소스는 거의 모두 믹서에 넣어 갈면 되는 것이다 보니 딱히 사진이 필요하지는 않으리라 주장해 봐야겠다. 맛있으면 그만인거지, 뭐!





쟁반국수


소스 재료 : 

육수 한컵반 (멸치 + 디포리 + 새우대가리 + 다시마 등을 넣고 끓여서 사용)

배 1개 (없으면 사과)

양파 1개 

간장 2큰술

고춧가루 1~4큰술(매운 것을 좋아하는 정도에 따라 선택)

소금 1큰술

꿀 1큰술(취향에 따라 가감)

식초 1/2컵

겨자 2큰술

레몬 반개, 즙 내서 사용

들깻가루 반컵 

통깨 1/4컵

참기름 2큰술


국수 재료:

메밀국수 - 1인당 50~100g

소고기 편육 또는 또는 익혀서 잘게 찢은 닭고기

배, 오이, 당근, 양배추, 깻잎, 상추, 피망 등등 갖은 야채를 채 썰어 준비

방울토마토는 반으로 썰어서 준비

쑥갓 한 줌

달걀 2인당 1개, 삶아서 껍질 까서 반 가릴 것

땅콩 다진 것, 건포도 한 줌씩


소스 만들기 :

1. 냄비에 큰 멸치, 디포리, 곤어리, 얼린 새우대가리 등등 육수용 재료를 넣고 살짝 볶다가 찬물 붓고, 다시마 넣어 육수를 만든다. 한쪽에 두고 식힌다.

2. 배, 양파, 간장, 고춧가루, 소금, 꿀, 식초, 겨자를 믹서기에 넣고, 육수를 자박하게 넣어 갈아준다. 

3. 양념장 보관용기에 쏟아붓고, 남은 육수로 믹서기 헹궈서 마저 넣는다. 간 보고 필요하면 소금 간 추가한다

4. 들깻가루, 통깨, 참기름 넣어 잘 섞은 후 냉장보관한다. 

* 소스를 만들 때에는 맛을 보며 필요한 것들을 가감해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국수 만들기 :

1. 국수는 삶아서 잘 헹군 후, 물기를 빼서 준비한다.

2. 큰 접시에 재료들을 둥글게 차곡차곡 담고, 소스를 뿌려준다.

3. 상에 낼 때, 소스를 추가할 수 있도록 따로 작은 피처에 담아 곁들인다. 

* 쟁반처럼 큰 접시에 담아 비빈 후, 각자 덜어 먹거나, 파스타볼에 각자 먹을 만큼씩 담아서 서빙해도 좋다.



어쩌다 보니 브런치스토리에서, 푸드 방면 크리에이터라는 생각지도 못한 배지를 받게 되었는데, 몹시 찔립니다. 요리는 대략 계량 없이 주먹구구로 하고, 대부분의 이야기가 넋두리인데, 저도 라이프나 에세이 같은 거 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떼를 쓸 수도 없고... (아마 또 금방 잊어버릴듯요!) 그냥 하던 거 쭉 하려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