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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y 02. 2021

나는 매일 설렌다.

그를 보기만 해도...

나는 설렘은 이십 대에 끝난 줄 알았다. 다시는 사랑 같은 것은 못 할 줄 알았다. 그런 감정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청춘은 물론 돌아오지 않는 것이니, 이성을 만나 가슴이 뛸 일은 없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나를 종종 가슴 뛰게 하였던 것들은, 뭔가 새로운 일을 구상할 때, 시작할 때, 그리고 몰입하여있을 때였다. 나의 설렘은 일이나 취미에 국한되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요새는 거의 종일 마당에서 살다시피 하기 때문에 브런치 글이 산더미처럼 밀려있다. 봄을 맞이한다고 썼던 글도, 벚꽃을 떠다 보낸다는 글도... 그렇게 열 몇 개가 밀려있다. 게다가 주말에는 가드닝에 필요한 것들을 사러 다니느라 또 분주하다. 오늘 토요일도 종일 종종거렸다. 


점심은 오전 쇼핑을 마치고 들어와서 간단히 열무국수로 때웠다. 며칠 전 모종 몇 개 구입하면서 얼떨결에 구입해온 열무 때문에 김치를 넉넉히 담가서, 그냥 아무것도 없이 달걀만 듬뿍 넣어서 점심을 후다닥 먹었다. 이런 점심을 먹으면서도 그는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오후에는 마당에서 시간을 보냈다. 왜 이렇게 밖에서는 할 일이 늘 많은지... 


남편은 오늘 사온 재료를 이용해서 마당에 텃밭 지지대를 세웠다. 성격이 꼼꼼하기 때문에 각을 정확하게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늘 완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가운데는 콩 종류여서 격자형으로 만들었고, 양 옆에는 오이를 심을 것이기 때문에 끈을 매달기로 해서 틀만 짰다. 계속 나에게 원하는 크기를 물어보면서 하나씩 맞춰나갔고, 결국 딱 원하는 모양대로 완성을 했다. 마당은 우리 부부의 놀이터다. 완성해놓고 좋아서 둘이서 벙글벙글 하며, 앞에서 보고, 옆에서 보고 즐거워했다.


나는 마당에서 하던 일이 있으니 남편이 먼저 들어가서 저녁을 차리겠다고 했다. 그럴 때 남편은 내게 묻는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거기에 내 대답이 미적지근하면, "내가 만든 거 아무거나 먹을 거야?" 물론이지! 남편이 차려주는 밥상이 최고지! 


뿌리가 화분을 뱅뱅 감아 돌기 전에 모종을 좀 더 큰 화분으로 한 번 더 옮겨주자


내가 마당에서 하던 일을 마무리한 후, 모종들을 모두 거둬서 온실에 넣어두고 부엌으로 올라오니 저녁은 거의 다 준비되어있었다. 오늘 저녁은 해산물 차우더였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 시애틀에서 함께 먹은 후, 집에 와서 해 먹게 되면서 시작된 메뉴다.


따끈할 때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딱 먹을 준비가 되는 시간에 맞춰서 식사 준비를 끝낸다. 인생은 타이밍!



저녁때가 되어서 제법 쌀쌀했는데, 남편이 만들어 준 따끈한 차우더를 먹고 나니 몸이 훈훈해지면서 편안해졌다. 고급 식당에서 먹는 진한 맛이다. 다 먹고 나니 남편이, "뭔가 디저트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하길래, 냉동실에 두 개 남아있던 젤라토 만든 것이 생각나서 꺼내왔다. 그 위에 크랜베리를 꿀에 발효시킨 것을 얹어서 간단한 디저트까지 마무리했더니 밤이 되고 말았다.



나는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밀린 브런치도 써야 하니, 그것을 잘 아는 남편은, 날더러 얼른 가서 쓰고 일찍 자야 하지 않겠느냐며 나를 밀어내고 혼자 부엌 뒷정리를 한다. 나는 염치없이 앉아서 타이핑을 하고...


정리를 마치고 내려가 잠시 뉴스를 보고 올라온 남편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러 가려고 돌아서는데, 그의 모습을 보니 나는 가슴이 뛰는구나! 돌아서는 그를 불러 세우고, 사랑한다고 말해줬다. 그는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사랑한다고 대답해줬다. 그 미소는 나를 설레게 한다. 결혼 한지 2년이 넘었는데, 내게 그는 여전히 멋있다.


살면서 매일같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살아갈 날이 내게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나보다 앞서서 나를 생각하고, 무엇을 해 주든 생색낼 줄을 모른다. 그가 나를 처음으로 가슴 뛰게 했던 그 말, "My pleasure!"처럼, 그는 여전히 모든 것을 기쁨으로 해준다. 무엇을 해줬으니 되받고 싶다는 마음이 없다. 주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고, 그래서 내가 행복하면 그것으로 행복해지는 사람. 그런 사람을 어찌 매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무나 닭살 돋는 이야기를 굳이 지금 쓰는 이유는, 오늘 본 그의 눈빛을 내 가슴 안에만 저장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글쓰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나도 그를 따라가야겠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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