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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ug 29. 2023

얼떨결에 애플파이!

사과를 100킬로 넘게 얻어온 기념으로!

우리는 매년 이맘때쯤 사과를 얻어온다. 남편이 사랑하는 알콜성 음료, 애플사이다를 만들기 위해서다. 


시작은 이랬다. 남편은 감자를 너무 좋아한다. 나는 "감자가 다 감자이지 뭐..." 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지만, 남편은, 감자 종류 별로 각각의 맛을 다 따로 기억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보랏빛이 도는 푸른 감자를 사랑한다. 늘 먹을 수 있는 품종은 아니지만 매년 이맘때 이 감자를 파는 농장이 있다.


남편이 만든 햄버거 스테이크와 푸른 감자, 집에서 키운 옥수수


상업적으로 크게 하는 농장은 전혀 아니다. 본업이 따로 있으면서 전적으로 취미로 꾸려지는 농장이다. 프란체스코의 본업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인 것 같다. 언제나 마음 넉넉하고 여유로워 만나면 기분이 좋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재미 삼아 여러 가지 야채를 키우고 있는데, 그걸 크레이그 리스트(서양의 당근마켓)에 올려놓고 판다. 요새는 올리지도 않는 것 같은데, 기존 고객들이 종종 와서 사가는 것 같다.  그중에서 우리는 매년 마늘과 푸른 감자를 사 온다.


나도 마늘을 심지만 우리 것만으로는 일 년 치 부족하다. 그의 마늘은 진짜 커서, 우리는 일부를 내년을 위한 종자 마늘로도 사용한다.


우리가 감자를 사던 어느 해, 그가 사과 때문에 골치라는 말을 꺼냈다. 그는 농약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는 자연 농법 농사꾼인데, 그의 사과 나무 중 몇 그루가 벌레 먹은 사과를 생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벌레가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사과에 점박이가 잔뜩 박혀있다 보니 상품성이 전혀 없었고, 그냥 먹기도 찜찜한 그런 사과가 나무 가득 달려있었다. 


그래서 전 해에 그걸로 애플 사이다 비니거를 만들었더니 참 맛있었는데, 매년 쏟아져 나오는 사과를 가지고 식초를 만드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한탄이었다. 약을 치면 벌레를 죽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땅을 오염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냥 마음을 비운 상태였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은, 그걸로 애플사이다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눈을 반짝였고, 나는 식초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역시 눈을 반짝였다. 남편은 이미 예전에 사과를 사서 애플사이다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었다고 말을 했다. 프란체스코는 원하면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고 하였다. 완전 유기농 사과를 공짜로 얻게 된 것이다. 물론 사과에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는 결국 건더기는 다 걸러내고 즙만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그 해를 기점으로 해서 우리는 그의 집에서 매년 사과를 얻어오게 되었다. 어떤 해에는 사슴과 경쟁을 해야 해서 양이 좀 적을 때도 있었지만, 올해는 계절도 일렀고 양도 풍부했다! 언제나 정감이 가는 그의 마당에서 그와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사과나무 두 개를 털어왔다. 대략 120 킬로 가량 되는 사과였다.



우리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애플 사이다 만들기에 돌입했다. 늘 하던 방식으로 사과를 씻어서 구식 기계에 넣어 으깨고, 즙을 짰다. 사이다용 즙을 짜고 남은 건더기는 식초 만드는 용도로 사용한다. 양이 많이 남아서 친구에게도 전화해서 좀 가져가라고 했다. 


사과를 으꺠서 즙을 짠다. 그 다음에 통에 담아 발효 시킨다


애플사이다와 식초 만들기에 관해 더 궁금하다면 : 



사과를 씻어서 기계에 넣는 와중에도 나는 사과들을 눈여겨보았다. 아주 드물게 정상적인 사과들이 섞여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많은 사과 중에서 스무 개 정도를 구해냈다. 빨강과 초록이 어우러진 예쁜 사과 하나를 입에 배어 무니 아주 단단하면서도 새콤 달콤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과하게 달지 않지만 향긋하고 풍미가 넘치는 이 사과는 애플파이를 만들어도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플파이 만들어본지가 십 년도 넘었지만 갑자기 이걸 꼭 만들고 싶어졌다. 


사실 탄수화물을 줄이면서 이렇게 단 음식은 정말 멀리 했었는데, 요새 많이 느슨해지다 보니 이것도 만들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설탕을 전혀 넣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사과 안에 당분이 많겠지만, 자연의 단맛이니 용서해 주기로 했다. 


마침 파이지를 만들어서 냉동해 놓은 것이 있어서, 그날 밤 바로 냉장실로 내려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원래 애플파이는 위쪽도 반죽으로 덮여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나는 그렇게 하면 아무래도 반죽의 맛이 너무 강해지기 때문에 일반 파이처럼 아래쪽 한 겹으로만 하고 싶었다.


사진: Unsplash의 Priscilla Du Preez, 일반적인 사과 파이


그래서 레시피 참조를 위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였으니 내 마음이 쏙 드는 레시피는 없었다. 다 설탕을 들이붓더라. 이번에도 또 내 마음대로 만들겠지. 하지만 모양은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서 그 모양대로 사과를 담아보기로 했다. 가지런히 사과를 늘어놓은 모양이 아주 예뻤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파이 반죽을 밀어서 파이틀에 넣고 애벌 굽기를 했다. 파이지는 틀에 대고 모양을 잡는데, 장식 부분이 파이틀 바깥쪽으로 내려가면 구우면서 부서지기 때문에 위쪽으로 살짝 띄워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틀 바깥으로 반죽 끝이 넘쳐나지 않게 할 것


그러고 나서는 냉동실에서 한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뒀다가 굽는 것이 좋다. 그러면 구울 때 모양이 덜 망가지기 때문이다. 모양 유지를 위해서는 파이 안에 무거운 것을 넣어서 굽기도 하는데, 시중에서 판매되는 것도 있지만, 나는 오래된 콩을 사용한다. 좀 오래 보관되어서 먹기 찜찜한 콩을 모아뒀다가 매번 파이 구울 때마다 사용한다. 이제 파이 전용 콩이 되었다. 콩 대신에 쌀을 써도 된다. 



아침에 파이지를 구워내고는 토마토 캐닝을 했다. 이것도 연례행사인데 마침 같은 날 겹친 것이다. (캐닝이 궁금하면 여기 : https://brunch.co.kr/@lachouette/355



오전 내내 분주했기에 파이 속 채우기는 점심을 먹고 나서 시작했다. 


남편이 옆에서 사과의 껍질을 벗겨주었고, 나는 속을 파내고 가지런히 썰어서 통에 담았다. 껍질을 까지 않으면 굽고 나서 껍질만 질겨서 거슬리기 때문에 꼭 벗겨야 한다.


사과는 껍질을 먼저 까야하는데 까먹고 잘랐다가 나중에 벗기느라 귀찮았다. 이렇게 자르고 속을 쳐내면 편하다.


사과는 쉽게 갈변이 되므로 레몬즙을 뿌려주고 수시로 뒤섞어줘야 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갈변은 마음을 비우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풍미를 위해서 계핏가루와 생강가루, 넛맥가루를 넣어주었고, 소금도 뿌려주었다. 수분을 조절하기 위해서 타피오카 가루도 섞었다. 


설탕에 대해서는 살짝 갈등이 왔다. 나만 먹는다면 고려할 여지가 없겠지만, 이 사과가 단맛도 있지만 신맛도 있는지라 남편을 위해서라면 약간 단맛이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감미료를 한 숟가락 정도 뿌려주는 것으로 결정했다. 일반 레시피에서는 설탕이 최소 반컵 이상은 들어가지만 그렇게 하려면 굳이 뭐 하러 만들겠는가, 사 먹지!


사과즙으로 첨벙거리지 말라고 파이 바닥에 타피오카 전분을 한 숟가락 뿌려줬다.


충분히 식은 파이지 위에 타피오카 가루를 한 숟가락 뿌려주고, 그 위에 사과를 진열하기 시작했다. 급히 하다 보니 사과가 충분히 얇게 썰어지지 않아서 씽둥거리는 것을 간신히 잡아서 끼워 넣었다. 중간에 사과 조각을 반씩 포를 뜨기도 했다!


예닐곱 개씩 잡아서 빙 둘러가며 세웠다.


모양이 마음같이 안 나온다고 투덜대며 했는데, 막상 다 돌리고 나니 그냥 그럴듯해 보였다. 중간에 빈듯한 곳에는 사과를 더 끼워 넣기도 했다. 그리고 위에 버터를 조금씩 얹어줬다. 



이제 오븐에 들어갈 시간. 가장 재미난 타임이다. 어느 정도 구워지면 냄새가 솔솔 올라오기 때문이다. 근데 뭐가 그리 바쁜지 중간에 까먹고 있다가는 타이머가 울려서 깜짝 놀라서 가서 꺼냈다. 타기 직전이었다. 아니 가장자리가 살짝 그을렸다. 아무래도 50분은 좀 길었던 듯!


그래도 참 예쁘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냥 이대로도 예쁘지만, 약간 윤기 나게 하고 싶으면, 이 위에 메이플 시럽을 살짝 발라주면 더 좋다. 촉촉해지니 질감도 좋아진다. 단것이 싫다면 패스!




어제도 오늘도 긴 하루였다. 어제는 아침부터 가서 사과를 실어오고, 애플사이다를 만드느라 바빴고, 오늘은  토마토 캐닝을 세 번에 걸쳐하고, 짬짬이 애플파이를 만들다 보니 하루가 다 갔다. 


저녁시간도 늦어졌다. 저녁은 촛불을 켜고 먹어야 했다. 남편이 맛있는 관자와 새우를 익혀 해산물 모둠을 준비했다. 해산물은 언제나 맛있다. 일본의 행위를 이야기하며 한탄도 좀 하면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사과파이 시식을 했다. 남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나왔다. 그러면 성공이다. 사과의 풍미가 제대로 살아있었고, 딱 기분 좋을 만큼 달았다. 한 입, 한 입이 아깝다 생각하며 먹었다.


추가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서양사람들은 이 사과 파이를 먹을 때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 다음날에는 아이스크림도 만들었다. 원래는 따끈한 파이 위에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떠서 얹어서 먹지만, 우리는 그냥 우리 스타일로 옆에 두고 즐기기로 했다!




사과파이 

10인치 틀 1개 분량


재료:

10인치 파이지 1장

단단한 종류의 사과 5개 정도

레몬즙 2큰술

계핏가루 1 작은술

생강가루 반 작은술

넛맥 가루 1/4 작은술

소금 반 작은 술

설탕 또는 자일리톨 1~3큰술 (취향에 따라 생략하거나 양을 조절)

타피오카 가루 1큰술(사과 믹스에), 1큰술(파이지 위에) - 옥수수전분으로 대체 가능

버터 2큰술, 잘게 깍둑썰기 

메이플시럽 2큰술 (옵션)


만들기 :

1. 파이지를 파이 틀에 얹어 모양을 잡은 후, 냉동실에 30분 정도 보관한다.

2. 파이지에 유산지를 얹고, 마른 콩을 얹어서 205°C (400°F) 오븐에 20분간 굽는다. 

3. 콩을 꺼내고 다시 2~3분간 굽는다. (오래 구우면 크랙이 생기니 유의)

4. 크랙이 생겼다면, 남은 반죽으로 땜질을 해준다. (없으면 밀가루와 물을 섞어 반죽을 조금 만들어 사용)

5. 파이지가 완전히 식도록 둔다

6. 사과는 껍질을 까고, 4등분 한 후, 씨 부분을 잘라내고 최대한 얇게 납작납작 썬다.

7. 큰 볼에 담고, 먼저 레몬즙을 뿌려 뒤적여준다.

8. 모든 가루 재료를 작은 볼에 모두 섞어준 뒤, 사과에 넣고 볼 째로 까불어 준다.

9. 오븐을 190°C (375°F)로 예열한다.

10. 다 식은 파이지에 타피오카 전분 1큰술을 적당히 뿌려준 후, 사과를 예쁘게 돌려 담는다.

11. 위에 버터 조각을 얹어준다.

12. 예열된 오븐에 넣고 40~45분가량 굽는다. 위쪽이 노릇해지도록 굽는다.

13. 꺼내서 위쪽에 메이플 시럽을 붓으로 발라주고, 그대로 식힘망에 얹어 완전히 식힌다.

14. 썰어서 서빙한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여도 좋다.


★ 파이지 만들기의 레시피는 https://brunch.co.kr/@lachouette/184 이 링크에서 파이지 만들기만 같은 방식으로 준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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