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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Oct 07. 2019

나는 자식이 넷이야, 당신은 하나인데...

부부가 자식을 공유한다는 것

아주 오래전에 이혼한 남편은 혼자서 딸 하나와 아들 둘을 키웠다. 그들은 이미 장성하여 밴쿠버 시내에 각자 자신들의 보금자리에 자리 잡고 잘 살고 있다. 나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남편의 아이들보다는 훨씬 어리지만, 그래도 이제 대학 졸업하고 자기 자리 잡으려고 애쓰고 있는 상황이다. 


남편은 자식사랑이 남다르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면 자식들을 모두 불러 모아 거나한 저녁을 함께 한다. 절대 외식 안 하고 집에서 다 차린다. 생일인 자식에게 미리 무슨 식사를 원하는지 물어보고 그에 맞는 음식을 준비하는데 대충 하는 법이 없다. 한 번은 큰딸이 프랑스 식으로 하자고 해서, 정통 프랑스 식으로 해서 풀 코스로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완벽하게 구성한 적도 있다고 한다.


미리부터 메뉴를 고민하고, 멋진 메뉴판도 만든다. 레시피도 연구해서, 필요한 것들을 모두 출력한다. 모든 재료를 다 사다가 손질하고, 일부는 완성해둔다. 그리고 자식들이 오면 같이 애피타이저를 먹고, 정해진 재료로 음식을 만든다. 지난여름 큰딸 생일 때는, 딸이 간단한 한식 비빔밥 같은 거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는데, 어떻게 비빔밥으로 생일상을 차린 단말인가. 원래 비빔밥은 집에서 남은 음식들을 휘휘 섞어서 먹는 잔반처리 메뉴인데 말이다. 그건 내 자존심이 용납을 안 했다. 더구나 자식들 불러다 놓고 먹이는 첫 한식인데! 그래서 한식 메뉴를 고민해서 함께 짜고 정말 상다리가 휘게 준비를 했다. 


지난 여름 큰 딸의 생일파티


그냥 내가 만들면 어쩌면 더 수월할 텐데, 모두에게 만들 기회를 줘야 한다고 해서 레시피들을 영어로 만들어 출력하느라 더 바빴다. 하지만 진짜 재미있었다. 오징어 숙회를 전채요리로 시작해서, 생일 본식에는 미역국이 빠질 수 없지. 딸은 육고기를 먹지 않으므로 해산물 미역국을 했고, 각종 전과 새우장, 황태구이, 참치회무침, 삼색나물, 녹두전에 김치는 오이소박이와 무채, 나박김치가 등장했고, 마지막에 디저티는 팥빙수로 마무리했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제 생일이면 그냥 밖에서 나가 먹는 것이 일상이니 이렇게 상을 차려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날이면 날마다 하는 것도 아니고, 며느리가 되어서 혼자 상을 차려야 하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온 식구가 함께 달려들어서 만들다 보니 그 자체가 놀이화된다.


예전에 한국인과 지내본 적도 없으면서 온 식구가 다 한식을 잘 먹더라. 남편만 잘 먹는 줄 알았는데, 애들도 다 즐겨먹었다. 미역국도 생소하고, 게다가 새우장이라니! 김치도 녹두전도 황태구이도 다 잘 팔렸다. 그리고 갈 때에는 허그하면서 정말 고맙다는 다정한 인사를 잊지 않는다. 다 커서 30대이니 더 이상 아이들도 아니지만 내가 보기엔 아이들이고 귀엽다. 


나는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젊은 날을 기억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고 나서의 그 경이로움과 감사의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남편은 나보다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더 큰 사람이다. 그는 늘 자식이 넷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고 했다. 딸-아들-아들-딸.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하기도 전에 어느새 딸이 하나 생겨났다. 그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내 딸을 그의 딸처럼 생각하며 아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우리가 만나 결혼을 했으니 내 딸도 그를 아빠라고 부른다. 한국 정서상 이름을 부르기는 쉽지 않기도 하지만,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식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며칠 전 문득 남편이 말했다.


나는 자식이 넷이야, 당신은 하나인데...

내가 지금의 남편과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은 일 년 남짓밖에 안되지만, 내 딸과 그는 이미 8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이고, 그는 딸아이의 성장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멘토였다. 힘든 순간에 연락해서 고민을 말할 수 있는 사이였고, 아이가 이태리로 교환학생 가있던 시절에 그곳까지 찾아가서 아이를 격려해주었던 깊은 관계다. 


반면에 남편의 아이들에게 있어서 나는 아빠의 아내, 쟈네뜨이다. 새엄마가 아니고 그렇게 부를 생각도 없다. 나도 그렇게 불러달라 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딸의 파트너들도 나의 남편을 장인이나 시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서로 이름을 부른다.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완전히 콩가루이지만, 그들에겐 그들만의 편하고 친함이 있다. 그래서 서로를 구속하고 견제하는 알력이 있지 않고, 시댁이 가기 싫은 곳이 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가족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도 아니다. 서로 사랑하고, 힘들 때 서로 도울 수 있으며 뭉칠 때에 확실하게 뭉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 그것이 모든 화합의 시작이라고 생각된다. 결혼했으니 모두가 다 가족이 된다는 것도 나름 매력적인 일이고, 그러나 서로 구속되지 않는 각자의 관계로 남는 것 역시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식으로 그들은 서양식으로 살고 있지만, 서로의 장점을 받아들여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지난 주말에도 그의 아이들이 다녀갔다. 파트너들이 다 바빠서 어쩐 일인지 자식들만 모였는데 아주 오붓한 자리가 되었다. 유럽 신혼여행 다녀오고 만날 새가 없어서 만든 자리다 보니 생일처럼 거하게 차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파리에서 먹어본 새로운 샐러드(레시피는 여기:https://brunch.co.kr/@lachouette/70)를 얹고 스테이크 구워서 기분을 업 시켰다. 많이 웃는 시간이었고, 역시 소중한 허그를 나눈 후 돌아갔다. 


나의 아이를 진정 딸처럼 생각하는 남편에게 감사하고, 내가 자신들의 아빠와 결혼해서 사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그의 자식들에게도 감사한다. 그리고 엄마의 남편이기 이전에 자신의 멘토로 그리고 아빠로 그를 생각하고 있는 딸에게도 감사한다. 


자식이 넷이어도 좋다. 딸이 하나여도 좋다. 모두가 사랑한다면 어떤 방식이든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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