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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Feb 02. 2020

생일 저녁을 최고로 근사하게

준다고 닳지 않는 사랑...

내 생일은 1월 초이다. 작년엔 딸과 남편, 남편의 아이들이 모두 모여서 줄리아 차일드 스타일의 프렌치 디너를 집에서 차려 거하게 먹었다. 그리고 올해에는 딸네 집에 있었기 때문에 딸과 조촐하게 차려서 둘만의 생일 파티를 했지만, 남편과는 함께 하지 못했기에, 어제 드디어, 달이 바뀌기 전 마지막 날, 생일 파티를 할 수 있었다.


원하는 것을 묻는 남편에게, 분위기 좋은 식사를 하고 싶다고 했고, 이번엔 이탈리안이 아닌 프렌치 스타일이 낙점되었다. 자식들에게도 물어보고 여러 가지 사전조사를 한 결과, 밴쿠버 시내에 있는 30년 된 레스토랑 Le Crocodile로 최종 결정되었다. 주말이 편하려나 해서 토요일로 예약을 시도했으나 이미 만석이었고, 그래서 금요일 저녁으로 하게 되었다.


기대했던 날 저녁이 왔다. 특별한 저녁이니 정장과 드레스를 입을까 하다가, 너무 유난스럽지 않게 그러나 티셔츠 청바지는 아닌 그 중간으로 편하게 입기로 했다. 밴쿠버 답게 비가 많이 오고 있었고, 남편은 차에 있던 우산을 미리 챙겨다 놓고, 차까지 가는 길을 에스코트했다. 정말 열 발짝밖에 안 떨어진 집 바로 앞에 차가 있었지만 시작부터 사려심 깊은 그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약간의 교통사고가 있어서 길이 막히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고, 주차를 어디에 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거리 주차가 무료인 줄 알았으나 유료였으며 두 시간 이상은 세울 수 없었다. 비는 내리고.. 고민하다 보니 식당과 같은 건물에 유료주차장이 있어서 거기다가 세웠다. 두 시간 넘어갈 때 마음 졸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 남편의 말이었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웨이터가 코트를 받아 들고는 우리를 자리로 안내했다. 식탁 위에는 아름다운 장미가 꽃병에 꽂혀있었고, 카드가 함께 있었다. 펼쳐보니 다정한 문구와 함께 생일 축하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남편이 꽃을 주문하면서 함께 주문한 카드였다! 항상 생각지도 못한 것을 준비해주는 남편의 세심함에 감동받았다.


남편이 일찌감치 식당에 전화해서 문의를 했더니, 그들이 꽃집을 소개해줬다고 했다. 그래서 거기에 주문했고, 늦지 않게 식당에 배달이 되었던 것이다. 깜짝 놀라는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남편. 항상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하는 그의 가장 멋진 매력은, 사랑을 가지고 흥정하거나 생색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큰 것을 주든, 작은 것을 주든, 받는 사람이 가장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나이 지긋한 웨이터가 와서 프랑스식 발음의 영어로 메뉴를 열심히 설명했고, 우리는 열심히 알아듣는 척했다. 하하! 그리고 와인부터 주문하는 양식 메뉴에 따라서 남편이 레드와인 반 병을 주문했고, 이어서 우리는 우리 취향에 맞는 2개의 애피타이저를 주문했다. 평소에는 하나만 시켜서 둘이 나눠먹지만 오늘은 특별하게 마음껏 먹기로 한 듯 하나 더 시키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늘 좋아하는 생굴과 프랑스 요리에서 빠지면 안 되는 달팽이 요리를 주문했다.


제일 처음 나온 것이 생굴. 함께 나온 소스는 레드와인식초에 샬롯과 후추를 섞은 것이었는데, 한식으로는 초고추장, 양식으로는 호스래디쉬를 곁들여 먹거나, 아니면 간단히 레몬을 뿌려먹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맛이었다. 아마도 다음번 우리 집에서 생굴 파티를 할 때에는 이 소스를 만들어 곁들일 것이 틀림없다.


이 식당이 워낙 서비스를 잘한다고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을 정말 적절히 활용하는 서비스였다. 지나치게 기다리는 일이 없었고, 뭔가 따로 불러서 요청할 일도 없었다. 두 번째 애피타이저가 나오기 전에 서비스 애피타이저가 나왔다. 아주 작은 키쉬가 나왔는데, 주문할 때 글루텐프리 식사를 문의했더니, 하나는 훈제연어가 나왔다. 밀가루 못 먹는 사람을 배려해서, 묻지도 않고 알아서 챙겨준 것이었다. 


두 가지 모두 입에서 살살 녹았는데, 연어에 오일을 곁들인 것이 특이했다. 아주 풍부한 맛이 났다.


그러고 나서 우리의 달팽이 요리가 나왔다. 특이하게도 작은 페이스트리 모양의 그릇에 달팽이가 담아져서 나왔고, 아주 곱게 다진 파슬리와 마늘이 버터 안에서 풍부한 향을 뽐냈다. 빵을 안 먹는 우리는, 수저로 이 버터를 다 떠먹었다. (원래는 흔히 바게트를 찍어먹는다)


애피타이저가 모두 끝나고 메인 요리가 나왔다. 내가 주문한 것은 물에 데친 연어에 한치 링을 얹은 것이었는데, 무척 담백하면서도 딱 알맞게 익어서 전혀 퍽퍽함이 없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연어 아래에 삶은 시금치가 깔려있었는데, 연어와 함께 입에 넣으니 전혀 뜻밖의 맛이 났다. 완전 입에서 녹는 두 맛의 조화는, 이래서 요리가 의미가 있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옆의 녹색은 으깬 감자를 이렇게 색을 넣어서 만든 것이었는데 엄청나게 부드러웠다.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소믈리에는 와서 와인을 적당한 타이밍에 계속 따라주었고, 꽃이 정말 예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물론, 생일 축하한다는 말도 함께. 그곳의 모든 직원들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은 듯하다.


남편이 주문한 것은 구운 오리 가슴살에 푸아그라를 곁들인 음식이었는데 정말 부드럽고 촉촉했다. 푸아그라는 옛날에 통조림에 든 것을 먹어본 것이 전부였는데, 진짜 고급스러우면서 부드러운 간의 맛이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음식이었다. 남편은 자기 한 입 먹고, 다시 내게 한 입 넣어주면서 연신 감탄을 했다. 야채는 따로 접시에 담아서 메인과 섞이지 않게 서빙되었는데, 각각의 맛이 다 살아있었다.


충분히 다 먹었지만, 그래도 디저트를 주문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웃으며 다가오는 웨이터 아저씨. 역시 프랑스식 영어로 디저트를 줄줄이 설명했다. 그래서 평소에는 시키지도 않던 디저트를 두 개나 시켰다. 그러고 나서는 우리가 주문하지 않은 배 셔벗이 서비스로 나왔다. 딱 과하지 않은 단맛과 양이었다. 상큼하게 입안 마무리를 도와주는 맛이랄까? 우리는 수시로 손을 잡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마냥 행복한 민폐커플이었다.


식사하는 동안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여유롭게 앉아서 음식을 최대한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이곳의 서비스는 단순히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을 떠나서, 우리 식당에 오는 모든 사람들을 최대한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서빙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싼 식당이라고 모두 이렇지 않다. 가격은 결코 저렴하지 않았지만, 매 순간 그 가격만큼을 모두 돌려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 디저트 사진 뒤쪽으로 보이는 커플은 아마 데이트 중인 것 같았는데, 빨간 드레스로 멋을 한껏 낸 여자는 상당히 들떠있는 듯했고, 남자도 다소 긴장한듯한, 그러나 많이 행복한 모습이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그 남자가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그가 테이블로 돌아오는 중간에 한 여자 손님이 일어나서, 의자 뒤에 걸쳐두었던 재킷을 걸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거기 멈춰 서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그녀의 옷을 잡아서 입혀주었다. 전형적인 프랑스식 매너였다. 불어로 Galanterie라고 하는데, 남자가 숙녀에게 베푸는 매너 있는 보살핌 동작이랄까. 모든 일이 순식간에 자연스럽게 일어났는데, 보는 우리도 함께 즐거웠다.



그리고 우리가 주문한 디저트가 나왔는데, 남편은 크렘 브륄레를, 나는 초콜릿 무스를 주문했더니, 내 접시에 작은 초와 Happy Birthday! 글자가 따라 나왔다! 생일이라고 따로 부탁했던 것도 아닌데, 그 꽃을 보고 모두 생일임을 알게 되고, 이렇게 섬세한 배려를 해주니 기쁨이 두배가 되었다. 초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초를 불면서 소원까지 빌었다.


맛도 과하게 달지 않았고, 고급진 맛이 났다. 우리는 역시 민폐 커플답게 서로 한입씩 떠먹여 주며 디저트를 깔끔히 마무리했다. 그리고 계산서 나오기 전에 다시금 서비스로 악어 모양 초콜릿이 나왔다. 

식당에 가면 부지런히 먹고 나오게 마련인데, 우리는 이곳에서 자그마치 세 시간을 보내며, 정말 프랑스인들처럼 천천히 저녁을 즐기며 먹었다. 많이 대화하고, 많이 웃고, 많이 속삭이고 그렇게 많이 행복해했다. 나를 쳐다보는 남편의 눈빛에는 사랑이 가득했고, 이 모든 것을 준비해준 남편에게 나는 정말 많이 감사했다.


내가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때면, 그는 항상 "You're welcome." 대신에 "My pleasure!"라고 말한다. 즉, 그가 내게 해주는 모든 아름다운 행위는, 단순히 나를 기분 좋게 해 주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렇게 해줌으로써 자신도 행복해진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서 정말 내내 기쁨이 묻어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날 때, 웨이터 아저씨는 꽃병을 종이로 감싸서 들고 가기 쉽게 해 줬고, 안에서 코트를 들고 나와서 문 앞에서 배웅했다. 완벽한 서비스였으며, 매 순간 무척 정중했고,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았다. 함께 나누는 기쁨을 보여주는 서비스라 부를 수 있으리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함께 식사한 저녁시간 내내 한 순간도 빠짐없이 행복할 수 있었고, 그리고 감사했다. 


"It was so wonderful, thank you."라는 나의 인사에 따라온 그의 답은 "It was great to be with you. Thank YOU!"였다. 다 해주고, 다 챙겨주고, 그리고 자기가 고맙다고 말해주는 이 사람, 무슨 복이 있어서 이 나이에 이런 배려와 사랑을 받는지... 


글을 적고 나서 보니, 비싼 식당에서 먹은 것을 자랑하는 글처럼 되어버렸는데, 음식을 세세하게 소개한 이유는, 우리 부부에게도 흔하지 않은 기회이니만큼 글을 읽는 분들도 우리처럼 함께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금전적 가치를 떠나서, 사랑을 흥정하지 않는 남편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고, 이렇게 나이 먹어서도 여전히 새로이 사랑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함께 나누고 싶었다. 


깊이 감사하고, 또한 더 깊이 사랑하고 싶다. 결혼과 더불어 점점 식어가는 서글픈 사랑이 아니라, 점점 더 깊어가는 감사하는 사랑으로 이렇게 늘 깨닫고 느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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