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진짜 이탈리안 식당이 있다.
딸과 시내에서 종일 뚜벅이를 하고 나서, 우리는 드디어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원래 생각으로는 아주 맛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이 있다고 해서 그곳에 가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날부터 여름휴가가 시작이라고 했다. 예약이 필수인 곳이다 보니 그래도 허탕을 치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김 빠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막연히 종일 돌아다니다가, 마지막 코스였던 기라델리 초콜릿 집에서 검색을 하다가 이 이탈리안 식당을 찾아냈다. 딸이 이 집이 진짜인 거 같다며 가자고 했다.
위치는 시내 한복판이라고 해야 할까, 차이나 타운보다 약간 남쪽에 있었다. 빌딩 숲 가운데에 작은 골목길이 있는데, 그 길이 벨든 플레이스(Belden Place)라고 했다. 양쪽으로 식당이 늘어져있었고, 그중 한가운데에 있는 식당이었다. 이름은 카페 티라미수(Cafe Tiramisu).
우리가 도착한 시각은 토요일 초저녁이었는데, 이 골목 자체가 썰렁했다. 낮에는 무덥던 날씨가 저녁으로 들어서면서 갑자기 차가워진 것이었다. 골목 안의 식당들은 모두 손님 하나 없이 썰렁했기에, 우리는 제대로 왔나를 잠시 고민해야 했다.
우리가 카페 앞에 도착하자 이태리인 아저씨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면서 야외 좌석에 앉기를 추천했다. 춥다고 했더니 바로 난로를 켜주고, 바람막이도 세워주는 친절을 베풀어서 우리는 편하게 야외에서 기분을 낼 수 있었다.
그것이 어쩌면 그 아저씨의 작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유일하게 손님이 앉아있는 식당. 행인들은 그 식당을 선택하고 싶지 않겠는가! 실제로, 앞에서 망설이는 손님에게 우리가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주면서 호객행위를 하기까지 했으니 웨이터 아저씨의 선택은 탁월했다고 보인다.
메뉴판을 보니 가격은 이런 식당으로 봤을 때 딱 적절해 보였다. 애피타이저는 20불 전후, 본식은 30불 전후였는데, 사실 나는 본식보다 애피타이저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니, 우리 둘이서 애피타이저 2개, 본식 1개를 주문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흔히 이탈리안 식당에서 메인 첫 코스로 파스타가 들어가지만 우리는 선택하지 않는다. 그걸로 배를 채우기보다는 좀 더 맛있는 것을 넣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메뉴는 다음과 같았다.
CARPACCIO VENEZIAO, black angus beef carpaccio, lemo vinaigrette, arugula, shaved parmiggiano $17
MIXED SEAFOOD GRILL, assortment of shrimp, scallops, octopus, oyster persillad & red pepper coulis $23
LOCAL STRIPPED BASS, tomato-sea urchin sauce, serve with egglant parmiggiana $35
영어가 난무하는 메뉴의 보다 자세한 설명은 사진과 함께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첫 번째 사진은 카르파치오인데, 내 브런치의 단골손님이시라면 분명 익숙한 비주얼이리라.
그런데 밑에 깔린 것이 비트가 아니고 소고기였다. 이게 진짜 카르파치오인 것이다. 채식 버전으로만 먹다가 실물을 영접하게 되어서 신기한 마음으로 주문했는데, 입에서 살살 녹았다!
육회와 함께 주문한 해산물 애피타이저 또한 일품이었다. 대하, 관자, 굴, 문어를 구워서 두 가지 소스와 함께 서빙되었는데, 불맛이 살짝 돌면서 엄청 부드러웠다.
특히나 중심에 깔린 소스가 너무 맛있어서 싹싹 긁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 날 너무 맛있게 먹어서, 마지막날에 남편과 둘이 다시 이곳에 왔을 때에도 같은 음식을 주문해서 먹었다. 그리고 소스가 너무 맛있어서, 도대체 이게 무슨 소스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랍스터 내장을 넣어 만든 쿨리스 소스라고 대답하면서 뿌듯하고 자랑스러움이 온 얼굴에 가득 넘쳤다. 그 모습이 참 정겨웠다. 자신들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어쩐지 소스에 풍미가 넘치고 해산물과 딱 잘 어울리더라니!
그리고 딸과 주문한 본식은 줄무늬 농어였다. 토마토와 성게로 만든 소스에 가지를 곁들여서 나오는 화려한 음식이었다. 생선은 딱 적당하게 익었고, 가지도 입에서 살살 녹았다.
본식을 하나 더 소개하자면, 남편과 왔을 때 먹었던 연어요리를 빼먹을 수 없다. 연어 위에 게살이 올라앉았고, 바닥에는 오징어 먹물 소스를 깔았다. 그리고 맛있는 랍스터 소스도 역시 함께 나왔다.
모든 음식은 둘이 반씩 나눠 먹었고, 매번 앞접시를 새로 가져다주어서 각각의 맛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남편은 와인을 한 잔 주문했다. 하우스 와인으로 달라고 하니 잠시 고민을 하다가, 투스카니 지방의 무슨 와인이라고 하면서 줬는데 이 또한 훌륭했다. 처음 듣는 와인 이름이었는데, 이 포도를 구할 수 있으면 집에서 만들어보고 싶은 와인이었다.
이렇게 식사를 모두 마치고 나니 배는 불렀지만 디저트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맛집에 오면 디저트도 꼭 챙기는 편이니 이 집에서 생략할 수는 없었다.
딸과 주문한 것은, 이 가게의 이름인 티라미수였다. 말해 뭐 하겠는가! 럼주와 에스프레소가 레이디핑거에 촉촉이 스며있는 정통 이탈리안 티라미수였다.
남편과 갔을 때에는 글루텐프리 디저트로 골랐는데,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카프레제 케이크를 선택했다. 지난번 루시아의 버클리에서도 같은 것을 먹었는데, 둘 다 맛있었지만, 이 식당의 것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뭔가 아몬드의 질감도 살짝 느껴졌고, 함께 곁들여 나온 피스타치오 젤라토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나중에 꼭 한 번 만들어보고 싶은 디저트이다
커피도 함께 주문했는데, 일반적으로 커피를 먼저 가져다주는 다른 식당들과 달리 커피가 디저트 나오고 잠시 후에 따라 나왔다. 웨이터 말이, 커피를 먼저 주면, 호르르 마셔버리고 나서 디저트 먹을 때 커피가 아쉬워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름 센스 있는 서빙이었다.
딸과 한 번, 남편과 한 번, 이렇게 두 번의 식사를 했던 이 카페 티라미수는 우리를 완전히 만족시켰다. 다음에 샌프란시스코를 또 방문한다고 해도 꼭 다시 가고 싶은 곳이었다.
가격 면에서도, 아주 싼 집은 아니었지만, 어느 식당에 가도 이 정도의 가격은 하기 때문에 결코 비싼 식당이 아니었고, 더구나 음식의 품질로 봤을 때, 고급 식당에 절대 뒤지지 않는 훌륭한 곳이었다.
딸과 들어갈 때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는데, 우리가 나올 무렵에는 완전히 꽉 차서 북적이고 있었다. 토요일 저녁이었지만, 옆 가게들은 모두 한산했다는 사실! 인기 맛집이 확실한 듯하다. 우리만 알고 아껴서 갈까 하다가, 애민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되어 공개한다!
가게 정보는 여기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